[[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공주시 출신 인물]][[분류:1921년 출생]][[분류:198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구자훈(具滋勳) || || 일본식 이름 ||구하라 시게히코(具原茂彦) || || 생몰 ||[[1921년]] [[1월 17일]] ~ [[1987년]] [[12월 5일]] || || [[출생지]]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의당면 도신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구자훈은 1921년 1월 17일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도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36년 3월에 급우 7인과 함께 항일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했다. 이들은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 사용금지·[[신사참배]] 거부·악질 일인 교유 배척 등의 활동을 하는 한편 무궁화 식수 장려 및 미신 타파 등 계몽활동을 펴면서 민족의식 고양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들이 졸업 후 회원이었던 [[천영관]]이 1942년 6월 일제의 패망을 언급했다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명랑클럽이 발각되고 말았고, 이로인해 체포된 구자훈은 1942년 9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7년 12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구자훈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