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민주자유당 관련 문서)] [include(틀:노태우 정부)] [목차] == 개요 == [[1992년]] [[3월 22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학생군사교육단]] 출신 [[소대장]] 이지문 [[대한민국 육군|육군]] [[중위]]가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을 [[폭로]]한 사건이다. [[http://www.coolenjoy.net/bbs/cboard.php?id=gallery&no=131257&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cat=0&ga=|요약정리된 페이지]]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641487_STD.jpg]] 이지문 중위는 1991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학생군사교육단|ROTC]] 29기로 임관해서 육군 [[제9보병사단]] 28연대 2대대 6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운동권]] 출신 대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군에서 노골적으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도록 [[정훈교육|정신교육]]을 할 것'''과 '''부재자 투표에서 무조건 기호 1번을 투표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빼앗거나 불이익을 주도록 할 것'''이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을 알았다. 이에 1992년 3월 22일 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약칭 공선협) 전국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실을 폭로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 소속 중대장 == 소속 중대장의 공명선거 의지에 자극을 받은 듯하다. 아래는 이지문 중위의 2007년 10월 29일자 기고글 전문이다. - 내 인생의 첫 수업 [21] >“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신조였던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라’를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이를 어기고 너희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순간 알퐁스 도데가 지은 ‘마지막 수업’이 떠오른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은 1번(당시 여당후보 기호)을 찍어 달라”라고 하면서 중대원들이 눈물을 혹 볼까 급하게 내무반을 빠져나가던 중대장의 뒷모습. > >5분여 밖에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대장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뜨거워졌던 내 눈시울과 함께 했던 그 시간은 부대 내 부정선거로 갈등하던 내 자신에게 ‘양심선언’이라는 결정을 이끌게 해줬다. 삶 자체가 바뀌게 된 ‘내 새로운 인생 출발의 첫 수업’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실과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일상적인 안위 속에서 살아왔던 내 인생 1교시 수업을 끝내게 해주었던 ‘마지막 수업’이기도 하기에 그 당시 중대장이 떠올린 마지막 수업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 >ROTC 장교로 의무복무 중이었던 1992년 3월, 그 한 달 동안 나는 곧 실시되는 제14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중립’에 역행하는 일부 군인들의 행태로 여간 혼란스럽지 않았다. > >중·소대장들을 소집한 대대장은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속해 있는 여당에 투표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이 이러하니 간부들은 이런 취지로 자기 병력들을 교육해야겠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복종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훈시하였고, 이런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다른 4 개 중대에서는 중대장의 여당 지지 정신교육은 물론이고 3일 동안 진행된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공개투표행위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 >타 중대장들과 달리 우리 중대장은 “선거권 행사는 중대장 명령 밖의 문제이고, 중대장이라고 해서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판단으로 투표를 할 수 있게끔 하여 부재자투표용지가 먼저 온 나를 포함한 16명은 정상적으로 투표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대장의 공명선거 의지는 상급자의 압력에 의해 바로 제동이 걸렸다. 거기에다 기무대 소속 보안반장까지 직접 찾아와서 "상급라인에서는 발 벗고 열심히 뛰고 있지만 하급라인에선 많이 민주화되어 여당표가 70%도 힘들 것이다. 너무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해줘라. 서신 검열기로 표본조사를 하여 여당 득표율이 저조할 때 해당 중대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고 하자 중대장은 결국 자신의 소신을 접고 중대원 96명 중 80명의 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여당 지지를 유도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비록 처음 가졌던 신념을 어쩔 수 없이 지키지 못하였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뻔히 알면서도 ‘정치적 중립’이라는 소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중대장의 모습에서 과연 내가 중대장처럼 직업군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점을 떠올려보았을 때, 자신 있게 내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하는 점에서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 다른 중대장들처럼 진급 평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중대원들에게 자기 양심에 반하는 투표를 강요하지 않았을까? > >부대 내 선거부정에 대해서 비록 의무복무 장교이지만 군을 위해서 뜻을 모아 함께 건의해보자고 했다.동기 소대장이 “군에 있을 때만 여당 찍어주면 되지. 괜히 인생 꼬일 필요 없지 않아”라고 했을 때 쉽게 체념하였던 내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 >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과 중대장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불면의 나날을 보내기만 하던 내게 그 날 중대장의 눈물은 비록 엄한 선생님께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움’과 ‘비겁함’이라는 내 눈을 덮고 있던 티끌을 씻어내고 상식과 원칙 앞에 당당하게 눈을 뜨게 해준 ‘내 새로운 인생 첫 수업의 사랑의 매’였다. > >중대장의 ‘수업’은 ‘군부재자투표부정에 대한 증언’이라는 양심선언을 가져오게 하였고 그 때 제기했던 군부재자투표제도의 개선 역시 다음 선거 때부터 영외투표가 이루어졌다. 내 인생의 첫 수업이기도 하면서 군이 매번 되풀이되던 선거부정 악몽에서도 벗어나게 해준 첫 수업이기도 하였다. > [[http://www.ingo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2|#]] [[http://www.ziksir.com/ziksir/view/1642|#]]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835082|#당시 이지문 중위의 진술서로 당시 대대내의 상황과 중대장의 지시사항이 자세히 기술되어있음]] == 사건 이후 == 기자회견 직후 이지문 중위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사경찰|헌병]]들에게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파면 처분을 받았다. 그는 원래 [[삼성그룹]]에 사전 채용 뒤 군 복무를 완료하고 나서 휴직하는 방식으로 채용되었는데 [[파면]]으로 인해 '''[[군번]]이 말소'''당해 장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복직(사실상 채용)을 거부당해 버렸다.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995년 2월 [[대법원]]에 의해 파면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사전 채용 뒤 군 복무 완료 후 복직 방식으로 ROTC 후보생을 채용한 것이라 원래 복직 시한 전에 파면이 무효가 되었으면 파면 취소 후에는 삼성에서 복직을 거부할 수 없었으나 원래 복직 시한이 지나서 판결이 확정되는 바람에 복직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641830_STD.jpg]] 이 사건의 여파로 민주자유당은 14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지만 곧바로 친여 무소속을 영입하여 과반수를 확보했다. 이 사건은 군 부재자 투표가 영외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같은 해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대 내부가 아닌 일반 부재자와 같은 투표소에서 투표하게 되었다. 또 이 사건 이후 군에서도 특정 후보를 찍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아예 공직선거법 238조에 "군인에 의한 선거자유방해죄" 조항이 별도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행위는 [[부정선거]]에 해당된다. 부정선거 항목에서 해당 조항을 읽어 볼 수 있는데 내용이 이 사건과 겹친다. 이 사건이 끼친 영향이 꽤 컸던 탓에 선관위는 부재자 투표(현재의 사전투표) 시 군인 투표지역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선관위 직원들 외에도 외부 참관인들이 특히 주의를 기울여서 감시하기도 했다] 아예 '''최대한 군부대 내에 투표소를 만들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강원도나 경기도 서부의 전방지역조차 투표할 때 최대한 가까운 지역의 투표소에서 투표를 진행한다. 예외적으로 최전방 부대(GOP, GP) 또는 해외파병 부대들 정도만 부대나 전투함에 투표소가 열리며 군함에서는 상선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선상투표]]가 적용되어 팩스로 전송한다.] 명예회복 후 전역한 이지문 중위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정계를 떠난 후에는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모임, 호루라기 재단 등에서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 복직권고 결정이 있었지만 삼성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2018년 기준으로 사단법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다. 2011년 [[연세대학교]]에서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추첨민주주의[* 선거 대신 추첨으로 국회의원,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로 박사학위 취득 후 『추첨민주주의 이론과 실제』, 『추첨민주주의 강의』 《추첨시민의회》 등을 통해 추첨민주주의 연구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다. 2020년 3월 15일에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2020년)|국민의당]]에서 영입하였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하였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200315130213373|기사]] 이후 [[국민의힘]]과 합당 당시 탈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송곳(웹툰)|송곳]]에서 주인공이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시절 [[대대장]]으로부터 집권여당에 투표할 것을 지시받는데 이 사건이 모티브가 된 듯 하다. == 언론 보도 == [[한겨례]]는 용감하게도 1면 머릿기사로 해당 사건을 크게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7052900209201003&officeId=00020&publishDate=1987-05-29&isPopular=0|보도했다.]][* 보도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www.hani.co.kr/arti/society/archives/848283.html|해당 기사]] 참고] [[동아일보]]는 1면 구석에 작게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7052900209201003&officeId=00020&publishDate=1987-05-29&isPopular=0|보도했고]] 조선일보는 --당연히-- 1면에는 아무런 기사도 없었고 뒷면 구석에 작게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7052900209201003&officeId=00020&publishDate=1987-05-29&isPopular=0|보도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군 사건사고/한국)] [[분류:대한민국의 선거 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 사고]][[분류:1992년 범죄]][[분류:부정선거]][[분류:폭로]][[분류:제14대 국회의원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