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반달 국왕)] ||<-3><#40E0D0> '''{{{#FFF 반달 왕국 3대 군주}}}''' [br] {{{+2 {{{#FFF '''Gunderic | 군데리크'''}}}}}} || ||<|3><#40E0D0> '''{{{#FFF 제호}}}''' ||<#40E0D0> '''[[한국어|{{{#FFF 한국어}}}]]''' ||군데리크 || ||<#40E0D0> '''[[라틴어|{{{#FFF 라틴어}}}]]''' ||Gunderic 또는 Gundericus || ||<#40E0D0> '''[[스페인어|{{{#FFF 스페인어}}}]]''' ||Gunderico || ||<-2><#40E0D0> '''{{{#FFF 생몰 년도}}}''' ||미상 ~ 428년 || ||<|4><-2><#40E0D0> '''{{{#FFF 재위 기간}}}''' ||406년 ~ 428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기록상으로 전해지는 [[반달족]] 3대 군주. == 행적 == [[고디기셀]]과 정실 아내의 아들로, 406년 아버지가 [[프랑크족]]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뒤 노예 출신 첩의 아들이었던 이복형제 [[가이세리크]]를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수에비족]], [[알란]]과 함께 갈리아를 휩쓸던 그는 409년 가을 두 종족과 함께 히스파니아(오늘날 [[이베리아 반도]])로 진입했다. 그들은 각지를 황폐화시키고 주민들로부터 식량을 빼앗았으며, 저항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411년까지 이베리아 반도 대다수를 점거하는 데 성공한 그들은 영토를 분할했다. 반달족은 동부 갈리키아와 베티카에, 수에비는 갈리키아에, 알란은 루시타니아와 카르타헤나 지역에 정착했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이때 반달족과 알란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서로마 제국]]은 410년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410년)|로마 약탈]]과 [[콘스탄티누스 3세]]의 반란 등에 시달리느라 히스파니아엔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알라리크 사후의 내분을 수습하고 고트족 지도자가 된 [[왈리아]]는 로마 정부의 "히스파니아로 들어가서 고트족, 수에비족, 알란족을 물리쳐주면 히스파니아에 정착하는 걸 허용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뒤 히스파니아로 진격했다. 고트족은 416년부터 418년까지 일련의 전투에서 세 종족을 상대로 연전연승했다. 알란족은 그 과정에서 왕을 잃자 군데리크에게 복종하고 더 이상 독자적인 왕을 선출하지 않았다. 418년, 서로마 제국은 고트족에 이어 수에비족을 회유해 반달족과 알란족을 치게 했다. 여기에 로마군이 히스파니아에 투입되어 두 종족에 대한 원정을 개시했다. 그러나 422년 카스티나가 이끄는 로마군은 반달-알란 연합군에게 패배했고, 두 종족은 타라코나 지방과 스페인 남동부 해안을 점령하고 로마 선박을 징집해 [[발레아레스 제도]]와 [[모리타니]] 해안 지대를 습격했다. 428년에는 히스팔리스(현대 [[세비야]])와 카르타헤나 등 주요 도시를 점령했다. 이렇듯 세력을 떨치던 군데리크는 428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히다티우스에 따르면, 군데리크가 교회를 약탈했다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한다. 그 후 반달족은 그의 이복 형제인 [[가이세리크]]를 새 군주로 선출했고, 수에비족과 고트족의 맹공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입지가 약해지자 가이세리크의 인도하에 아프리카 속주 침공에 나섰다. [[분류:반달 국왕]][[분류:아리우스파 기독교도 군주]][[분류:42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