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금강반야경소개현초.jpg]] [목차] == 개요 == 金剛般若經疏開玄抄. [[고려]] 숙종 3년(1098)에 공철(公哲)이 짓고 지온(志蘊)이 초간한 불경을 [[조선]] [[세조(조선)|세조]] 7년(1461)에 복원한 책. 현재 [[송광사]]에서 소장 중이고 1963년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유명한 대승불경인 [[금강경]]에 고려 숙종 때 공철이 주석을 달고 지온이 초간한 불경 주석서이다. 이후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고려속장경(高麗續藏經), 즉 교장(敎藏)을 제작할 때 이 서적 또한 수록하였다. 그러나 이 고려속장경은 [[대몽항쟁|몽골의 침입]] 시기에 대부분이 불타 흩어졌다. 현재 전해지는 금강반야경소개현초는 조선 세조 7년(1461)에 왕의 명으로 과거 소실된 고려 불경 문화재들을 복원하던 도중, 과거 의천이 직접 제작, 수록하였던 교장본 금강반야경소개현초 한 권이 발견되어 이를 그대로 [[간경도감]]에서 복원한 것이다. 교장에 수록되었던 금강반야경소개현초 원본은 총 7권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현재는 세조가 복원한 1책만이 남아 전한다. 책에는 '수창 사년 무인세 고려국 대흥왕 사봉조조(壽昌四年戊寅歲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라는 간기(刊記)가 있고 이후 조선 세조가 복원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 수창(壽昌)은 [[도종(요)|요나라 도종]]이 사용한 연호이다. 고려가 꼭 송나라 연호만 사용하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속장경, 즉 교장의 모습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불경의 주요 형태와 구성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비슷하게 고려시대의 불경을 조선 세조 때 그대로 복원한 것으로 [[대반열반경소]], [[정명경집해관중소]],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천태사교의집해]],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묘법연화경찬술]],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등이 있다. == 외부 링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8204&cid=46648&categoryId=46648|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강반야경소개현초 권4~5]]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4643&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송광사 금강반야경소개현초]] == 보물 제207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2070000,36&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금강반야경소개현초 권4~5 (金剛般若經疏開玄抄 卷四~五)]] >금강반야경은 줄여서 ‘금강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계종의 근본 경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경전이다. > >이 책은 금강경에 대해 공철(公哲)이 쉽게 풀이한 것을 나중에 지온(志온)이 보충한 것으로 ‘개현초(開玄褻)’에 관한 7권 중 권4-6이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져 전해진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36㎝, 가로 35㎝이다. >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 요, 일본 등에서 구해온 불경을 토대로 만든 교장(敎藏)을 보고 조선 세조 7년(1461)에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다시 새겨 펴낸 것이다. > >각 권의 끝 부분에 글씨를 쓴 사람들과 교정을 본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다시 펴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송광사에 보존된 여러 교장(敎藏)들이 고려시대의 원본이 아니고 간경도감에서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겨 펴낸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고려의 불경]][[분류:조선의 불경]][[분류: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품]][[분류:순천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