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후삼국시대/인물]][[분류:몰년 미상]] || '''국가''' || '''[[후백제]]''' → '''[[고려]]''' || || '''이름''' || '''금식(今式)''' || || '''생몰년도''' || '''미상''' || || '''관직''' || '''장군(將軍)''' || == 개요 ==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장군]]. [[태봉]]의 장수 [[금식(태봉)|금식]]과는 한자표기가 다르다.[* 후백제의 금식은 '今式', 태봉의 금식은 '黔式'으로 태봉의 금식의 경우 검식으로 표기할 수도 있다.] == 생애 == 936년 9월 [[일리천 전투]]에 참전했다. 일리천 전투는 [[고려군]]이 전 후백제의 국왕인 [[견훤]]을 내세우면서 후백제군에 분열 및 자중지란이 일어났고[* 후백제 좌장군 [[효봉]], [[덕술]], [[애술]], [[명길]] 등 4인이 참전한 견훤의 모습을 보고 고려군에 투항해버리면서 전세가 기울어져 버렸다.], 이후 고려군의 총공격으로 후백제군은 무너지면서 금식은 [[흔강]], [[견달]], [[은술]], [[우봉]] 등 3,200인과 함께 고려군에 포로로 사로잡혔다. 일리천 전투 이후 고려군은 포로로 잡은 3,200인의 후백제인을 풀어줬는데 오직 흔강, [[부달]], 우봉, 견달 등 40인은 처자를 데리고 [[개경]]으로 압송되었다고 한다. 금식이 해당 40인에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일 포함되었다면 개경으로 끌려갔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