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역사)] [목차] == 杞 == [include(틀:춘추시대 왕조)] === 개요 ===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지금의 [[하남성]] 기현에 위치하며 수도는 옹구였다가 순우로 옮겼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하나라]]의 후예라고 한다. 현대 [[고고학]]에서는 하나라의 존재가 실증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전근대 시대에 각국의 [[군주]]들이나 [[귀족]]들이 전설 속의 나라나 신화 속 인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일은 흔하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자기들의 조상을 [[헤라클레스]], [[포세이돈]] 등의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나 신이라고 주장했고, [[로마 제국]]의 건국 신화에서는 그 시조인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를 [[트로이]]의 후예이자 [[아레스|마르스]]의 아들들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기나라의 경우도 이런 경우로 추정된다.] === 역사 ===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하 왕조]] 때부터 [[후작]]의 작위로 분봉을 받은 국가로 하 왕조의 시조인 [[우(하나라)|우]]의 후예가 다스리며 [[자작(작위)|자작]]의 [[작위]]로 분봉을 받은 국가였다. [[상나라|상 왕조]] 말기에 망했다가 주나라 무왕이 우의 후손 동루공을 얻어 봉했다. 국성은 사(姒)성이며 우의 후예라고 칭했다. 기는 소국이었기 때문에 사서에서의 기술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사기(역사책)|사기]]》에는 진기세가의 기술이 있지만 기에 대한 기술은 불과 270자이며 '기는 작고 약하여 기사를 쓰기에는 부족하다'고 다루어지고 있다. 본기에도 가끔씩 언급되기는 하지만 정말 분량이 적다. 이와 같이 국력도 영 충분하지 않은 소국이었기 때문에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 안에서 [[천도]]를 반복하였다. 기는 비록 소국이었지만 하 [[왕실]]의 후예이고 하례를 보존하고 있어 유가에서는 큰 의의가 있었다. [[공자]]도 하례를 배우기 위해서 기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기의 공자 중 한 명이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를 섬겨 [[포]](鮑)의 땅을 받은 데에서 포씨를 자칭했고 그의 후손 중에서 현신으로서 유명한 [[포숙아]]를 배출하였다. 포숙아의 후손인 포씨는 대대로 [[제나라]]에서 벼슬을 살았다. 《[[춘추]]》에서는 기후(杞侯), 기자(杞子), 기백(杞伯) 등으로 불러 일관적이지 않은데, 전통적으로는 기나라가 원래 [[후작]]이나 [[오랑캐]]와 섞여 살았기 때문에 폄하돼 [[자작(작위)|자작]]이 됐다가 [[중원]]의 패자와 협력하면서 [[백작]]이 됐다고 한다. 애초에 기후(杞侯)가 또 다른 기나라인 기후(紀侯)를 잘못 적은 것으로 이 기나라는 후작인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기원전 722년에 이(夷)나라를 정벌했고 기원전 719년에 거나라와 싸웠고,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의 공격을 받아 약소국으로 전락하였으며 간공 원년 기원전 445년 초(楚)나라의 [[초혜왕|혜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 기타 ===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인 [[기우]](杞憂)라는 말의 유래가 된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기우 같은 기나라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고사가 전해지는 건 망한 [[왕조]]의 후예인 기나라에 대한 당대의 [[지역감정|비하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비슷하게 역시 망한 왕조인 [[상나라]](은나라)의 후예인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에 대해서도 역시 비하적 인식이 있었는지 [[송양지인]], [[수주대토]] 같은 우스꽝스러운 고사들이 전해지고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지역드립]]인 셈. === 역대 군주 === 앞에는 시호, 뒤에는 이름이다.(예 : 환공 고용, 환이라는 시호를 받은 기나라의 사고용) 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군주도 있다. * 동루공(東樓公) - 우의 후손 * 서루공(西樓公) - 동루공의 아들 * 제공(題公) - 동루공의 아들 * 모취공(謀娶公) - 제공의 아들 * 기백 매망(杞伯 每亡) - 모취공의 아들 * 무공(武公, 기원전 750년 ~ 기원전 704년) - 모취공의 아들, 기백을 시해하고 즉위 * 정공(靖公, 기원전 703년 ~ 기원전 681년) - 무공의 아들 * 공공(共公, 기원전 680년 ~ 기원전 673년) - 정공의 아들 * 덕공(德公, 기원전 672년 ~ 기원전 655년) - 공공의 아들 * 성공(成公, 기원전 654년 ~ 기원전 637년) - 덕공의 아들 * 환공 고용(桓公 姑容, 기원전 636년 ~ 기원전 567년) - 덕공의 동생 * 효공 개(孝公 匄, 기원전 566년 ~ 기원전 550년) - 환공의 아들 * 문공 익고(文公 益姑, 기원전 549년 ~ 기원전 536년) - 효공의 동생 * 평공 울(平公 鬱, 기원전 535년 ~ 기원전 518년) - 문공의 동생 * 도공 성(悼公 成, 기원전 517년 ~ 기원전 506년) - 평공의 아들 * 은공 걸(隱公 乞, 기원전 506년) - 도공의 아들 * 희공 수(釐公 遂, 기원전 505년 ~ 기원전 487년) - 은공의 동생, 은공을 시해하고 즉위 * 민공 유(湣公 維, 기원전 486년 ~ 기원전 471년) - 이공의 아들 * 애공 알로(哀公 閼路, 기원전 470년 ~ 기원전 461년) - 민공의 동생, 민공을 시해하고 즉위 * 출공 칙(出公 敕, 기원전 460년 ~ 기원전 449년) - 민공의 아들 * 간공 춘(簡公 春, 기원전 448년 ~ 기원전 445년) - 출공의 아들, 멸망 == 紀 == [include(틀:춘추시대 왕조)] === 개요 ===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지금의 [[산동성]] 수광현에 위치하며 제나라와 같은 강성(姜姓)이며 후작이라고 한다. === 역사 === [[서주]] [[주이왕|이왕]] 시대에 기나라의 군주가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의 [[제애공|애공]](哀公)을 참소해 이왕은 그를 [[주나라]]로 잡아와 그를 [[끔살|펄펄 끊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 죽이는]] [[팽형]]에 처해 버렸다. 따라서 이 후로 제와는 대대로 원수가 되었고 [[노나라|노(魯)]]와 제나라에게 인접하여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노(魯)의 속국이 되었다. 속국이 된 뒤에는 노(魯)와는 대대로 혼인을 맺어 유대 관계를 맺어 왔으며 제(齊)나라 초기에 내분을 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하며 그 일로 150년 후 제(齊)나라의 군주 [[제희공|희공]]의 공격을 받지만 노(魯), [[정나라|정(鄭)]]의 구원으로 이를 막는다. 그러나 기원전 690년 희공의 아들 제(齊)나라의 군주 [[제양공|양공]]이 공격하여 결국 멸망했다. === 역대 군주 === 전해 내려오는 군주는 단 넷이며 이들의 계보나 다른 군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 기백 부정(紀伯 父丁) * 기후 호(紀侯 虎) * 기후 맥자(紀侯 貉子) * 기 양후(紀煬侯) == 冀 == [include(틀:춘추시대 왕조)] [[춘추시대]]에 존재했던 소국. 현재 [[산서성|산시성]] 허진시에 해당되는 지역의 위치로 비정된다. 사서의 기록도 거의 부재하여 언제 멸망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으나, [[진(춘추오패)|희성 진]]에게 합병당한 것만이 알려져 있다(...). [[가도멸괵]]의 고사에서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기나라 국가 자체는 지극히 비중없는 약소국이었지만 이 기나라의 국명이 [[한나라]]([[후한]]) 시대 [[후한 13주]]의 [[주(행정구역)|주]] [[기주]]의 어원이 되었다. [[토탈 워: 삼국/세력/노식]] 세력이 삼대 세력으로 성장할 경우, 기(冀)나라로 국명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9월 패치 이후에는 기나라가 아닌 광양국으로 수정되었다. == 岐 == [[오대십국시대]]에 존재하던 소국(901년 ~ 924년)으로 독립 국가를 형성하기는 했으나 십국에는 포함되지 않아 정식왕조로는 치지 않는다. [[황소의 난]]에 공을 세운 봉상[[절도사]] [[이무정]]이 [[관중]] 일대를 지배하면서 [[군웅]]으로 발전한 세력으로, 901년 [[당소종]]을 자신의 근거지인 봉상으로 끌고와서 기왕의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훗날 [[후량]]을 세우게 되는 [[주전충]], [[전촉]]을 세우게 되는 [[왕건(전촉)|왕건]]의 협공을 받아 당 소종은 주전충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기나라 또한 약소 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924년 [[후당]]을 세운 [[이존욱]]의 압박에 굴하여 이무정이 후당에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 == 기타 == [[기자(중국)|기자]]가 살던 곳도 기나라다. 현 [[산시성(산서성)|산서성]] [[진중시]] 타이구구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기, version=82)] [[분류:상나라의 제후국]][[분류:주나라의 제후국]][[분류:기원전 5세기 멸망]][[분류:기원전 7세기 멸망]][[분류:오대십국시대]][[분류:10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