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라 상대등)] ||<-5><:>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상대등|{{{+1 {{{#ffffff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 || [[김문영]] || {{{+1 ←}}} || '''{{{#ffffff 김개원}}}''' || {{{+1 →}}} || [[인품]] || 金愷元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7남[* [[문명왕후]] 소생.]이자 제30대 [[문무왕]]의 동생. == 생애 == >맏아들 [[문무왕|법민]]을 태자로 삼고, 나머지 여러 아들 중에 [[김문왕|문왕]]을 이찬으로, 노차를 해찬으로, [[김인태|인태]]를 각찬으로, 지경과 '''개원'''을 각각 이찬으로 삼았다. >{{{#!wiki style="text-align:right" 《[[삼국사기]]》}}} 서기 655년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다음 해, 형들과 나란히 관등을 제수받았다. 이는 무열왕이 정권 초기에 친위세력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당나라 황제가 칙명으로 지경과 '''개원'''을 장군으로 삼아 요동의 전장에 가도록 하였다. 임금이 곧장 지경을 파진찬으로 삼고, 개원을 대아찬으로 삼았다. >{{{#!wiki style="text-align:right" 《[[삼국사기]]》}}} 이후 서기 667년, 문무왕 7년에 [[당고종]]의 칙명으로 [[대아찬]]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앞선 기록에선 [[이찬]]에 임명됐다고 나오는데 여기서는 대아찬이라 해서 아마 앞의 기록이 아찬을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듬해인 668년 6월에는 [[김인문]], [[김흠순|흠순]], 천존, [[진복]], 지경, [[김흠돌|흠돌]] 등과 함께 대당총관에 임명되었고 [[평양성 전투(668년)|고구려 정복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683년에는 조카인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맞아 부인을 삼으려 하자, 이찬 [[김문영]]과 함께 김흠운의 집에 가서 그의 딸을 부인으로 책봉하기도 했다. 그리고 695년, 효소왕 4년에 마침내 [[상대등]]에 임명됐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주관했던 혼례로 태어난 [[효소왕]]이 자신을 상대등으로 임명한 셈.[* 아마 실제로는 어린 효소왕을 대신해 섭정을 맡은 신문왕비, [[신목왕후]]의 의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각주] [[분류:신라의 왕자]][[분류:신라의 상대등]][[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