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북한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분류:북한 국가계획위원장]] [[분류: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분류:자강도 출신 인물]] [[분류:1949년 출생]] [include(틀:역대 북한 국가계획위원장)] [목차] == 개요 == 북한의 정치인, 테크노크라트. == 생애 == 1949년 12월 13일 자강도에서 태어났다. 김정일 시대 엘리트 중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일 정도로 원래 뭘 하던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데 김일성이 죽은 후인 1994년 11월,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국가계획위원회 책임참사가 되어 2002년 10월 26일, 당시 국가계획위원장이었던 [[박남기]]가 이끄는 대남 경제시찰단에 포함되었다. 당시 시찰단이 매우 화려한데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 당시 화학공업상으로 내각총리가 되는 [[박봉주]], 경공업부 제1부부장 [[김히택]], 훗날 평양시 책임비서가 되는 [[문경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현대차 엔진공장을 둘러보면서 상당한 관심을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219577|표했다고 한다.]] 이후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박봉주]] 내각에서 신임 국가계획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04년 2월, 리비아에 경제대표단장으로 파견되었으며 2005년 3월에는 박봉주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였다. 고속 승진과 더불어 활발한 활동 때문에 2005년에는 한국 정부에서 김광린을 북한을 움직이는 30인의 엘리트 중 한 사람으로 포함시키기도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26108|했다.]] 2007년 박봉주 내각이 숙청당하고 [[김영일(1944)]] 내각이 출범할 때도 유임되었다. 하지만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대의원에는 당선되었지만 국가계획위원장은 부총리 [[로두철]]에게 물려주고 물러났다. 이후 어떠한 활동도 보이지 않고 있다. 김광린 이후 국가계획위원장들은 [[로두철]], [[김일철(테크노크라트)|김일철]], [[박정근(북한)|박정근]]에 이르기까지 부총리를 무조건 겸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등장부터 갑작스러운 퇴장까지 뭔가 묘했던 인물중 한명이다. == 여담 == 무려 27년이나 오스트리아 대사로 재임한 [[김평일]]의 여동생 김경진의 남편인 [[김광섭(북한)|김광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근데 위키백과에선 뭔 생각이었는지 김광섭이 김광린의 아명이었다면서 둘이 동일인물이라고 적어놨다.(...) == 참고문헌 ==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북한의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