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선산 김씨]][[분류:함평군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5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 김교락(金敎洛) || || 자/호 || 덕범(德範)/남강(南崗) || || [[본관]] || [[선산 김씨]] || || 생몰 || [[1882년]] [[12월 20일]] ~ [[1954년]] [[8월 8일]] || || [[출생지]] || [[전라도]] 함평현 식지면 용두리[br](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용두리)[* [[선산 김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판철]]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 [[전라남도]] [[함평군]]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교락은 1882년 12월 20일 전라도 함평현 식지면(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한일병합]] 이래로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그러던 1917년 [[정동근(독립운동가)|정동근]], [[양재홍]], [[문재교]], 김영하(金榮夏), 고성후(高成厚) 등의 동지와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이후 권총·철봉(鐵棒)·도검 등을 휴대하고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남지역에서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1년여 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천여 원의 군자금을 수합하였다. 그러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3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징역 9년형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함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4년 8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교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