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안동 김씨(선)]][[분류:동남구 출신 인물]][[분류:1887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 김구응(金球應) || || 본관 || [[안동 김씨]] || || 생몰 || [[1887년]] [[7월 27일]] ~ [[1919년]] [[4월 1일]] || || [[출생지]] || [[충청도]] 목천현 갈전면 가전리[br](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인근의 송정리와 함께 [[안동 김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과 독립유공자 [[김상철(독립운동가)|김상철]]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 [[충청남도]] [[천안시|천안군]] 갈전면 아우내 장터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구응은 1887년 7월 27일 충청도 목천현 갈전면(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오후 1시 [[김교선]], 홍일선(洪鎰善), 한동규(韓東奎), [[이순구]], [[조인원(1864)|조인원]] 등이 주도한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군경들이 주재소에서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되어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대어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등 19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김병조(독립운동가)|김병조]]기 192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으로서 편찬한 <한국독립운동사략>에 따르면, 이때 김구응은 일본 헌병들이 조선인의 기수를 해치고 이를 막는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에 분노해 그들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러자 헌병들은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머리에 총을 쏴 죽인후 사지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 최정철이 아들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헌병을 질책하자, 이들은 그녀마저 찔러 죽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구응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