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강점기의 개신교 신자]][[분류:양주시 출신 인물]][[분류:1918년 출생]][[분류:196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군희}}}[br]金君喜'''}}}}}} || ||<|2> '''출생''' ||[[1918년]] [[3월 5일]] || ||[[경기도]] [[양주시|양주군]] 와부면 송촌리 || ||<|2> '''사망''' ||[[1963년]] [[1월 1일]] || ||[[경기도]] [[양주시|양주군]]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종교''' ||[[개신교]]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군희 선생은 1918년 3월 5일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삼봉(金三鳳)이다. 그는 [[감리회]] 신자로, 1938년 3월 서울 창천감리교회 예벳청소년회를 중심으로 [[오순환]], [[정은태]], 이선영(李善泳)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 창천체육회(滄川體育會)에 가입하였다. 이들은 조선총독을 비롯한 일제 고관 폭살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다가, 거사에 필요한 무기조작기술 등을 습득하기 위하여 인천조병창에 입사한 오순환 등 전 회원이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김군희 선생은 1942년8월26일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9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미결일수 400일만에 1944년 5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출옥 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여생을 지내다가 1963년 1월 1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김군희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