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김근배(金根培) || || 자 / 호 ||광원(光元) / 매하(梅下) || || 본관 ||[[김해 김씨]] || || 생몰 ||[[1847년]] [[7월 15일]] ~ [[1910년]] [[12월 13일]] || || [[출생지]] ||[[전라도]] [[전주시|전주부]] 북일면 매교리[br](현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교마을)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김근배는 1847년 7월 15일 전라도 전주부 북일면 매교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교마을)에서 김현교(金顯敎)의 아들로 태어났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8806|#]] 20세 되던 1866년, [[병인양요]]로 국난을 당하자 토적의거격문(討賊義擧檄文)을 지어 상소하였다. 이후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를 지내던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황제]]와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게 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이에 사임하고 낙향하여 청장년들에게 훈육을 통하여 항일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0년 8월 [[한일합방]] 직후, [[조선총독부]]가 헌병주재소장을 통하여 그를 포섭하기 위해서 소위 은사금(恩賜金)을 보내어 오자 이의 수령을 끝내 거부하였고, 앞으로 수없는 곤욕이 있을 것을 예견하여 죽음으로써 충절을 지키겠다는 유서를 남긴 후 그해 12월 13일 돌을 안고 집 안 우물에 빠져 순절하였다.[[http://db.history.go.kr/id/su_001_1910_12_13_0200|#]]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근배(독립운동가), version=4)] [[분류:김해 김씨]][[분류:익산시 출신 인물]][[분류:1847년 출생]][[분류:191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