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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김기범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LG 트윈스 1차 지명선수)] ---- [include(틀:LG 트윈스 개막전 선발 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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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파일:lgv1.png|width=auto&height=70]][[파일:Twins_champion_v2.png |width=70]][br]'''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 '''[[1990년 한국시리즈|{{{#ffffff 1990}}}]]''' || '''[[1994년 한국시리즈|{{{#ffffff 1994}}}]]''' ||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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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baseball2i.com/%EA%B9%80%EA%B8%B0%EB%B2%94.jpg|width=100%]] || ||<-2> '''{{{+2 김기범}}}[br]金基範 | Ki-beom Kim''' || ||<|2> '''출생''' ||[[1965년]] [[12월 13일]] ([age(1965-12-13)]세) || ||[[인천광역시]] [[중구(인천)|중구]]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인천축현초등학교|축현초]] - [[충암중학교|충암중]] -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 - [[건국대학교 야구부|건국대]]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좌투좌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1989년/신인드래프트#s-2|1989년 1차 지명]] ([[MBC 청룡|MBC]]) || ||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88 서울 올림픽]] 참가를 위해 1년 간 실업리그의 한국화장품 야구단에서 뛰었다. 당시 국제대회에 참여하려면 아마추어 선수 신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송진우(야구)|송진우]]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1988)[br]'''[[MBC 청룡]]-[[LG 트윈스]] (1989~2000)''' || [목차] [clearfix] == 개요 == 90년대 초중반에 전성기를 보낸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선수|프랜차이즈 스타]] 좌완 투수이다. == 선수 경력 ==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한 뒤 [[1989년]] [[MBC 청룡]]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외야수 [[노찬엽]][* 1987년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실업 야구 팀 농협에 입단했다. 당시는 프로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등과 더불어 입단했다.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로서 기대를 받았다. 신인이던 1989년 [[OB 베어스]]와의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 [[장호연]]과 맞대결을 펼치면서 5:1로 완투승을 기록했다. [[MBC 청룡]] 최후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서 팀의 개막전 연패 행진을 끊는데 공헌하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이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데뷔전을 완투승으로 장식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해의 청룡은 막장의 극한을 달리던 팀이라[* [[정삼흠]]이 시즌 중에 [[배성서]] 감독에게 항명하는 등의 일이 일어났으며 [[김재박]], [[이광은]] 등의 고참선수와 코칭스태프 간의 갈등이 있었다.] 시즌 내내 7승에 그쳤다. 어쨌든 [[김건우(1963)|김건우]]의 교통사고로 에이스를 잃고, [[정삼흠]]은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고 항명 사태를 일으켜 무기한 2군행 처분을 받는 등 투수진이 와해 직전이던 청룡에 간만에 등장한 쓸 만한 신인 투수로 주목을 받고 성장이 기대되었으나, 팀이 [[LG그룹|럭키금성그룹]]에 매각되어 [[LG 트윈스]]로 바뀐 첫 해에는 시즌 개막 직전에 싸움을 일으켜 부상을 입고 새로 부임한 [[백인천]] 감독의 눈밖에 나서 고생했다. 결국 그 해 5승에 그쳤지만, [[199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삼성 라이온즈]]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 투수가 되면서 우승에 공헌했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김용수]], [[정삼흠]]과 더불어 12승을 거두며 생애 첫 시즌 10승을 올렸고, [[1992년]], [[1993년]]에는 방위 복무로 인해 홈 경기 한정으로 등판 회수가 제한되면서 8승, 9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았다. 그러나 [[1994년]]에 또 다시 부상으로 3승에 그쳤고, 김기범의 공백은 [[갑툭튀]]한 신인 [[인현배]]가 메웠다. 그러나 이 해에도 [[1994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구원으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면서 묘하게도 팀이 우승한 두 해 모두 한국시리즈 3차전 승리 투수가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사실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는 선발, 구원, 마무리의 차이는 있었지만 1차전 승리 투수 [[김용수]], 2차전 승리 투수 [[정삼흠]], 3차전 승리 투수 김기범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해태 [[문희수]]도 우승때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승리투수 기록이 있다.] [[1995년]]에는 13승으로 개인 최다승을 거두며 야구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으나 팀은 시즌 막판 침몰로 정규시즌 2위로 밀려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롯데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묘하게 우승을 한 해에는 부상 등으로 큰 활약을 못하고 그 다음해에는 10승 투수가 되지만 팀은 우승에 실패하는 등 팀과 박자가 잘 안 맞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6년]]부터 [[에이징 커브|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 저하와 어깨 부상 등으로 기량이 저하되었고]], [[천보성]] 감독이 세대교체를 진행하자[* [[정삼흠]],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 [[김영직]], [[노찬엽]]이 은퇴하는 게 이 무렵이다.]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1998년]]에는 무려 76경기에 등판하면서 필승조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선수협 사태'''가 벌어진 후 구단과 생각이 틀어졌고, 구단에서는 그의 은퇴를 말렸지만 결국 [[2000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참고로 LG는 베테랑 선수들을 2000 시즌이 끝나고 줄줄이 은퇴시켰는데 [[김용수]], 김기범, [[김선진]], [[김상호(1965)|김상호]]가 모두 유니폼을 벗었다.][* 비슷한 일이 2012 시즌이 끝나고 일어나는데 이 때 [[경헌호]], [[손인호(야구)|손인호]], [[박명환]], [[이대환]] 등이 줄줄이 방출되거나 은퇴의 길로 들어선다.] 통산 성적은 391경기 62승 61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3.52다. 시즌 10승대는 단 2번이었는데 2점대 방어율을 4차례나 기록할 정도로 꾸준했으니 [[최창호(야구선수)|최창호]] 못지 않게 묘하게 승운이 안 따라 준 편이다. 공교롭게도 팀이 우승을 하면서 잘 나가던 해에는 부상으로 부진했고 전성기였어야 할 시절을 방위 복무로 보내면서 등판회수가 제한되는 등 커리어 동안 불운이 따른 탓도 있다. 신인 지명 당시 [[주사위]]에서 승리한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을 것으로 생각됐으나 정작 [[OB 베어스]]에서는 "현재의 실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겠다"면서 [[김거김|자신을 거르고]] 당시 [[듣보잡]]이었던 좌완투수 [[이진(야구)|이진]]을 지명한 반발심 때문인지 커리어 내내 [[OB 베어스]]에게 강세를 보이면서 1990년대 당시 [[OB 베어스]] 팬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당연히 "곰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 은퇴 후 ==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3_386766_1368999117922426.jpg]]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 [[애틀랜타]]에서 사업을 하면서 정착한 모양. 현지의 한인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동하면서 야구와의 연을 끊지는 않은 듯하다. 은퇴 후의 행적은 [[미국]] 현지에서 [[천하무적 야구단]]을 시청한 본인이 천하무적 야구단에 자신의 사연과 더불어 꿈의 구장 건립기금을 기부하면서 야구 팬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거기에 자신의 학교 후배인 [[탁재훈]]에게 내야 수비 자세 교정도 들어갔다.[* 탁재훈은 충암고를 졸업했다.] 만일 코치로 복귀하고 싶다면 자신이 몸담은 [[LG 트윈스]]로 복귀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훈 못지않게 LG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리고 2군 코치가 자신의 적성에 맞을 거 같다고 했다. 미국으로 떠났어도 마음은 여전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 있다는 것은 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76247|#1]]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76519|#2]]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기범, version=22)]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1965년 출생]][[분류:인천 중구 원도심 출신 인물]][[분류:좌완 투수]][[분류:좌투좌타]][[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8 서울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출신]][[분류:건국대학교 출신]][[분류:한국화장품 야구단/은퇴, 이적]][[분류:MBC 청룡-LG 트윈스/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