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의주군 출신 인물]][[분류:1896년 출생]][[분류:1965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두칠}}}'''[br]''' 金斗七'''}}}}}} || ||<-2> [[파일:김두칠.jpg|width=100%]] || ||<|2> '''출생''' ||[[1896년]] [[12월 13일]] || ||[[평안북도]] [[의주군]] || ||<|1> '''사망''' ||[[1965년]] [[7월 16일]] || || '''직업''' ||독립운동가||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3.1 운동]] 당시 의주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생애 == 1896년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고 양실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였다. 3.1운동을 앞두고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사람이었던 [[유여대]]와 함께 만세시위 계획에 대해 협의하였고 동료들과 함께 2.8독립선언서를 3백여매 등사하여 평안북도 도청, 경찰서 등 기타 관청들에 배포하였다. 3월 1일 8백여명의 기독교인들이 만세시위를 위해 읍내에 있던 교회에 모이자 그는 대형 태극기 2개를 교회에 세워놓고 종이로 만든 백여개의 태극기들을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진 후 그는 시위군중을 이끌고 만세삼창을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에 체포되었고 그 해 9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