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이인 독립운동가, rd1=김마리아(1891), other2=친일반민족행위자, rd2=박마리아)] [include(틀:여성 독립운동가)]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fff '''[[독립유공자|{{{#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1 김마리아}}}[br]金馬利亞 | Mariya Elenovna Kim[* 러시아명]'''}}}}}}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weekly.chosun.com/2138_40_03.jpg|width=100%]]}}} || ||<-2> {{{-2 {{{#gray 김마리아(좌)와 아들 이부흥(우)}}} }}} || ||<|2> '''출생''' ||[[1903년]] [[9월 5일]] || ||[[한성부]] 남서 두모방(성외) 왕십리계 신당리동[br](現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신당동(서울)|신당동]]) || ||<|2> '''사망''' ||[[1970년]] [[2월 1일]] (향년 66세) ||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서울)|신당동]] 366-16번지 자택 || || '''본관''' ||[[경주 김씨]] || || '''별칭''' ||'''호(號)''': 추산(秋山)[br]'''아명(兒名)''': 김수란(金秀蘭) || || '''부모''' ||아버지 김동수(金東守)[* 성리학 유생이었다고 한다. 후일 러시아로 귀화하였는데 귀화명은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김이다.]|| || '''배우자''' ||[[이범석]] || || '''자녀''' ||장남 이부흥, 차남 이인종 || || '''학력''' ||[[국방대학교]] {{{-2 (졸업 / 1기)}}} || || '''종교''' ||[[개신교]] {{{-2 ([[침례회]])}}} || || '''병역''' ||[[한국광복군]] {{{-2 ('''[[상사]] 전역''')}}} || || '''상훈''' ||건국포장 추서[br]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정치인]], [[군인]]. [[한국광복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의 부인으로 총리 부인, 국방장관 부인, 행정안전부장관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903년 9월 5일 한성부 남서 두모방(성외) 왕십리계 신당리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서울)|신당동]])에서 아버지 김동수(金東守)[* 러시아식 이름은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김이다.]의 딸로 태어났다. [[김상옥]]과 함께 마상 [[아킴보|쌍권총]] 실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하여 별명이 쌍권총 김마리아였다고 한다. [[만주]]에서 고려혁명군에 입대해 정치공작대원으로 [[시베리아]]에서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활동 중에 [[일본제국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적이 있고 이 때의 후유증으로 병을 얻게 되었다. 1925년 8월 후일 광복군 참모장,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 되는 [[이범석]]과 만나 [[결혼]]하였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한 뒤, 배우자 이범석을 보좌하며 한국광복군 본부 요원, 중화민국 육군중앙군관학교 제7분교 [[러시아어]] 교관, 전간단(戰幹團) 제7분단 한청반(韓靑班) 러시아어·[[중국어]] 교관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광복군 대원들에 대한 교육 활동에 전념했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남편 이범석과 [[이기붕]]이 [[권력]] 암투를 벌일 때 이를 지원하며 이기붕의 아내인 [[박마리아]][*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여성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1명이다.]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그 싸움에서 밀려 이범석이 실각하자 직접 [[청와대|경무대]]로 가서 [[이승만]]과 말다툼을 벌였다는 일화가 있다. 1970년 2월 1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서울)|신당동]][* 1975년 [[중구(서울)|중구]]에 이관되었다.] 366-16번지 자택에서 [[숙환]]인 만성 [[당뇨병]]으로 인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70020100239107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0-02-01&officeId=00023&pageNo=7&printNo=15015&publishType=00010|별세했다]].[* 영상역사관에서 [[https://www.ehistory.go.kr/page/view/movie.jsp?srcgbn=KV&mediaid=10927&mediadtl=23704&gbn=MH&quality=W|장례식]] 영상을 볼수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에게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마리아의 묘는 국립서울현충원 제유공자묘역에 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광복군/군인]][[분류:1903년 출생]][[분류:1970년 사망]][[분류:중구(서울)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대한민국의 여군]][[분류:대한민국의 여성 정치인]][[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당뇨병으로 죽은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침례회 신자]][[분류:러시아계 한국인]][[분류:군인 출신 정치인]][[분류:국가 지도자의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