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김말도}}}'''[br]'''金末度'''}}}}}} || || '''본관''' ||[[김(성씨)|경주 김씨]] || ||<|2> '''출생''' ||[[1924년]] [[12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부동[br](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 [[김(성씨)|경주 김씨]] 집성촌이다.] || ||<|2> '''사망''' ||[[1969년]] [[8월 4일]] || ||[[서울]]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103 || || '''상훈''' ||대통령 표창[* 198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990년] || [목차] == 개요 == 김말도는 1924년 12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부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요자(與謝)군의 시마무라(島村)토공 회사에 노동자로 취직하였다. 시마무라 토공에서 근무하던 1941년 6월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으로 교토 미야즈(宮津)중학교를 졸업한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8755|전경원]](全京元)을 만나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한국인의 참된 자유와 행복의 쟁취를 이루려면 조국이 독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고 독립운동에 몸을 바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그해 9월부터 [[경상남도]] [[통영시|통영군]] 출신의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3895|김석용]](金碩用)·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8758|이상문]](李相文)등 수명의 동지를 확보하고 요자(與謝)군 소재 미륵[[신사(신토)|신사]] 경내에서 수 차례 회합하여 상호 민족적 열의를 피력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민족차별 철폐, [[징병제]] 반대, 항공병에 자원입대하여 일본국 기지 폭격, 일본 경찰에 들어가 대대적인 독립운동 전개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일제 경찰의 토공 기숙사 일제 수색으로 전경원의 일기장이 발견됨으로써 동지들이 모두 체포되었으며, 그해 11월 10일 교토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장기간의 [[미결]] 끝에 1945년 [[8.15 광복]]을 맞았고, 그 직후 9월 [[맥아더]]사령부의 석방명령에 따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1969년 8월 4일 별세하였다.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1924년 출생]][[분류:196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