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의 인물]][[분류:1194년 사망]][[분류:고려(무신정권)]][[분류:참수된 인물]] [목차] == 개요 == 金沙彌 (? ~ 1194) [[고려]] [[무신정권]] 때 [[농민]] 봉기인 [[김사미·효심의 난]]의 주도자. == 생애 == 김사미의 출신에 대해서 뚜렷한 기록은 없지만 사미[* 沙彌, 구족계를 받기 위해 수행하는 [[동자승]]]라는 이름을 봐서는 [[승려]] 출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운문[* 현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출신이라고 된 걸 봐선 [[운문사]] 관련 인물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신라]]의 부활을 목표로 했고 성이 [[김씨]]인 걸 보면 신라 [[국성]]인 [[경주 김씨]]일 가능성도 있으나 김씨 [[본관]]이 경주 김씨만 있는 건 아니니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이 영향 탓인지 아래 문단의 창작물들은 김사미를 신라 왕가의 후예로 각색한 게 많다.] 세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193년 7월 [[경상도]]의 운문에서 [[신라부흥운동|신라 부흥]]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초전에서 세력을 일으킨 [[효심]]과 합세했으며 경주 출신인 [[이의민]]과 내통[* 다만 이의민도 신라부흥을 지지했다기보단 나중에 이의민을 제거한 최씨정권이 반란죄를 덮어씌웠다는 설도 있다. 혹은 이의민이 본인이 찬탈을 하기 위해 신라부흥 세력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말도 있다.]하여 8월에 이의민의 장남인 [[이지순]]으로부터 물자와 기밀 등을 제공받고 전존걸이 이끄는 진압군과의 싸움에서 그들을 연달아 패퇴시켰다. 그러나 상장군 [[최인]], 대장군 고용지 등이 이끄는 진압군의 공격을 받고 타격을 입자 1194년 2월 직접 행영에서 나와 [[항복]]했지만 참수되어 목숨을 잃고 만다. == 대중매체에서 == * [[소설]] 《김사미와 효심》에서는 인물 소개에 따르면 법성이라는 법명을 가진 승려이자 [[신라]]의 왕손으로 이름은 김대영. [[경주시|경주]] 농민군을 이끌다가 관군에게 패해서 친구인 이학진, 박부라 등과 함께 운문사로 숨어들었다가 운문 농민군을 조직해 최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병마사 행영인 [[강릉시|강릉]]에 가서 항복했다가 병마사 최인에게 즉시 참수되었다. * <[[무인시대]]> - [[김사미(무인시대)|김사미]] {{{-1 (강지후 분)}}}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사미(무인시대))] == 같이보기 == * [[김사미·효심의 난]] * [[무신정권]] * [[신라부흥운동]] * [[이의민]] * [[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