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김상현(1980)/선수 경력)] [목차] == 시즌 전 ==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부상 없이 소화하면서 LCK 타선의 부활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던 김상현은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최악의 타격감을 보이면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LG에 있었던 시절 타격코치였던 [[김용달]]과 상극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지라 팬들이 우려를 씻었던 상황. 게다가 [[김주찬]]의 영입으로 인해 이용규-김주찬 주전이 확정된 상황에서 남은 외야 수비 한 자리를 놓고 [[나지완]]-[[김원섭]]-[[신종길]]과 자리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개막 엔트리에는 들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는 의문인 외야 수비능력으로 인해 대타로만 나왔다. == 3월 ~ 4월 == 대타 및 대수비로 나옴에도 여전히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았던 김상현은 4월 4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드디어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다. 4월 18일 [[무등 야구장]] [[LG 트윈스]]전에서 우중간쪽 2루타를 날리며 타격감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우익수로 출장해 보살을 2개나 기록하는 등 수비에서도 좋은 활약을 하였으나 [[KIA 타이거즈/2013년/4월/18일|팀은 13:12로 졌다.]] 4월 2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SK 와이번스]]전에서 팀이 5회초 [[최희섭]]의 솔로 홈런으로 1:0으로 리드하기 시작한 무사 1루 상황에서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외야 뒤쪽 잔디석에 꽂힐 정도로 큰 타구를 날리며 장타력이 여전함을 과시했으며, 팀은 9:0으로 크게 승리했다. 4월 30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3:0 3회초 2사 1루에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때렸고, 3회말 5:2 2사 만루에서는 [[이원석(1986)|이원석]]의 싹쓸이 적시타가 될 수 있었던 타구를 점프캐치로 잡아내며 MVP급 활약을 했다. == 5월 == 그런데 5월 6일, 뜬금없이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진해수]]~~소폭탄~~도 함께 이적했으며, 대신 KIA로 온 선수는 [[신승현]], '''[[송은범]]'''.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던 선수였고, 2009년 V10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KIA팬들은 슬퍼했지만, 그래도 트레이드 자체는 KIA가 잘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주찬]]의 복귀로 미어터질 외야를 정리하고, 대신 빈약한 불펜진을 보강했기 때문. '''[[타어강|적어도 이 당시에는 그랬다.]]'''[* 일부 트레이드를 반대하던 쪽에서는, V10의 일등공신이자 팀내 충성도가 높던 선수(+[[진해수|부친상으로 안 그래도 멘탈이 어수선한 선수]])를 무턱대고 다른 팀으로 보내면 팀케미가 엉망이 될 거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KIA는 추락하기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 된 셈이다.] 트레이드 소식을 당일 아침에 전달받았던 김상현은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179207.htm|매우 씁쓸했다는 입장]]이었고, 안타까운 것을 떠나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고.[* 실제로 트레이드 날 당일 광주 KBS에서 방송된 [[베이스볼 매거진 야호]]에서 KIA 담당기자가 김상현에게 전화했을 때 첫 대답이 "친구야, 아프다"였었고, 공동진행자인 [[김봉연]] 교수 역시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군산상고 후배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고 다른 팀으로 옮겨가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가족들이 이미 광주에 정착한 상태였고, 더 이상 연고지 팀을 떠나기 싫었던 본인 입장에서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KIA에서는 외야가 포화상태라 2009년 정도의 임팩트가 없다면 주전 확보가 어려운 반면, [[최정]] 말고는 이렇다 할 클린업이 없는[* [[박정권]], [[안치용(야구)|안치용]]은 시즌 시작부터 부진하고 있고, [[한동민]]이나 [[조성우]]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유망주다. 수비 부담이 큰 포수인 [[조인성(야구)|조인성]]이나 [[정상호]]에게 클린업을 맡기기에도 무리가 있다.] SK에선 주전 자리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김상현에게는 또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5월 7일, 두산전에 4번타자로 선발출장해서 1회말에 볼넷을 따내고 조인성의 안타 때 홈을 밟으며 이적 후 첫 득점에 성공하고, 2회말에는 2사 1루 상황에서 우전안타를 기록한다. 비록 4회말 무사 만루상황에서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6회말 선두타자로 [[김태영(야구선수)|김태영]][* 2013시즌 종료후 김상현에서 김태영으로 개명하였고 KIA로 이적하였다.]에게 안타를 뽑아내며 멀티히트를 기록한다. 그리고 운명의 8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정재훈의 8구째 공이 높게 형성되자 김상현이 전력으로 휘두르고 방망이를 던졌다. 3:8로 달아나는 쐐기 투런포가 터져버렸다. 주먹을 불끈쥐며 베이스를 돌고, ~~날 버린 선동열 보라는듯이~~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 세레머니까지 선보이며 이 날의 성적은 '''4타수 3안타 1볼넷 2타점 2득점'''. 이날 기아가 2안타 1볼넷 0득점 관광을 당한 것에 비해 특급 활약을 해냈다. 이후 [[508 대첩]]에서 희대의 역전승이 나오면서 확실히 팀 타선에 활력소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본인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7&sid2=213&oid=109&aid=0002529880|팀에 잘 적응한 듯하다]]. 하지만 SK 이적 이후의 김상현의 성적은 좋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KIA에서 이적하기 전보다 타율이 더 내려간 상태이다. 기존에 비교적으로 하위타선에 배치되면서 타선을 뒷받침하던 역할을 하던 것이 4번타자로, 더군다나 [[이만수]] 감독이 김상현에게 홈런타자로써 큰 스윙을 주문하면서 김상현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5월 16일 친정팀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5타수 2안타 2타점. 그다음달인 17일, 문학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선 4타수 3안타(2루타 2개) 1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하였다. 팀도 4대3으로 승리. 이후로도 연속 안타를 치는 등 서서히 타격감이 오르고 있으며 타율도 2할 초반에서 2할 7푼까지 올라섰다. == 6월 == 홈런을 못 치는 등 부진에 시달리다가, 결국 7일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까지 되었다. 그러나 9일 한화전에서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하였으나 [[이재영(야구선수)|이재영]]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패배. 11일 [[두산 베어스]]전 8회초에 오랜만에 홈런포가 터졌다!! 시즌 4호 솔로홈런으로 팀과 에이스 [[김광현]]을 구해낸 솔로포였다. 팀은 이날 5:7로 승리. 그러나 다시 선행[[주자]]를 사살하고 [[병살타]] 코스로 타구가 날아가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까이고 있다. 6월 한 달 동안 0.213의 낮은 타율과 2홈런 7타점의 성적[* 20타수 적게 출장한 [[박재상]]이 6월에 1홈런 6타점이었다. 게다가 박재상은 상/하위타선에 있고 김상현은 클린업에 중용되었는데도 비슷한 성적이라는 것은...] 으로 SK의 추락에 일조했다. [[박정권|그지]]가 ~~갑자기~~ 6월에만 3할, 5홈런 24타점으로 제 역할을 다 한것과 비교되는 성적이다. 5월달과 마찬가지로 [[이만수]]감독의 과도한 믿음이 선수에게 악영향을 준 것이라는게 팬들의 생각. == 7월 == 2일 친정팀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8회 [[한동민]]의 대타로 나와 병살을 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솩팬들은 김상현이 대타로 나올 때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결국 7월 7일 한화전을 앞두고 [[조인성(야구)|조인성]], [[나주환]]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한편 그 경기는 9월 21일로 우천 순연되었다. 여기에 7월 11일, KIA 구단 홈페이지의 [[호랑이 사랑방]]에 송도 2군경기를 관전하러 온 KIA 팬에게 KIA팬임을 먼저 알아보고 '''기아의 김상현으로 [[싸인]]을 해줬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SK 팬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http://gall.dcinside.com/skwyverns/3112385|여러 정황 증거와]] SK [[프런트]]의 확인 결과 사실로 판명되었고, 프런트는 [[SNS]]를 통한 간접 사과로 논란을 무마함으로써 김상현 본인에게 제대로 사과하게 하고 징계를 내리라는 팬들의 의견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노한 팬들은 ~~특히 솩갤러~~ 프런트에서 관리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털며 분풀이를 하는 중. ~~그러나 들어먹을 프런트가 아니지. 팬들 말을 들었다면 [[김성근|인천예수]]를 자를 리가 없잖아?~~ ~~그건 잘한건데? 지금 한화를 보면...~~ 이번 사태는 프로 선수가 소속 팀을 공개적으로 부정했으며[* 선수 본인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소속 팀을 부정한 것은 프로 의식의 부재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http://gall.dcinside.com/skwyverns/3113309|전 소속팀과 현 소속팀 팬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이 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에 따른 적절한 징계가 일벌백계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프런트의 행동은 팬들을 분노하게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모기업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임에도 [[KIA 타이거즈|특정 팀에게]] 호의적인 언론과 사태를 대충 무마하려는 SK 프런트의 방관자적 태도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몇 년 후 사인을 받았던 팬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는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716|본인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미안했다고 한다.]] 사건과는 별개로 해당 인물은 KIA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으로, 700여개(!)가 넘는 사인볼을 수집했다고 한다. == 8월 == 8월 13일 SK 대 KIA 문학경기에서 1회초 [[김광현]]이 난조에 빠져 만들어 준 만루 상황에서 [[이범호]]가 친 홈런성 타구를 담장 위로 글러브를 들어올려 잡아내는 환상적인 호수비로 만루홈런을 희생플라이로 바꾸어놓았다. SK팬들은 환호하며 "오늘은 병살타를 쳐도 용서해 주겠다"며 일일 까방권을 주었다. 경기는 9:2로 SK의 승리.[* 사실 SK에서 장기간의 활약도 없었고 이후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 못했던 김상현에 대해 큰 애정은 남아 있지 않았던 SK팬들이지만, 그의 이적 첫 경기와 이 경기까지 두 경기만은 대부분의 팬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SK의 영원한 아이돌 김광현을 크게 구원했던 이 호수비는 수많은 SK팬들이 김상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극소수의 매우 좋은 기억이다.--그러나 기아에게는 만루홈런을 날린 원쑤같은 기억-- SK에서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들 중에 김상현이 성적이나 경력(SK의 2009년 준우승에 영향을 미친 선수들을 살펴 볼때, 당시 우승팀 기아의 홈런왕이었던 김상현 역시 큰 몫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비 비호감 이미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경기 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 9월 == 9월 들어서도 성적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 상황이다. 9월 성적은 타율 2할에 45타수 9안타 2타점 2득점 13피삼진 2병살로 홈런이나 장타는 전혀 없이 꼴아박았으며, 타율도 2할 3푼대로 떨어진 상황. == 정리 == 시즌 최종 성적은 113경기 322타수 타율 0.236 76안타 7홈런 37타점 39득점으로 제대로 꼴아박았다. 특히 병살은 '''17개'''로 리그 4위이며 팀내 압도적 1위[* 2위는 최정으로 10개. 3위는 김강민의 9개]인데, 18개를 찍은 공동 1위 3명은 모두 350타수 이상을 찍었다. 병살타 10위권의 선수들 중 350타수 미만 타자는 [[김태균]]과 김상현밖에 없는데, 김태균을 김상현과 비교하기엔 너무 차이가 많이난다 삼진도 1위 최정 다음으로 많다. [각주] [[분류:김상현(1980)]][[분류:야구선수/커리어]][[분류:KIA 타이거즈/2013년]][[분류:SK 와이번스/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