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김점순}}}'''[br]'''金点順'''}}}}}} || || '''이명''' ||김성녀(金姓女) || ||<|2> '''출생''' ||[[1861년]] [[4월 28일]] || ||[[황해도]] || || '''사망''' ||[[1941년]] [[4월 30일]] (향년 80세)|| || '''상훈''' ||대통령표창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김상옥]]·[[김춘원]] 형제의 어머니이다. == 생애 == 1861년 4월 28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이후 군관(軍官)으로 있던 김귀현(金貴鉉)과 혼인하였고, [[한성부]] 동부 숭신방 숭신동계 대정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으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다. 그녀는 1919년 11월 아들 [[김상옥]] 의사의 혁신단 활동 당시, 활동 내력이 외부로 유출되자 등사판을 파괴하여 증거를 인멸하였으며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으로 국내에 잠입한 아들의 행적이 노출된 사실을 알고 그를 피신 시키는 한편 자신이 가족들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들어가 옥고를 치렀다. 1923년에는 아들 김상옥이 [[서울종로경찰서|경성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를 일으키기 전, 필요한 권총과 폭탄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의거 이후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였고 1941년에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1861년 출생]][[분류:1941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