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산 전적: 24전 19승 3패 2무 9ko 1961년 [[화성시]] 출생. 1978년 프로 데뷔. 주니어 밴텀급 신인왕 출신이다. 당시 그를 키워낸 트레이너가 나중에 [[유명우]]와 [[지인진]]도 키웠다. 1980년 한국 수퍼 플라이급 챔피언이 되고 1981년 [[베네수엘라]]에서 당시 챔피언이던 라파엘 오로노와 경기를 가졌는데, 9회 KO로 WBC 수퍼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사실 경기내용은 김철호가 많이 밀렸는데 9회에 김철호의 복부공격에 라파엘 오로노가 통증을 느끼고 주저앉았고, 여기서 일어나지 못하면서 그대로 KO가 선언되었다.] 한국 챔피언이 된 후 사실상 곧바로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 상황으로 프로모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운이 따랐다고 한다. 이렇게 경력이 일천한데다 원정 경기여서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고, 설 명절 즈음이었기 때문에 정초부터 패하는 경기를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복싱 인기가 엄청나던 그 시절의 세계 타이틀전인데도 생방송으로 중계되지도 않았다. 당시 박찬희, 김태식 등 모든 한국 권투 선수들이 타이틀 방어에 실패, 한국 챔피언이 아무도 없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깜짝 챔피언이 된 이후, 와타나베 지로[* 한국 선수들과 몇 차례 타이틀매치를 가져 인지도가 있는데, 김철호에게 패한 이듬해 다시 도전에 나서 결국 타이틀을 획득한 후 11차방어에 성공하는 등 롱런했다.] 등을 꺾으며 높은 KO비율로 4차 방어전까지 승승장구했지만, 5차 방어전에서 라울 발데스에게 졸전 끝에 무승부를 허용하며 (무승부도 일단 타이틀 방어는 성공이지만)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결국 1982년 6차 방어전으로 [[장충체육관]]에서 오로노와의 재경기가 있었는데 6회 38초만에 ko패. 최다 타이틀 방어 기록을 눈 앞에 앞두고 실패했다. 1961년생으로 챔피언 등극 당시 만 19세[* 당시 한국 최연소 기록이었다고 한다], 오로노와의 2차전에서 패할 때에도 겨우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여서 체중 유지의 어려움도 있었고 홍수환 등 계속 트레이너가 바뀌면서 지도 방법이 바뀌는 어려움도 있었다. 처음 챔피언이 될 때 당시 오로노가 수술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부위를 맞고 졌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1년여만에 가진 재기전에서도 판정패한 뒤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로 생활하여 문성길 등을 길러 낸다. [[분류: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분류:화성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출생]][[분류:1978년 데뷔]][[분류:1983년 은퇴]]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철호, version=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