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근대사격제도)] [목차] == 개요 == 남양신사(南洋神社)는 [[남양 군도]], 오늘날 [[팔라우]]의 코로르(Koror)섬에 있었던 [[신사(신토)|신사]]이다. [[1940년]]에 창건되었으며, 이는 [[황기]] 2600년([[서력기원|서기]] 1940년) 기념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제신은 [[아마테라스]]. == 현황 == [[1997년]]에 일부 [[일본인]]들이 구 남양신사 터에 조그마하게 신사를 지었다. 하지만 본디 남양신사에서 모시던 신체(神体)는 [[1946년]]에 [[일본]] 궁내부로 이송되었고, [[1997년]]에 '재건'된 남양신사는 신체를 별개로 모셨기 때문에 신토적인 의미에선 '구 남양신사의 재건'이 아니라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신격을 모신 다른 신사 취급. 게다가 말이 재건이지 구 남양신사 신전과 배전 터만 현지인 소유주에게 [[임대]]하여 작은 사당을 세운 정도에 불과하다. 개인주택 부지의 일부가 된 관계로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참배조차 하기 힘든 위치라고. [[팔라우]]는 반일감정이 적은 지역이라[* 팔라우는 일단은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인 [[남양 군도]]의 일부로서 [[일본 제국]]은 [[대만일치시기|대만]]이나 [[일제강점기|조선]]과 같은 [[식민지]]와 비교해서 강압적 동화정책을 펴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후나사카 히로시]] 같은 수많은 반전운동가들이 [[팔라우]]까지 와서 반전운동을 벌이고 전쟁 중에 사망한 현지 민간인과 [[일본군]], [[미군]]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차별 정책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반일]] 감정이 크게 희석된 것도 있다. 물론 식민지에서 징용한 노동자들을 데려와 부려먹긴 하여, 아예 반일감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재건된 남양신사에 있는 비석 중 [[태평양 전쟁]]에서 죽은 [[일본군]]을 기리는 문장도 있다. 한편 일본 [[사이타마현]] [[코시가야시]] 코시가야(越ヶ谷) 1700번지에 있는 히사이즈 신사(久伊豆神社)[* 신사명 久伊豆를 정식으로는 '히사이즈(ひさいず)'라고 읽지만, 쿠이즈(クイズ)라는 독법도 대중에게 통용되는 듯하다.]에서는 관련 기관들의 협력을 받아 2016년 경내에 '구 관폐대사 남양신사 진좌적지 요배전(旧官幣大社南洋神社鎮座跡地遥拝殿)'이라는 건물을 세웠다. 이름은 '[[근대사격제도]]에서 관폐대사였던 남양신사의 터를 요배(멀리서 절함)하는 전각'이란 뜻이다. 해당 건물 옆에는 역사학자이자 신토학자였던 [[고쿠가쿠인대학]] 명예교수 사카모토 코레마루(阪本是丸 1950-2021)가 글을 쓴 석비가 있다. 낙성식에는 당시 [[팔라우]]의 토마스 레멩게사우 주니어(Thomas Esang Remengesau, Jr.)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조선신궁, version=480, title2=남양 군도, version2=113)] [[분류:신사(신토)]][[분류:팔라우의 역사]][[분류:없어진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