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프랑스의 역사)] ||<-4> {{{+1 '''노르망디 공국''' [br] '''Duchie de Normaundie''' [br] '''Ducatus Normanniae'''}}} || ||<-4> [[파일:노르망디 문장.svg|width=200]]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rtenormandie2.png|width=250]] || || 존속기간 ||||<(> [[911년]] ~ [[1204년]][* '결지왕' 존이 땅을 잃어 실질적으로 멸망한 시점.] / [[1469년]][* 최종 소멸] || || 위치 ||||<(> [[프랑스]] [[노르망디]][br][[영국]] [[채널 제도]] || || [[수도(행정구역)|수도]] ||||<(> [[루앙]] || || 국가원수 ||||<(> [[공작(작위)|공작]][* 잉글랜드 왕이 겸직하기도 함.] || || 주요 공작 ||||<(> [[롤로]](911~927)[br]리샤르 1세(942~996)[br][[윌리엄 1세|기욤 2세]](1035~1087) || || [[언어]] ||||<(> 고대 [[노르만족|노르만어]], [[라틴어]] || || [[종교]] ||||<(> [[가톨릭]] || || 종족 ||||<(> [[노르만족]] || || 성립 이전 ||||<(> [[프랑크 왕국|서프랑크 왕국]] || || 멸망 이후 ||||<(> [[프랑스 왕국]] || ||||||<:><#dcdcdc> 언어별 명칭 || || 중세 [[프랑스어]] || Normendie || || [[바이킹|고대 노르드어]] || Norðmanndi || || [[중세 영어]] || Normandie || || [[라틴어]] || Ducatus Normanniae || || [[노르만어]] || Duchie de Normaundie || || [[프랑스어]] || Duché de Normandie || || [[영어]] || Duchy of Normandy || [목차] [clearfix] == 개요 == [[유럽]]의 옛 [[국가]]. 원래 [[프랑스 국왕]]의 봉신인 노르망디 공작의 영지였으나 [[1066년]] 노르망디 공작 기욤(월리엄) 2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잉글랜드 왕이 되면서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하자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면서 소멸했다. == 역사 == === 건국 === [[9세기]] 초 프랑스는 [[바이킹]]([[노르드인]])들의 침략으로 마구 약탈당하면서 피해가 심각했다. 바이킹은 [[845년]] [[파리(프랑스)|파리]]를 점령하고, 철수하는 대가로 막대한 배상금을 챙기기도 했다. 이에 [[911년]] [[서프랑크]]의 '단순왕' [[샤를 3세]]는 바이킹들과 싸우느니 차라리 그들의 [[힘]]을 인정하고, [[노르만 기사|봉신]]으로 부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들 중 한 무리의 두목이었던 [[롤로]][* Rollo. 본명은 흐롤프(Hrolfr)로 [[노르웨이]]를 통일한 하랄 1세(미발왕 하랄)의 노여움을 사 추방되었다.]에게 [[센 강]] 하류의 노르망디 지역을 주고, [[백작]]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훗날 노르망디 공국으로 발전하게 될 루앙 백국이 건국되었다. 대신 롤로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로베르'([[Robert]])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후 다수의 [[노르드#s-2|노르드인]]이 이 [[지방(지리)|지방]]으로 이주하여 영지를 확장하고, 특수지역을 만들어 실질적인 독립국을 만들었으며, 차츰 프랑스화하여 [[노르만족|노르만인]]이 되었다. 롤로는 훗날 [[잉글랜드]]를 정복한 '정복왕' [[윌리엄 1세]]의 고조[[할아버지]]였다. 롤로가 처음 임명될 때는 백작이었지만 증손자였던 리샤르 2세때 선정과 공적을 인정받아 [[공작(작위)|공작]]으로 승격되었다. 롤로 이후 기욤 1세-리샤르 1세-리샤르 2세-리샤르 3세를 거쳐 로베르 1세가 즉위했다.[* 리샤르 3세는 로베르 1세의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다.] 로베르 1세는 원래 아들로는 기욤 하나뿐이었는데 하필 기욤의 어머니 에를르바가 로베르 1세와 정식 결혼하여 기욤을 낳은 게 아니었고, 그녀의 출신도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기욤은 훗날 [[사생아]]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게 되었다. === 기욤 2세의 잉글랜드 정복 === 롤로의 [[현손]]자였던 기욤은 [[사생아]]였지만 전대 공작이었던 아버지 로베르 1세의 [[유언]]에 따라 뒤를 이었으니, 그가 기욤 2세였다. 기욤 2세는 친척들의 [[견제]]와 방해해도 불구하고 노르망디 공작 직위를 유지하고, [[1066년]] [[잉글랜드 왕국]]을 침공하여 [[헤이스팅스 전투]][*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해럴드 2세]]가 [[하랄 3세]]를 격파하고 전력이 쇠해진 틈에, [[윌리엄 1세|기욤 2세]]가 헤이스팅스에서 [[해럴드 2세]]를 격파했다.]에서 [[해럴드 2세]]를 죽이고, 승리함으로써 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가 되었다.[* 윌리엄의 프랑스식 명칭이 기욤이다.] 이로써 [[노르만 왕조]]가 잉글랜드에 성립했다. 생전에 [[장남]] 로베르 2세와 충돌을 빚었던 윌리엄 1세는 로베르의 모든 상속권을 박탈하고, 죽기 직전에야 노르망디 공국을 물려주었으며, 정복지였던 잉글랜드 왕국은 그의 [[삼남]] [[윌리엄 2세]]에게 주었다.[* [[차남]] 리샤르는 윌리엄 1세보다 먼저 죽었다.] 로베르 2세는 호시탐탐 잉글랜드를 노렸고, 윌리엄 2세 사후에는 그의 동생 [[헨리 1세]]가 뒤를 이었다. 로베르 2세는 막내 동생 헨리 1세를 공격하여 잉글랜드를 뺏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사로잡혀, 되려 노르망디 공국을 잃었다. 이후 대대로 [[노르만 왕조]]의 국왕이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을 겸하게 되었는데, 원래 노르망디가 프랑스 왕국 권역이었고, 잉글랜드 왕은 잉글랜드 내에서는 왕으로, 프랑스 왕의 신하가 아니었지만, 노르망디 공작으로서는 그 통치 권한이 프랑스 왕국 권역하의 프랑스 왕의 봉신 자격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노르만 왕조 이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갈등 요소가 되었다. 프랑스 왕은 외국 왕에게 넘어간 프랑스 왕국 내 공작령을 수복하려고 했고, 잉글랜드에서는 합법적 권한으로 노르망디 통치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노르망디 공국 및 결혼으로 얻은 아키텐 공국, 그리고 혼인으로 맺어진 프랑스 왕가 혈통을 기반으로 프랑스의 왕위까지 노렸다. 이는 결국 훗날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된 [[백년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 === 노르망디 공국의 [[프랑스]] 귀속과 그 이후 === 노르만 왕조가 끊긴 이후 그 뒤를 이은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들도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지만 [[존 왕]] 때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2세]]의 모략과 공격으로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어 [[1204년]] [[채널 제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실해 버렸다. 훗날 [[백년전쟁]] 때 잠시 소유했다가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는 채널 제도와 [[칼레]]를 제외하고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백년전쟁 이후 잉글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프랑스 내 영토는 칼레뿐이었는데 이마저도 [[1558년]] [[튜더 왕조]]의 [[메리 1세]] 때 상실함으로써 프랑스 내의 영토를 모두 상실했다. 하지만 당시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 중 [[채널 제도]]([[저지 섬]], [[건지 섬]] 등)는 지금도 노르망디 공 [[윌리엄 1세]]의 후손인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재위하고 있는 왕실의 속령이기 때문에 [[중화민국|영토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뿐 노르망디 공국은 채널 제도에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는 [[농담]]도 있다. 물론 채널 제도의 건지, 저지 자치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군주인 찰스 3세를 국왕이라 칭하지만 아직도 채널 제도의 현지 주민들은 노르망디 공(Duke of Normandy)[* 엘리자베스 2세 시절에는 군주가 여성이었으므로 본래는 Duchess가 되어야 하지만 채널 제도의 현지인들은 관례적으로 군주가 여성이라도 Duke라고 부른다는 듯하다.]이라 부른다고 한다. 영국의 전대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1967년]] 노르망디 본토를 방문했을 때도 프랑스 국적인 노르망디 본토의 현지 주민들이 공작 만세!(Vive la Duchesse!)라고 외치며 환호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자코바이트]]파는 [[명예혁명]]을, '[[의회]]가 왕을 자신들 마음대로 갈아치운 [[쿠데타]]'로 간주하여 명예혁명 이후에 즉위한 영국 역대 왕들의 정통성을 모조리 부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르망디 공작 칭호 또한 불법적으로 사용한 칭호로 여기며, 그에 따라 현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이면서 [[바이에른 왕국]]과 [[그리스 왕국]] [[비텔스바흐 가문|비텔스바흐 왕조]]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한 프란츠 폰 바이에른을 명목상의 노르망디 공작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에 귀속된 노르망디 공작위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내에서는 폐지되었다.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노르망디]] 항목을 참조. == 역대 군주 == [include(틀:역대 노르망디 공작)] * [[롤로]] 911년~927년(루앙 백작) * 기욤 1세 927년~942년 * 리샤르 1세 942년~996년 * 리샤르 2세 996년~1027년(공작으로 승작) * 리샤르 3세 1027년~1028년 * 로베르 1세 1028년~1035년 * [[윌리엄 1세|기욤 2세]] 1035년~1087년. 헤이스팅스 전투를 통해 잉글랜드 국왕 등극. * 로베르 2세 1087년~1106년(기욤 2세의 장남. 잉글랜드의 왕위를 주장하며 앙리(헨리) 1세와 왕위 계승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하여 노르망디 공작위까지 박탈당했다.) * [[헨리 1세|앙리 1세]] 1106년~1135년 이후는 프랑스에 귀속될 때까지 잉글랜드 왕이 겸직했다. == 여담 == [[2018년]] 게임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에서 후반 위기를 조성하는 세력으로, 바이킹 세력으로 분류된다. 인게임 후반부에 잉글랜드 남부 [[바다]]에서 등장하며, 노스 세력과 함께 논플레이어블 세력이지만 고유 로스터를 가지고 있다. 멀티플레이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다. [[분류:노르만족]][[분류:프랑스의 역사]][[분류:공국(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