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Nikolaus_Esterhazy.jpg|width=100%]]|| [목차] [clearfix] == 개요 == [[합스부르크 제국]]의 군인.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클래식 음악사에서는 [[요제프 하이든]]의 고용주, 후원자로도 알려져 있다. == 일생 == === 초기 경력 === 니콜라우스는 1714년 12월 18일 [[빈(오스트리아)|빈]]에서 태어났다. 그가 속한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헝가리 왕국]]에서 가장 명망높은 귀족 가문 중 하나였고, 니콜라우스는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좋은 교육을 받다가 헝가리 [[후사르]] 비정규 연대에서 복무했다. 1737년 3월 4일, 에스테르하지는 웅나드 백작부인 마리 엘리자베트와 결혼해 3남 3녀를 낳았고 1741년에 후사르 비정규 연대의 대령이 되었다.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니콜라우스는 정규 연대인 길라니 후사르 연대에 합류했다. 1744년, 그는 이 연대의 대령 및 사령관으로 승진했고 [[프랑스군]]을 상대로 한 라우터부르크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1745년, 그는 [[호엔프리드베르크 전투]]와 [[조르 전투]]에 참가했고 1746년에 [[작센 선제후국]]의 [[드레스덴]] 의회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그의 연대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로 파견되어 [[로쿠스 전투]]와 [[라우펠트 전투]]에 참가했다. 1747년 7월 6일, 니콜라우스는 야전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빈으로 소환된 뒤 [[황제군|오스트리아군]]의 후사르 연대에 대한 일련의 규정을 고안해 모든 후사르 연대가 이를 준수하게 했다. === 7년 전쟁 === 1757년 [[콜린 전투]]에 참가한 니콜라우스는 보병 연대를 이끌고 총검 돌격을 감행하다가 말 세마리를 잃었지만 개의치 않고 앞장서서 부하들을 이끌었고, 전투가 끝나갈 무렵 흐트러진 몇몇 기병 대대를 집결시킨 후 돌격을 감행시켜 승리를 이끌어냈다. 니콜라우스는 이 전투에서의 용맹을 인정받아 1757년 6월 25일 중장으로 승진했고 1758년 3월 7일 [[마리아 테레지아]] 기사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니콜라우스는 여단이나 사단의 지휘관으로서 오스트리아군이 치른 대다수 전투에 참가했다. === 이후의 경력 === 1764년, 니콜라우스는 [[요제프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고 같은 해 4월 21일 육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해 12월, 그는 빈 궁정에서 헝가리 근위연대 대장으로 임명되는 영예를 얻었다. 1765년, 니콜라우스는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왕조]]의 최고 직위인 황금 양모 기사단에 배속되었으며, 10월 15일에는 요제프 2세의 적극적인 추천에 힘입어 마리아 테레지아 사령관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1770년에는 야전군 원수로 승진하였고 1778년 [[바이에른 계승 전쟁]] 때는 자비로 200명의 후사르를 모집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궁정의 깊은 신임을 받으며 말년을 편히 지낸 니콜라우스는 [[요제프 하이든]] 등 여러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아이젠슈타트|키슈머르톤]]에 에스테르하지 궁전을 건설하고 그곳을 예술가들의 집합소로 삼는 등 여러모로 오스트리아 예술계에 많은 기여를 하다가 1790년 9월 28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분류:오스트리아의 군인]][[분류:1714년 출생]][[분류:1790년 사망]][[분류:빈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