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볼리비아 대통령)] ||<-2>
'''{{{#FF0000 볼리비아 다민족국 제33대 대통령}}}'''[br]{{{#FF0000 '''{{{+1 다니엘 도밍고 살라망카 우레이}}}[br]Daniel Domingo Salamanca Urey'''}}}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Daniel Salamanca.jpg|width=100%]]}}} || ||<|2> '''출생''' ||[[1869년]] [[7월 8일]] || ||[[볼리비아]] 코차밤바(Cochabamba) || ||<|2> '''사망''' ||[[1935년]] [[7월 17일]] (향년 66세) || ||[[볼리비아]] 코차밤바 || || '''국적''' ||[[파일:볼리비아 국기.svg|width=28]] [[볼리비아]] || ||<|2> '''재임 기간''' ||제33대 대통령 || ||[[1931년]] [[3월 5일]] - [[1934년]] [[12월 1일]] || || '''약력''' ||볼리비아 하원의원,,,(1900-1901),,, [br]재정부 장관,,,(1903-1904),,, [br]'''볼리비아 제33대 대통령''',,,(1931-1934),,, || [목차] [clearfix] == 개요 == 볼리비아의 제33대 대통령이다. [[차코 전쟁]]을 일으켰으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군사 쿠데타로 물러났다. == 생애 == 1899년 자유당 소속으로 볼리비아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임기 종료 후, [[호세 마누엘 판도]] 대통령은 그를 재정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1921년 진(眞)공화당(Partido Republicano Genuino)를 창당하면서 나왔다. 1925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정계를 은퇴했으나 1930년 군사 쿠데타로 정부가 전복되자 다시 복귀했고 이듬해 3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대통령에 임명되고 긴축 정책을 도입했고 반대파를 탄압했다. 파라과이와의 분쟁 지역인 그란차코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공고히할 것을 표방했다. 강경파인 살라망카 대통령은 그란차코에 요새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이유는 그란차코에서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석유는 2012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또한 국가 통합을 강화하고 정부의 결점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 분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결국 [[차코 전쟁]]으로 확대되었으나 자신이 임명한 [[한스 쿤트]] 총사령관이 졸전 끝에 경질되고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군부와 관계가 나빠졌다. 1934년 11월 27일, 살라망카 대통령이 남쪽 전선의 비야몬테스 사령부에 방문한 사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퇴위당했다. [[호세 루이스 테하다]] 부통령이 뒤를 이었다. 살라망카는 고향으로 돌아가 위암으로 1년도 안되어 사망했다. [[분류:볼리비아 대통령]][[분류:1869년 출생]][[분류:1935년 사망]][[분류:코차밤바 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