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네팔의 재난]][[분류: 1988년 재난]][[분류: 압사 사고]][[분류: 축구 사건 사고]] [Include(틀: 사건사고)] [[파일: 네팔 축구장 압사.jpg|width=600]] [목차] == 개요 == '''२०४४ को दशरथ रङ्गशाला दुर्घटना''' [[1988년]] [[3월 12일]] [[네팔]] [[카트만두]]의 다샤랏 스타디움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 == 사고 당시 == 당시 네팔에서 가장 큰 축구 장 다샤랏 스타디움에서, 네팔에서 가장 큰 토너먼트인 트리부반 챌린지 실드(Tribuhvan Challenge Shield) 결승전이 열렸다. 자낙푸르 시가렛 팩토리(Janakpur Cigarette Factory)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묵티조다 상사드 FC(Muktijodha Sangsad FC)가 맞붙었다. 경기를 구경하러 30,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경기장 최대 허용 인원이 27,000명이니 3,000명이 더 모인 상황이었다. 홈구장임에도 불구하고 묵티 조다가 선제 골을 넣으면서 네팔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소 안좋아졌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19분 뒤, 갑자기 천둥번개와 강풍을 동원한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풍속 80km의 바람이 부는 탓에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에 벗겨져 날아갈 정도였다. 날씨가 너무 험악해 경기가 취소됐다. 선수들은 각자 락커로 대피했다. VIP석은 이런 날씨를 예상하고 지붕과 테라스를 설치해서 만들었기에 별 탈 없었다. 하지만 일반석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강풍에 휘날리는 우박을 피해 움직였다. 경기장을 둘러 싼 울타리엔 [[철조망]]이 깔려있어 문으로 나가야했다. 문제는 당시 경기장 문이 한 곳 밖에 열려있지 않았다. [[무전취식|돈 안내고 들어오는 사람]]을 막겠다고 다른 문들을 전부 잠궈뒀다. 사람들이 문 한곳으로 몰리면서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더 몰리자 사람이 사람에 깔려 숨도 못쉬는 지경에 이르렀고, 숨을 못 쉰 사람들은 그 자리서 의식을 잃었다. 경찰이 그 광경을 목격했으나, 막기는 커녕 사람들이 막 몰려오자 곤봉을 휘두르며 위협해 뒤로 물러나게 했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사태가 진정됐을 땐 이미 여러 사람이 압사당한 뒤였다. 부상자들은 인근의 구급차와 자가용을 최대한 동원해 인근 병원들로 이송됐고, 시신은 급히 경기장 한쪽에 안치됐다. 사방에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흘린 신발로 가득했다. 사고로 '''93명이 압사'''했다. 이 사고는 네팔 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로 기록됐다. == 사고 이후 == 사고로 사람들은 분노해 VIP 게스트의 차량과 상임위원장의 차를 부수기도 했다. 교육부 장관과 국민 체육회 위원장, 네팔 축구 연합 회장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네팔 정부는 유가족에게 1명당 1만 [[네팔 루피|루피]], 부상자에겐 한명당 2천 루피를 조의금으로 지급했다. 사고 이후 다샤랏 스타디움에는 지붕이 설치되어 험악한 날씨는 어느정도 버티게 됐다. 또 비상시를 대비해 문을 열어두기 됐고, 경기장 내에 의료진이 대기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