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회원수정2)]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영국의 밴드, rd1=HONNE)] [YouTube(VVE73U7IKSw)] [목차] == 개요 == [[일본인]]들의 대표적인 가치관으로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를 묶어 이야기한다. 다테마에는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마음(겉마음), 혼네는 실제 가지고 있는 속내(속마음)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의견이 명백히 틀렸을 경우 "틀렸는데..."라고 생각하지만(혼네), 겉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를 하는(다테마에) 것을 말한다. 비유적으로 'オブラート[* 네덜란드어 'oblaat'에서 차용한 낱말로, 전분으로 만든 막을 말한다. 쓴 것을 못 먹는 유아들에게 알약이나 가루약을 먹이기 위해 사용한다. 과거 한국에서도 '오부라이트', '복약용지' 등으로 알려진 바 있다.]に包む'(쓴 약에 전분막을 씌우다)라는 표현이나, '猫をかぶる'(고양이처럼 굴다)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 유래 == 당시 일본은 400년 이상 전쟁을 반복해왔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차이가 사생관의 충돌로 나타났다. 강항, 조헌, 그리고 에도시대 초기에 일본을 다녀온 사행원들은 전쟁상태에 놓여 있던 일본인을 보면서 경생(輕生)이라는 표현을 썼다. 전국시대 일본에서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무사의 정체성이었다. 무사사회에서는 자신의 목숨보다 무사로서의 명예가 더 중요시되었으며, ‘의’를 위해 삶을 가볍게 여겨 적과 싸우는 것 이야말로 무사의 사명으로 생각되었다.[*출처 '무사사회의 도덕규범 - 조선 사절이 본 일본인의 도덕의식 - 박상휘, 국문학연구 38권', ''무사사회의 도덕규범 - 조선 사절이 본 일본인의 도덕의식 - 박상휘, 국문학연구 38권'] 이 때문에 항상 남에게 시의심을 가지고 가족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거나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상대의 언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로 붕우로서의 맹약을 맺으면 친구를 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경우 도 있긴 하나 한 번 균열이 생기면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다. 또한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으면 칼을 뽑아 사람을 죽여 버리고 서로 시의심을 가지며 술자리에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출처] 또한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무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전국시대 일본에서는 과감하게 죽는 것을 칭송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복수를 수행하여 원수를 죽이고서 자신도 자결하면 그 자손들이 큰 명예를 얻었다. 집단 단투에 있어서도 미천한 사람일지라도 용감히 싸우면 대우를 받았고, 두려워서 도망가는 자는 비록 권문귀족의 자제일지라도 온 나라에서 버림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용납되지 못했다.[*출처]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풍조를 적극적으로 제제하였다. 에도 막부는 에도성 내에서의 발검에 대해서는 가산몰수, 작위박탈, 사형 등의 처분을 내렸고 하급자의 모욕을 사적으로 벌하는 기리스테고멘도 적법한 정식 결투의 요건을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철처하게 처벌하였다. 또한 다이묘의 가신단 내의 불화나 난심이나 난행이 있을 경우에도 번 내에서 해결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막부 차원에서 개역을 실시하는 등 중앙 통제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추신구라|겐로쿠 아코 사건]]의 예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당대 민중들의 의식은 전통적인 무사관을 추종하였고 막부로서도 처형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막부는 에도 시대 대표적인 유학자 오규 소라이에게 처리에 대해 문의하였고 그는 "46사의 행위는 윤리적이지만 공적(公的)인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현대에는 살상에 대해 법적,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당대에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막부는 처형이 아닌 할복처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출처] 사무라이 사회에서는, 혼네를 들키면 위험해져, 혼네로 말하는 것은 꽤 어려웠다. 따라서 사무라이 사회에서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별, 어느 쪽인가 하면 다테마에의 사회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畏(かしこ)まる」文化と「賢(かしこ)がる」文化 : 忠臣蔵と春香伝を中心に, 朴容寛, 総合政策論叢, 2002-03-25, pp36]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서로간의 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고 다테마에라는 일본 특유의 대인관계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 기타 == 한국도 현대의 사회에선 일본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완곡표현' 이 그것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의 영향을 받았고 광복 이후 1961년 군사정권이 집권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의사를 상급자 앞에서 솔직히 말하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분류:일본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