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산성)] ---- ||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265호}}}''' || || {{{+1 {{{#fff '''단양 적성'''}}}}}} {{{-1 {{{#fff 丹陽 赤城}}}}}} {{{-1 {{{#fff Jeockseong Fortress}}}}}} || ||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fff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번지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fff 면적}}}''' || 64,879㎡ || || '''{{{#fff 지정연도}}}''' || 1979년 7월 26일 || || '''{{{#fff 제작시기}}}''' || [[신라]] [[진흥왕]]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단양 적성, 너비=36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YJSREAL_.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단양적성.jpg|width=100%]]}}} || || {{{#fff ''' 단양 적성[* [[https://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26261&ccbaKdcd=13&ccbaAsno=02650000&ccbaCtcd=33|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 [목차] [clearfix] == 개요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 위치한 [[신라]]의 [[산성]]이다.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265]]호로 지정되었다. == 조사 내용 == 신라에 의해서 축성된 중원진출의 주요 교두보로 평가받는 산성으로 산성 그 자체보다도 [[단양 신라 적성비]]로도 유명하다. 동쪽은 죽령천, 서쪽은 단양천이 적성이 북쪽으로 흐르는 남한강에 합류하여 남쪽 빼고는 모두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충지이다. 성의 규모는 위의 제원표에도 나와있듯이 그렇게 대형의 성곽은 아닌데, [[단양군]]의 지형상 대형 성곽이 자리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신라도 이 단양지역을 영유, 북진하면서 통과할 때에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로 비교적 소규모 거점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단양 적성이 의외로 황당한 것은 국도로 가기에는 여간 불편하지만 [[중앙고속도로]]로 가면 [[단양팔경휴게소|단양팔경휴게소(춘천방면)]]에 내려서 바로 뒤로 걸어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며, 해발고도도 그렇게 높지 않다.[* 애초에 고속도로가 교량위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올라갈 필요도 없다.]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휴게소 바깥으로 형성된 주차장까지만 가더라도 단양 적성을 전체를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렇게 휴게소에서 바로 나와서 보면 단양 적성의 남벽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데, 신라 산성의 특징 중의 하나인 현문식(懸門式) 성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문을 따로 완전히 뚫어놓은 것이 아니라 살짝 낮게 해두되 성 내부에서 다리를 놓아주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형태의 전술적 구조인 것이 특징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YJS_interior.jpg|width=100%]]}}} || || {{{#fff ''' 단양 적성 동문. 경고표지판 오른쪽이 석환무지이다.[* 일찍이 발굴조사 없이 공원화 복원 정비를 거쳤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상당히 잃은 편이다. 경고표지판이 붙어있는 것도 복원 이후 붕괴된 부분을 다시 정비하면서 일부 발굴조사를 겸했던 당시의 모습이다.] '''}}} || 동문 역시 현문식 구조이며 안쪽에서 볼 때는 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멀쩡해보이지만 밖에서 성벽을 보게되면 현재 설치된 계단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구조이다. 특히나 동문 안쪽에서는 [[석환(포탄)|석환(石丸)]] 무지가 확인되었는데 수성을 대비한 석환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석환 무지[* 통상 한 곳에 석환을 몰아두었던 것을 발굴한 것이기 때문에 유구(遺構)의 개념으로 말한다.]들은 단양 적성 외에도 신라 산성인 경우에는 인근 영춘면의 [[온달산성]], [[충주]] [[장미산성]], [[문경]] 고모산성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그 밖에도 [[고구려]] 유적인 구 [[청원군]] 남성골유적에서도 확인되었으며 [[여수시|여수]] 고락산성에서도 출토되었다. 단양 적성을 포함하여 [[온달산성]], [[영월]] 정양산성, 대야산성, [[정선군|정선]] 고성리 산성, 애산리 산성, 송계리 산성 등과 함께 6세기 중엽부터 신라의 구 영역인 영남지역에서 벗어나서 형성되기 시작하는 주요 방어선이자 거점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단양_적성|한국어 위키백과: 단양 적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4350&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단양적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7957&cid=43065&categoryId=43065|고고학사전: 단양 적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93863&cid=49217&categoryId=49217|문화원형백과: 단양 적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5954&cid=42840&categoryId=42853|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단양 적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11231&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단양 적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9714&cid=40942&categoryId=33541|두산백과: 단양 적성]] == 사적 제26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2650000,33&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단양 적성 (丹陽 赤城)]]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 900m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있어,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산성]][[분류:성채/대한민국]][[분류:단양군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