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의 전투 목록(유럽 및 아프리카))] ||<-3> {{{#!wiki style="font-size:0.90em; letter-spacing: -0.5px" '''{{{+1 단치히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 {{{-1 [[폴란드어]]: Obrona Poczty Polskiej w Gdańsku [[독일어]]: Das Gefecht um das polnische Postamt in Danzig [[영어]]: Defence of the Polish Post Office in Danzig}}}}}} || ||<-3> '''날짜''' || ||<-3> 1939년 9월 1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 ||<-3> '''장소''' || ||<-3> [[단치히 자유시]] || || '''교전국'''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width=23]]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 제2공화국]] ||[include(틀:국기, 국명=단치히 자유시)][br][include(틀:국기, 국명=나치 독일)] || || '''지휘관'''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width=18]] 콘라트 구데르스키[[https://pl.wikipedia.org/wiki/Konrad_Guderski|[[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width=10px]]]]†[br][[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width=18]] 알폰스 플리시코프스키[[https://en.wikipedia.org/wiki/Alfons_Flisykowski|[[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width=10px]]]] ||[[파일:단치히 자유시 국기.svg|width=18]] 빌리 베트케[[https://pl.wikipedia.org/wiki/Willi_Bethke|[[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width=10px]]]][br][[파일:나치 독일 국기.svg|width=18]] 요하네스 섀퍼[[https://pl.wikipedia.org/wiki/Johannes_Schäfer|[[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width=10px]]]][br][[파일:나치 독일 국기.svg|width=18]] 알프레트 하인리히[[https://pl.wikipedia.org/wiki/Alfred_Heinrich|[[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width=10px]]]] || || '''전력''' ||우체국 직원 55명[br]철도청 직원 1명 ||무장친위대 200명 이상[br][[ADGZ]] 장갑차 3대 이상 || || '''피해[br]규모''' ||6명 사망[* 2명 오인사격으로 사망][br]14명 부상[br]38명 포로[br]4명 탈출 ||10명 사망[br]25명 부상[br][[ADGZ]] 장갑차 1대 파괴 || ||<-3> '''결과''' || ||<-3> 독일군의 승리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 중 [[단치히 자유시]]의 폴란드 우체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왜 겨우 [[우체국]] 하나 먹으려고 전투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체국은 금융업무도 동시에 하는데다가 당시에는 우체국이 현금 수송 업무도 맡아 우편차를 노리는 강도들이 있어 집배원이 총을 쏠 줄 알고 우체국에도 어느 정도의 무기가 있었다. 실제로 [[Wz.35]] [[대전차 소총]] 한 정, [[M1918 브라우닝#s-3.7|Wz.28]] [[자동소총]] 세 정, [[VIS Wz.35]] [[권총]] 40정, [[게베어 1898#s-3.2]] 여러 자루, [[수류탄]] 등이 우체국에 구비되어 있었다. 단치히는 독일인들이 대부분 거주했지만 세관과 우편 업무는 폴란드 정부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폴란드인 공무원들이 업무 조직과 직급을 지휘 체계삼아 저항과 농성을 한다면 단치히 장악에 큰 지장이 될 것은 뻔했다. 겸사겸사 돈과 무기가 모자랐던 독일은 우체국을 털어 쥐꼬리만큼이라도 물자와 자금을 더 확보하려 했다. == 배경 == 1939년 9월 1일, 그동안 우호친선을 명목으로 입항해 단치히 주위에 기항해 있던 독일 해군의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https://ko.wikipedia.org/wiki/베스테르플라테|베스테르플라테 반도]]를 포격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다. 이에 인구의 95%가 독일계이고, 1933년부터 나치당의 세력하에 있던 [[단치히 자유시]]는 나치 독일에 가담하게 된다. == 전개 == 우체국에는 단치히 자유시 국적의 폴란드인 직원 43명, 폴란드에서 지원 온 직원 10명, 청사 관리인 가족 3명을 포함해 56명이 있었다. 여기서 지휘관은 예비역 폴란드 [[육군]] [[소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치하의 [[폴란드 제2공화국]]은 일종의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대학생과 기술자들이 단기 군사 훈련을 받고 예비역 장교 계급을 받았다.] 계급을 가지고 있던 인근 수도사업소 공무원 [[https://pl.wikipedia.org/wiki/Konrad_Guderski|콘라트 구데르스키]]였다. 폴란드의 방어 계획에 따라 이들이 버티고 있으면 [[https://en.wikipedia.org/wiki/Pomorze_Army|포모제군]]이 지원군으로 파견되어야 했지만, 포모제군이 구하러 갈 여유가 없어서 이들은 고립된 채 싸우게 되었다. 나치의 우체국 공략은 소규모 부대는 정문을, 본대는 건물 오른쪽 측면의 벽을 통해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문 공격은 독일군이 2명 사망, 7명 부상이라는 피해가 나오고, 오른쪽 공격은 지휘관인 콘라트 구데르스키가 수류탄으로 격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구데르스키 역시 전사했다. 이후 독일군은 오전 11시에 75mm 보병포 2문을 가져와 벽을 부수는 데 성공했지만 진입에 실패했다. 오후 3시에, 독일군은 공격을 멈추고 항복할 시간 2시간을 주지만, 폴란드 인들은 거절했다. 그 사이에 독일군은 105mm 곡사포를 가져왔고, 무너진 벽 밑에 600kg에 달하는 폭발물을 설치했다. 최후 통첩 시간이 지나고서도 우체국 내의 폴란드 공무원들이 항복하지 않자 결국 5시에 이를 폭파시키면서 큰 폭발이 일어나고, 독일군은 포 세 문의 지원을 받으며 진입에 성공했다. 살아남은 폴란드인들이 지하로 피신하자, 오후 6시에 독일군이 지하에 휘발유를 붓고 화염방사기로 공격해 폴란드인 5명이 숨졌다. 결국 7시에 생존자 전원이 독일군에 항복했다. 원래 우체국장 [[https://pl.wikipedia.org/wiki/Jan_Michoń|얀 미혼]]이 대표로 항복하려 했지만, 독일군의 오인 사격으로 우체국 직원 [[https://pl.wikipedia.org/wiki/Józef_Wąsik|유제프 봉식]]과 함께 전사했다.[* 다만 유제프 봉식은 화염방사기에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죽은 5명 중 2명이 신원불명이기 때문이다.] == 전투 종결 이후 == [[파일:10_557201.jpg]] SA와 단치히 경찰이 바라보는 가운데 SS가 포로가 된 집배원들을 후송하는 모습. 그 후 부상자 16명 중 6명은 부상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죽게 된다. 6명 중 5명은 전신화상으로 인해서 사망하였고 나머지 1명은 두개골에 입은 총상으로 사망하였다. 이들 중에는 10살밖에 되지 않은 청사 관리인의 딸인 [[https://pl.wikipedia.org/wiki/Erwina_Barzychowska|에리나 바지호프스카]]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최초의 어린이 희생자였다. 퇴원한 나머지 경상자 10명과 다치지 않고 항복한 우체국 공무원들 28명 등 총 38명은 독일 60보병사단이 연 군사재판에서 빨치산으로 간주되어 9월 8일에 일방적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나서 10월 5일에 [[총살형]]으로 처형됐다. 그러나 4명은 탈출해 잡히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나 1995년 독일 뤼베크 지방법원은 나치에 의해서 처형되었던 38명에 대하여 재심을 실시하였다. 법원은 당시 독일군이 단치히 자유시에 사는 38명을 재판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고 처형당한 이들 모두가 무죄를 선고받으며 명예를 되찾게 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Defence_of_the_Polish_Post_Office_in_Danzig#cite_note-13|Kriegsverbrechen in Europa und im Nahen Osten im 20. Jahrhundert, Franz W. Seidler / Alfred M. de Zayas (Hrsg.), Hamburg : Mittler 2002, Seite 138]]] == 기타 == * [[귄터 그라스]]가 쓴 [[양철북]]에서도 나온다. * 영국 B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월드 온 파이어'의 1화에 해당 전투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인 바르샤바 주재 영국인 외교관 해리의 연인인 카시아의 아버지와 오빠가 폴란드에서 단치히로 지원을 간 10명의 병사를 이끄는 중심 인물로 나온다. 실제와는 다르게 카시아의 아버지가 대표로 항복하다 사살당하는 것으로 나오고, 오빠는 전투 현장에서 탈출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분류:폴란드 침공]][[분류:1939년 전투]][[분류:시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