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안동도호부 도호)] ||<-2> '''{{{#fff 송충공(宋忠公)[br]{{{+1 唐休璟 | 당휴경}}}}}}''' || || '''{{{#fff 시호}}}''' ||<(> 충(忠) || || '''{{{#fff 작호}}}''' ||<(> 주천현공(酒泉郡公) → 송국공(宋國公) || || '''{{{#fff 성}}}''' ||<(> 당(唐) || || '''{{{#fff 이름}}}''' ||<(> 선(璿) || || '''{{{#fff 자}}}''' ||<(> 휴경(休璟) || || '''{{{#fff 부친}}}''' ||<(> 당해(唐諧) || || '''{{{#fff 조부}}}''' ||<(> 당세종(唐世宗) || || '''{{{#fff 생몰연도}}}''' ||<(> 627년 ~ 712년(85세) || || '''{{{#fff 출신}}}''' ||<(>경조부(京兆府) 시평현(始平縣) || ||<|2> '''{{{#fff 재임}}}''' ||<(> '''{{{#ece5b6 당의 상서우복야}}}''' || ||<(> 705년 ~ 70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당나라]]의 재상이자 명장. 본명은 당선(唐璿)으로, 휴경(休璟)은 자이다. 토번과 돌궐 전선에서 활약한 명장이었다. == 생애 == 당휴경은 627년에 함양현령을 지내던 당해(唐諧)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휴경의 할아버지인 당세종(唐世宗)~~묘호가 아니다~~[* [[구당서]]에서는 [[태종(당)|태종]]의 휘를 피휘하여 당종으로 나온다.]은 [[수나라]] 말엽에 [[양사도]]가 반란을 일으킬 당시에 살해되었다. 당휴경은 어린 시절에 마가운(馬嘉運)으로부터 역경을 배웠고, 가공언(賈公彦)에게 예기를 배웠으며, 젊은 시절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영휘 연간[* 650년~655년]에 오왕(吳王) [[이각(오왕)|이각]]의 전첨(典簽)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지만 남다른 재주가 없어서, 영주(營州) 호조참군으로 전임되었다. 679년, 선우대도호부의 돌궐 아사덕온부(阿史德溫傅)와 아사덕봉직(阿史德奉職)이 아사나니숙복(阿史那泥熟匐)을 가한으로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해족]]과 [[거란]]을 선동하여 당나라를 침공한다. 당휴경은 영주 도독인 주도무(周道務)의 지시로 독호산(獨護山)에서 반란을 일으킨 돌궐을 격파하였고, 이때의 공적으로 풍주(豊州) 사마가 되었다. 683년, 아사나골독록이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에서 독립하고 돌궐 제2제국을 수립하였다. 돌궐 제2제국의 무서운 기세로 인해, 당나라 조정에서는 풍주를 포기하려고 하였다. 이때 당휴경은 표문을 올려 풍주는 비옥한 농토를 가진 요충지이므로 이곳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간언하였다. 조정은 당휴경의 건의에 따라 풍주를 보존한다. 수공 연간[* 685년~688년]에 당휴경은 안서부도호가 되었다. 이후 689년에는 당나라 외부의 [[토번 제국]]의 기세가 강성하여, 언기(焉耆)를 함락시키고 안식도 대총관 위대가와 염온고를 패배시키자, 당휴경은 남은 군대를 수습하여 서쪽을 재빠르게 안정시킨다. 뒤이어 당휴경은 서주(西州) 도독으로 승진하였고 표문을 올려 토번에게 빼앗긴 안서 지역을 수복할 것을 상주하였고, 당휴경의 상주에 따라 안서 지역을 수복하는 데 성공한다. 무주 성력 연간에 당휴경은 사위경(司衛卿)이 되었고, 양주(涼州) 도독, 우숙정어사대부(右肅政御史大夫), 지절(持節) 농우제군주대사(隴右諸軍州大使)를 겸임한다. 700년에 토번의 장군인 국망포지(麹莽布支)가 침공해오자, 당휴경은 국망포지와 6번을 싸워 모두 승리하였고 국망포지의 부장 2명을 죽이고 2500급의 수급을 베는 다대한 전적을 세웠으며, 측천무후에 의해 우무위위대장군(右武威衛大將軍), 우금오위대장군(右金吾衛大將軍)으로 임명된다. 703년, [[서돌궐]] 내부의 정세로 인해 안서 지역이 불안해지자, 무주 조정에서는 대책을 논의하였는데 당휴경은 당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무주의 안정에 기여한다. [[측천무후]]는 당휴경을 늦게 기용한 것이 한이라며, 당휴경을 칭찬하였고 그를 하관상서, 동봉각난대삼품으로 임명하였고, 당휴경은 뒤에 태자우서자를 역임한다. 704년 거란이 무주를 침입해오자, 당휴경은 하관상서로 임명되고, 검교유영등주도독, 안동 도호를 겸임하였다. 705년 [[중종(당)|중종]]이 복위한 뒤, 당휴경은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으로 임명되었고, 주천현공(酒泉郡公)으로 책봉된다. 곧이어 당휴경은 특진이 더해지고 상서우복야로 임명되었으며, 송국공(宋國公)으로 책봉되고, 중서령, 태자소사 등을 역임한다. 710년, 당휴경은 특진으로 임명되고 삭방도 행군대총관을 맡았다가, 다음 해에 관직에서 물러난다. 당휴경은 712년에 사망하여, 형주(荊州) 대도독으로 추증되었고 충(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기타 == * 당휴경은 변경의 일들을 숙지하여 변경의 산천과 요해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세 파악에도 뛰어나, 서돌궐의 정세에 대한 무주의 대응책을 바치는 등 뛰어난 명장이었다. * 당휴경은 자신이 하사받은 비단 수천 필을 친족들에게 나누어주고, 가지고 있던 가산을 털어 무덤을 확장하였으며, 예를 갖추어 가까운 친척들의 장례를 지내주어 당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 반면 더 높은 자리에 대한 욕망이 대단했는데, 708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80이 넘은 나이에 높은 자리를 갈망하였다. 당시 상궁 하루씨(賀婁氏)가 자못 국정에 관여하여, 하루씨에게 의탁한 이들은 모두 존귀와 영예를 받았는데, 당휴경은 이에 자신의 아들을 하루씨의 양녀에게 장가보내 아내로 삼았다. 이로 말미암아 당휴경은 태자소사, 동중서문하삼품으로 임명되고, 감수국사가 되었다. 당휴경은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를 원하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627년 출생]][[분류:71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