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발해 국왕)] [include(틀:역대 발해 대내상)] ||<-3><:>'''{{{#FFD700 발해 12대 가독부[br]{{{+1 {{{#FFD700 大虔晃 | 대건황}}}}}}}}}'''|| ||<:>'''{{{#FFD700 시호}}}'''||불명 || ||<:>'''{{{#FFD700 작위}}}'''||안풍현 개국공(安豊縣 開國公) || ||<:>'''{{{#FFD700 직위}}}'''||중대친공(中臺親公), 대내상 겸 전중령(大內相 兼 殿中令) || ||<:>'''{{{#FFD700 성씨}}}'''||대(大) || ||<:>'''{{{#FFD700 휘}}}'''||건황(虔晃) || ||<:>'''{{{#FFD700 황자}}}'''||[[대현석]](大玄錫) || ||<:>'''{{{#FFD700 생몰연도}}}'''||790년대 후반 이후[* 형인 대이진이 790년대 후반 이전으로 추정되므로 그보다 나이가 많을 순 없다.] ~ 871년 || ||<:>'''{{{#FFD700 재위기간}}}'''||857년 2월 ~ 871년(14년) || [목차] [clearfix] == 소개 == [[발해]]의 제12대 [[가독부]]이자 군주. [[대이진]]의 동생이다. == 업적 == >858년 겨울, 오효신(烏孝愼) 등 104인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ㅡ 《[[일본서기]]》 >860년, 이거정(李居正) 등 105인을 일본에 보냈다. ㅡ 《[[일본서기]]》 14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일본]]과 당나라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 외에는 그가 내치를 어떻게 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외의 기록으로는 아래와 같다. >868년 정건장의 묘지를 조성하였고, >868년 <[[돈황]]문서>(敦煌文書)를 만들도록 하였다. >871년 양성규(楊成規)등 105명을 일본에 보냈다. ㅡ 《[[일본서기]]》 871년에 대건황이 죽었으며 [[대현석]]이 즉위하였다. == 권신? == 밑의 의문 항목과 연관되어 있다. 발해가 일본에 보낸 "<함화 11년 중대성 첩사본>"에는 문서를 작성한 신하들의 이름과 직위가 적혀 있는데 그 중 대건황은 공작위를 가지고 중대친공, [[대내상]], 전중령 직위를 가지고 있다. 직위를 해석하면: * 중대친공: 발해 중대성(중서성)의 종친 공작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 * 대내상: 발해 정당성(상서성)의 수장. * 전중령: 전중시의 벼슬. 즉 안풍현의 공작에 2성 6부 중 2성에 모두 이름을 걸친 데다가 [[궁전]] 내 사무를 관리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명예직일 수도 있지만 대건황이 형, 대이진의 재위 11년 즈음엔 이미 상당한 [[권력]]을 지녔었음을 알 수 있다. == 의문 == 대이진이 죽고나서 [[아들]]들이 왕위에 올라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동생]] 대건황이 왕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의문을 남긴다. 물론 대이진의 아들들이 모두 [[요절]]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아들이 한 둘은 아닐테고 당장 대이진의 기록에 나오는 아들만 봐도 4명이며 [[사신(외교)|사신]]으로 갔다는 것은 장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 10대 후반~20대 초반일테고 대이진이 죽었을 때는 대략 30대 초반~40대 후반일 것이다. 우연하게 전부 죽었다 하더라도 [[손자]]가 없었을까? 하지만 이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왕위 계보상 의문점을 토대로 추측할 뿐이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정변]]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기도 한다. 대건황 즉위 45년 전인 812년에 있었던 [[정왕]]~[[희왕]] 시기 석연치 않은 승계 과정을 대건황이 참고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 사신으로 갈만큼 장성한 아들이 있었음 (정왕-대연진, 대이진-대지악 등) * 동생이 권신으로서 있다가 왕위 승계 (희왕-권지국무, 대건황-중대친공) * 고사에 따라 즉위함 (희왕-기록상에는 어떤 고사를 언급한건지 자세히 나오지는 않음) == 사후 == 아들 [[대현석]]이 왕위를 승계하였다. 재위 당시 사용한 연호가 대정(大定)이고, 안왕(安王)이라는 시호가 있다는 설이 있지만 기록된 책이 위서인 《[[환단고기]]》라서 인정받지 못한다. == 신당서 기록 == >대이진이 죽으니, 아우 대건황(大虔晃)이 왕위에 올랐다. == 연표 == * 857년 2월, 대이진이 죽고 권지국무이자 동생인 대건황이 즉위하였다. * 858년, 정당성 좌윤 오효신 등 104명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고 달력인 <장경선명력경>을 주었다. * 860년, 이거정 등 105명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다. * 868년, 정건장의 묘지를 조성하였고 <[[돈황]]문서>(敦煌文書)를 만들도록 하였다. * 871년, 대건황이 죽고 아들 대현석이 즉위하였다. [[분류:발해 국왕]][[분류:87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