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일:Jacques-Louis_David_-_The_Coronation_of_Napoleon_(1805-1807).jpg|width=100%]]|| || [[바실리오스 2세]]의 대관식 || {{{#b8b8c5 }}} [[나폴레옹]]의 대관식[*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그림으로, 대관식하면 바로 이 그림이 떠오를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항목]] 참조] || ||[[파일:빅토리아_대관식.jpg|width=100%]]||[[파일:king-charles-iii-and-queen-camilla-during-their-coronation-ceremony-in-westminster-abbey_-230506_aaron-chown-pool-reuters_700x467.png|width=100%]]|| || {{{#e5927a }}}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 [[찰스 3세]]의 [[찰스 3세/대관식|대관식]]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관식'''([[戴]][[冠]][[式]], [[코로나#s-1|corona]]tion)은 주로 [[유럽]]의 군주국에서, 군주가 즉위식 때 [[왕관]]을 머리에 올려 그 위상과 권력의 발동을 정식으로 공표하는 행사이다. 왕관은 국교가 있을 경우 대개 그 나라의 최고위 [[성직자]]에 의해 대관을 받는다. 군주가 즉위식에서 왕관 등의 [[레갈리아]]를 착용하여 권위를 나타내거나, 그 과정에 사제가 관여하는 형태는 동서양을 막론하여 나타난다. 대관식은 이러한 즉위식의 한 종류이다. 때문에 즉위식은 꼭 무릎 꿇고 왕관을 받아 쓸 필요 없는 즉위선서나 착좌식도 포함한다. 동양권에서는 황태자 또는 왕세자가 [[옥새]]를 받고 [[용상]]에 올라가 앉을 때까지의 의식이 서양의 대관식과 비슷하다. 이러한 의식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관을 받아서 쓰는 의식'이 아니고 즉위식이지만 편의상 함께 서술한다. == 역사와 특징 == 고대 유럽의 즉위식 요소들은 문명이 앞서 발달했던 [[근동]]의 영향을 받았다. 군주가 착용하던 여러 기물들이 있었지만, 왕관의 경우 [[고대 이집트]]와 고대 페르시아의 고위층이 착용했던 다이아뎀(diadem)을 비롯한 관들이 [[헬레니즘 제국]]들을 거쳐 전파되면서 [[월계관]]을 주로 쓰던 지중해 유럽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즉위와 관련한 의식도 근동권에서 넘어왔다. [[구약]]의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좌에 착좌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기원전 10세기경 이스라엘의 즉위식을 다루는 장면이 이러하니, 그 이전의 [[고대 이집트]]나 이후 근동을 통일한 최초의 패권국인 [[아케메네스 왕조]] 역시 유사한 즉위식을 치렀을 것이리라 추측할 수 있겠다. 한편 고대 [[게르만족]], [[켈트족]]의 족장이나 왕은 즉위시 방패즉위(Raising on a Shield)라는 의식을 치뤘다. 군주가 방패 위로 올라타고, 전사나 유력자들이 이를 들어올려 사람들 앞에 보임으로서 즉위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로마 제국]]에선 [[군인 황제 시대]]의 [[율리아누스]] 황제가 최초로 이렇게 즉위했는데, 당시 [[로마군]]내에 많던 게르만족 출신 병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성직자로부터 관을 받아서 쓰는 의식'으로서 대관식이라고 부를만한 형식과 기록이 나타난 것은 로마 제국이다. 457년 2월 7일 즉위한 [[레오 1세(황제)|레오 1세]]가 그 주인공이다. === 최초의 대관식 === 레오 1세의 대관식은 [[로마 제국]]에게 있어서 큰 사건 중 하나였다. 당대의 제국은 [[고대 로마]]가 [[중세]]로 이행하는 후기 고대(Late Antiquity)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전제군주정화, 동방천도, 기독교 공인 및 국교화, 동서 분할, 분야를 막론한 체제 개혁 등. 이러한 변화의 시대 교회 세력은 일관적으로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는데, 그 와중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죽어 [[테오도시우스 왕조]]가 단절된다. 전임 황제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상황에 제위공백이 발생하자, 공은 마르키아누스를 옹립했던 [[권신]]이자 동방군 총사령관(Magister militum) [[아스파르]]에게 넘어갔다. 아스파르는 자신의 부하 트라키아인 레오(Leo the Thracian)를 지명했다. 레오는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고, 황가와 혈연적으로 무관했으며, 원로원의 지지도 없었다. 때문에 레오 측은 자신만의 장점을 강조하여 부족한 정통성을 보충하고자 했다. 장점은 그가 순혈 로마인이었다는 것이었고, 아스파르로 대표되는 군부의 지지가 있었으며, [[아리우스파]]였던 아스파르와는 달리 정통 [[칼케돈파]]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레오 1세의 즉위식은 크게 두 가지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첫번째는 군인들이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국 인민들 앞에서 방패 위에 오른 황제를 들어올리는 '''방패즉위'''였다. [[군인 황제 시대]]의 [[율리아누스]] 황제 이래 관행이 된 방패즉위는 전통적인 추대 방식인 군대의 지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자 로마군의 총사령관인 [[임페라토르]]로서 권위를 보이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이전까지 없었던, '''주교가 집전한 대관''' 의식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나톨리오스는 즉위 미사를 집전하며 황제관을 레오의 머리에 씌웠는데, 이는 레오 자신이 정통 기독교인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정통성에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교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이 타협은 제국 내 기독교의 위상이 황제의 즉위에 참여할 정도로 공고해졌음을 나타내며, 국가의 1인자인 황제 또한 세속법칙을 초월한 신의 섭리 아래 지명되는 필부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대관식이 정통성 보충을 위해 실시한 퍼포먼스였던 만큼 다른 방식 또한 이어지고 새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방패즉위는 7세기까지 보이다가 제국이 점차 [[동로마 제국]]으로 이행하는 [[20년간의 혼란]] 이후 사라지며[* 단, 수백여년 뒤인 1254년 귀족 세력이고 교회 세력이고 찍어누르려 했던 [[테오도로스 2세]]의 즉위식 때 반짝 나타나긴 했다. 귀족 세력 및 현지 유력자와의 타협을 통해 살아남았던 망명 정권인 [[니케아 제국]]이 기반이 안정되자 황권을 강화하려 했던 시도라 볼 수 있겠다.], 공화정 전통이 강했던 로마 제국에서 시민대중의 지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환호즉위(Acclamatio)''' 의식도 [[제노(로마)|제노]] 황제 때 최초로 나타나 제국이 멸망하는 [[콘스탄티노스 11세]]까지[* 다만 콘스탄티노스는 사정이 있어서 대관식이 아닌 환호즉위를 택했다. 당시 제1 계승권자인 콘스탄티노스 친왕은 임지인 [[모레아 전제군주국|모레아 친왕부]]에 있었던 반면 제2 계승권자인 동생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디미트리오스]] 친왕이 먼저 수도에 입성해 계승권을 강조하고 있었고, 대관식을 집전할 총대주교가 정교회 전반에서 배척받던 교회통합 찬성파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콘스탄티노스는 중앙에서 파견한 사절단과 모레아 현지의 인사들이 참여한 환호즉위로 즉위식을 갈음했다.] 근천년을 이어가지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레오 1세가 시작한 대관식은 다른 즉위 절차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와중에도 끝끝내 살아남았다. 제국의 기독교 색이 짙어지는 7세기 즈음부터 [[기름 부음]] 절차가 추가되거나 대관 의례를 전후하여 [[녹색당과 청색당]]으로 대표 되는 [[원로원]], 정부 고위 관료, 군부 고위 장교, 황족과 귀족, 타국의 대사, 시민 대표 등이 참가하는 등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성직자가 군주에게 관을 씌우는 행위 자체는 핵심으로 남았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다른 군주국들도 의례와 율법의 원류인 [[동로마 제국]]을 따라 즉위식 때 대관 의례를 모방하였고, 이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 대관식 일반 === 유럽의 대관식의 경우 그 나라의 [[국교|중심 종교]]시설에서 국가적인 행사로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새 국왕이 왕위를 계승한 후 즉시 치르는 경우보다는 어느 정도의 준비기간을 가진 후에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게는 1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군주권을 상징하는 왕관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이 수여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교황으로부터 대관 받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고, 대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군주는 [[정통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일례로 [[샤를 7세]]는 [[잔 다르크]]가 [[랭스]]를 탈환하기 전까지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프랑스 국왕의 즉위식은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랭스의 성당에서 행했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 1세]]의 경우 대관식에서 이러한 종교적 권위를 대놓고 돌파하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나폴레옹 자신이 로마로 가지 않고 역으로 교황을 끌고 온 데다 수도 파리 한복판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관을 본인이 직접 들어 스스로 쓴 것. 자세한 것은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문서 참조.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상당수의 국가들에서 왕정이 폐지되었고, 왕정 국가들에서도 그런 의식이 점점 퇴색 되며 대관식 문화가 사장 된다. 스페인은 중세 이후로 대관식이 없었고,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의 경우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으로 즉위한 [[주앙 4세]]가 1646년에 포르투갈의 왕관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이후 대관식을 하지 않았고 1910년에는 왕정이 폐지되면서 대관식이 부활할 일도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덴마크(1840년)[* 프레데릭스보르 성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8세]]의 대관식이 마지막.], 스웨덴(1873년)[*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열린 [[오스카르 2세]]의 대관식이 마지막.], 프랑스[* 마지막으로 대관식을 한 군주는 [[7월 혁명]]으로 쫓겨난 [[샤를 10세]]. 이후 프랑스의 [[7월 왕정|왕정]][[프랑스 제2제국|들은]] 더이상 대관식을 하지 않았으며 1871년 이후로는 왕정도 폐지되었다.]과 같이 대관식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국가들도 있었고, 영국 이외에 대관식이 이어지던 [[헝가리 왕국]](1916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로서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르던 것으로, 마지막 대관식은 [[카를 1세]]의 즉위 당시 이뤄졌다. 과거 해체 이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대관식을 치렀으나 오스트리아는 대관식으로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없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혈통만으로 [[세습]]이 보장되는 영토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황제로서는 대관식이 없었고, [[보헤미아 왕국]]은 1836년의 [[페르디난트 1세(오스트리아 제국)|페르디난트 1세]] 대관식[[https://en.wikipedia.org/wiki/Coronation_of_the_Bohemian_monarch|#]]이 마지막이었다.]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하여, [[러시아 제국]](1896년)[* 마지막 대관식은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여담으로 당시 구경온 백성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었는데 이를 받으려던 군중들의 통제에 실패하여 1400명이 [[압사]]하는 큰 참사가 있었다.]은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왕정 폐지 후 중단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관식이 중단된다. 또한 19세기에 창립된 [[베네룩스 3국]][* 네덜란드의 경우 19세기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의 왕정은 19세기에 성립되었다.]이나 [[이탈리아 왕국]][* 전신인 [[사보이아 공국]] 시절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끝낸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시칠리아]]를 얻었을 때 시칠리아 국왕으로 [[팔레르모]]까지 건너가 대관식을 치르긴 했으나, 1720년 [[사국 동맹 전쟁]]으로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반강제 교환하고 나서는 사르데냐 국왕으로 따로 대관식을 치르지는 않았다. 이후 [[사보이아 가문]]의 군주들은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으로서 특별히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고, 대신 [[카를로 알베르토]]부터는 이탈리아 왕국이 무너지기 전까지 왕국의 헌법인 알베르토 헌법(Statuto Albertino)에 선서를 하며 즉위를 알렸다.], [[그리스 왕국]] 같은 나라들은 건국 이래 대관식을 아예 하지 않았고,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 독일 황제 즉위 때가 아니라 프로이센 왕 즉위(1861년) 때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대관식을 했는데, [[창업군주]] [[프리드리히 1세(프로이센)|프리드리히 1세]] 이후 두 번째 대관식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한 건 [[카이저|독일 황제]] 대관식이 아니라 [[독일 제국]] 선포식이었다.], [[세르비아 왕국(1882년~1918년)|세르비아]]의 [[페타르 1세]](1904년), [[노르웨이]]의 [[호콘 7세]](1906년),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의 [[페르디난드 1세]](1922년)[* 여담으로, [[트란실바니아]] 합병을 기념하여 [[알바이울리아]](Alba Iulia)에서 대관식을 했는데, 문제는 알바이울리아가 과거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붕괴되고 헝가리 문화를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헝가리인의 자치공국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르데이 공국]]의 수도였던 곳이라 헝가리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처럼 창업이나 그에 준하는 업적을 이룬 군주만 대관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황도 삼중 [[교황관]]을 쓰는 대관[[미사]]를 거쳐 즉위한 사람은 1963년의 [[바오로 6세]]가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즉위미사로 대체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대관식을 제대로 치르는 나라는 [[영국]]밖에 안 남았다.[* 20세기 유럽에서 열린 8번의 대관식([[교황]] 제외) 중 영국이 4번([[에드워드 7세]], [[조지 5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이다. 여담으로 [[인도 제국]] 황제로서의 즉위식은 따로 했는데, 친히 인도 [[델리]]까지 가서 대관식을 한 것은 [[조지 5세]]가 유일했다. 수많은 마하라자들을 이끌고 [[조지 5세]], [[테크의 메리]]를 위시한 왕실 구성원들이 배석한 세기의 행사.][* 다만 인도의 군주들은 아니꼬왔던 면은 있었던지 떨떠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하이데라바드]], [[마이소르 왕국|마이소르]], 바로다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은 영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신하의 예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영국 관리들이 재촉을 하니 참석해서 [[조지 5세]] 앞에서 인사하며 예를 표하긴 했는데 바로다의 샤야지로 3세는 세 번 인사를 해야 하는데 한번 인사를 하고 등을 보이지 말고 뒷걸음 쳐서 나가야 하는데 그냥 돌아서 나가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살짝 비꼬는 듯한 미소를 보여 영국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i9-t5y_qYro|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5_kKAfRxPPs|원본 영상]] [[https://medium.com/history-in-bytes/indian-king-who-showed-his-back-to-king-george-v-a58268a885ac|기사]]][* 한편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 7세]]는 대리인을 보냈고, [[조지 6세]]는 급변하는 [[제2차 세계대전|국제정세]] 속에 인도까지 가서 대관식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이것 또한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기준이다. [[코로나19]] 및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불황 속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잇는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은 전보다 축소되어 진행되었다. 의외로 근현대 유럽 군주국들은 대관식을 하지 않고 즉위선서나 착좌식 등으로 대신하는 나라가 많다. 유럽 바깥에서도 포르투갈 왕실과 한 뿌리였던 [[브라질 제국]], 기독교 문화권인 [[에티오피아 제국]], 비기독교권이었지만 근대화를 지향했던 이란 제국, 유럽 문화권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받아들인 [[통가]], [[하와이 왕국]] 같은 [[폴리네시아]] 왕국들도 유럽의 예를 따라 대관식을 했다. 반면에 [[중동]] 같은 [[아시아]] 쪽의 군주국에서는 왕실만의 행사로 비밀스럽게 치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의 [[천황]] 즉위식도 여전히 비밀스러운 부분(주로 [[신토]]에 깊게 관련된 종교적인 의식)과 공개적인 행사가 혼재되어 있다. === 한국사에서의 즉위식 === 한국사에서는 [[신라]]는 전임 임금이 승하하면 일단 후임자가 즉시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하고, 그 다음 해 봄인 [[음력]] 1월 ~ 2월경에 [[경주시|경주]] 서남쪽에 있는 시조묘(초기) 혹은 [[신궁(신라)|신궁]]([[지증왕]] 이후)에서 즉위 의례를 거행하였다. 이 관례는 2대 [[남해 차차웅]]이 시조묘를 건립한 후 천년동안 거의 대부분의 임금이 꼬박꼬박 지켰으므로, 신라만의 제도화된 즉위의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조묘에서 모신 신은 여러 설이 있으나 1대 [[혁거세 거서간]]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만 대부분의 왕이 2년차 신궁 방문을 지키긴 했어도 정확한 시기가 고정된 건 아니었는데, 신궁 참배를 언제 하는지 자체는 융통성이 있었던 듯 하다.[* 1월에 할지 2월에 할지는 제각각 다르고, 특이 케이스로 예를 들어 [[경덕왕]]은 미루다가 즉위 3년차에 신궁 제사를 지냈고 [[진덕여왕]]은 가을인 10월에 신궁 제사를 지냈다.] [[고려]]에서는 [[인종(고려)|인종]]이 즉위한 후 고려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신 경령전에 가서 즉위를 고하고, 역대 왕의 위패를 모신 태묘와 9릉에는 사신을 보내 즉위를 고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경우, 대행왕이 승하하자마자 곧바로 즉위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거 엿새째 되는 날 상복인 최복(衰服)을 입게 되는 성복(成服) 직후에 즉위식을 거행했다. 대행왕의 관을 모시는 빈전(殯殿) 문 밖에서 열리게 되는 즉위식장엔 왼쪽에 대보(大寶)로도 일컬어지는 옥새가, 오른쪽엔 대행왕의 [[유언]]인 유교(遺敎)가 놓였다. 면복을 입은 새 국왕이 빈전을 향해 향을 올리고 나면 [[영의정]]이 유교를 읽고 [[좌의정]]은 대보를 왕에게 전했다. [[옥새]]는 왕이 서거한 즉시 [[왕대비]]나 [[대왕대비]]에게 전해지고, 그들은 새 임금이 즉위 예식을 거행할 때까지 이를 보관했다. 빈전 밖에서 진행된 즉위의 예식이 끝나면 새 국왕은 연을 타고 대전으로 가 임금이 앉는 어좌가 있는 어탑(御榻)의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 [[용상]](龍床)에 정좌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를 새 국왕이 탄생하는 순간으로 여긴다. 참고로 조선에서 이런 방식으로 처음으로 즉위한 왕은 5대 [[문종(조선)|문종]]이다. 문종 이전의 4명의 조선 왕들은 [[이성계|1명]]은 개국 군주였고 [[정종(조선)|나머]][[이방원|지 3]][[세종대왕|명은]] 전부 선대 왕이 살아있을 때 [[양위]] 받아 즉위했기에 저런 방식으로 즉위하지 않았다. 개국 군주 [[이성계|태조]]는 옥좌를 내놓지 않고 버티던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을 폐위시킨 후 즉위했고 조선 건국 후 [[무인정사]]로 권력을 잃고 [[영안대군]]에게 양위했고 아무런 권력이 없던 [[허수아비]] 정종은 동생 [[정안대군]]에게 양위했고 태종은 [[충녕대군]]이 세자가 된 해에 양위했다. 이렇게 3명의 왕들이 연속으로 살아있을 때 양위했고 4명이 왕들이 연속으로 선대 왕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즉위하다가 세종이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양위하지 않고 재위하다가 사망, 세자 이향이 즉위하면서 조선이 드디어 상술한 방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즉, 개국 군주이거나 선대 왕이 살아있을 때 [[양위]]나 [[반정]] 같은 방법으로 즉위한 태조, 정종, 태종, 세종, 세조, 예종, 중종, 인조, 순종은 저런 방법으로 즉위하지 않았다. 무려 조선의 군주의 3분의 1이나 된다. 대행왕 승하 후 기다리는 기간은 정통성 등 위기의식에 따라 짧아질 수도 있다. [[광해군]]은 이복동생 [[영창대군]] 문제로 불안감을 느낀 지지파에 떠밀려 하루만에 즉위했으며, 심지어 [[성종(조선)|성종]]은 사촌 [[제안대군]]과 친형 [[월산군]] 등이 존재하는 와중에 정통성의 문제로 당일에 즉위했다. 재위기간 중 즉위식을 두번 거행한 사례도 있었는데, [[고종(대한제국)|고종]]은 1864년 국왕으로 즉위했을 당시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을 치렀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환구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황제로서의 즉위식을 다시 치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대한제국)|순종]]은 근대화 이후인만큼 전통적인 방식의 즉위식이 아닌, 서양식 즉위식을 거행했다. 서양식 건물인 [[덕수궁 돈덕전]]의 알현실에서 즉위식이 열렸으며, [[환구단]]에서 고유제를 올리는 대신 일본으로부터 국서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대리 [[하세가와 요시미치]], 영사 대표 방카르트가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는 축하문을 낭독했다. 즉위식장에 참석한 이들은 전통 의복이 아닌 서양식 대례복이나 [[프록 코트]]를 입었으며, 사배례[* 왕에게 네 번 절해 예를 갖추는 것] 대신 몸을 공손하게 숙이는 서양식 인사법을 했다고 한다. 전통 악대인 전정궁가와 서양식 군악대가 모두 등장하였다는 점이 특징인데, 순종 황제가 등장과 퇴장할 때와 참석자들이 인사할 때 전통음악을 연주하였다. 군악대는 [[에케르트]]가 서양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를 연주하였다. 즉위식이 끝난 후 각계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졌는데, 돈덕전의 식당에서는 서양식 연회가 열렸다. 특히 [[일진회]]는 독립관에서 매우 성대한 경축회를 벌였다고 한다. == 현대의 대관식 영상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wKzlKwpm17U, height=280)]}}}|| ▲ 1953년 6월 2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기록영화. 70년 후인 2023년 5월 6일 그의 아들 [[찰스 3세]]의 [[찰스 3세/대관식|대관식]]이 개최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aK2-QnuVro, height=280)]}}}|| ▲ 1963년 7월 4일 [[바오로 6세]]의 대관[[미사]]. 일종의 가마인 [[세디아 제스타토리아]]와 [[삼중관]]을 착용하는 교황의 모습이 보인다. 이후의 교황들은 다른 나라에서 삼중관을 선물받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 착용하지는 않고 그대로 박물관으로 보내 전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위할 때에도 대관미사 대신 즉위미사만을 거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이 현재 기준 마지막 교황 대관미사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CsSy4HglR8, height=280)]}}}|| ▲ 1967년 7월 4일 [[통가]]의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투포우 4세]] 대관식 기록영화. 통가 왕실의 종교가 [[감리회]]이다 보니 전형적인 개신교식 대관식이다. * 1930년 11월 2일 [[에티오피아 제국]]의 [[하일레 셀라시에]]의 대관식 [[https://www.youtube.com/watch?v=csBIHYhz2-8|[[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2]]]] * 1956년 5월 2일 [[네팔 왕국]]의 [[마헨드라]]의 대관식 [[https://www.youtube.com/watch?v=H4eytw5MfOA|[[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2]]]] * 1967년 10월 26일 [[이란 제국]]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의 대관식 [[https://www.youtube.com/watch?v=F2K7OilsAqk|[[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2]]]] * 2004년 10월 28일~30일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하모니]]의 대관식 [[https://www.youtube.com/watch?v=FAQjGPOQrcQ|[[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2]]]] * 2019년 5월 4일 [[태국]]의 [[라마 10세]]의 대관식 [[https://www.youtube.com/watch?v=COZxYLhWA6c|[[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2]]]] * 2023년 5월 6일 [[찰스 3세/대관식]] == 대관식을 치른 [[캐릭터]] == * [[반지의 제왕]] - [[아라고른 2세]] * [[겨울왕국]] - [[엘사]], [[안나(디즈니 캐릭터)|안나]] * [[금색의 갓슈]] - [[갓슈 벨]] * [[라이온 수호대]] - 라니[* 시즌 3 16화에서 생명의 나무의 여왕이 되는 대관식을 치룬다.], [[카이온]][* 마지막 화에 생명의 나무의 왕이 되는 대관식을 치룬다.] * [[왕자와 거지]] - 에드워드 * [[트랜스포머 G1]] - [[스타스크림(G1)|스타스크림]][* 한 것 까진 좋은데 하자마자 [[갈바트론(G1)|갈바트론]]에게 사망.] * [[푸른사막 아아루]] - [[이시스 샤 아스타르테]] * [[My Little Pony: Friendship is Magic]] - [[트와일라잇 스파클]][* 이쪽은 황제가 아닌 공주 대관식. 대관식 에피소드를 방영전 Princess Coronation로 홍보했다.] * [[원스 어폰 어 타임(드라마)]] - [[메리다(디즈니 캐릭터)|메리다]] * [[은하영웅전설]] -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 [[아발로 왕국의 엘레나]] - [[아발로 왕국의 엘레나#s-3.1.1|엘레나]] * [[임금님전대 킹오저]] - [[기라]][* 자국민을 외면한 [[라클레스 하스티|친형]]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이후 대관식을 치룰 예정.] * [[현실주의 용사의 왕국 재건기]] - [[소마 카즈야]] == 비유적 의미 == 세계 정상의 선수가 [[올림픽]]과 같은 세계 최고의 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금메달]], 혹은 우승을 하여 트로피나 메달을 수여받을 때를 대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셰이크 메시.jpg|width=100%]]}}}||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이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우승팀]]의 주장인 [[리오넬 메시]]에게 손수 [[어의#s-1]]를 입혀줘서 진짜로 축구 황제의 대관식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프로레슬링]]계에서는 해당 단체의 '''가장 큰 [[PPV]]'''에서 '''새로운 메인 챔피언'''이 되어 '''다음 메인이벤터 자리를 계승'''받는 과정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레슬매니아 14]]의 [[스티브 오스틴]] vs [[숀 마이클스]],[[레슬매니아 21]]의 [[존 시나]] vs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JBL]]의 경기가 있다. [[분류:왕위 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