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근대사격제도)] [include(틀:신궁(신토))] || [[파일:37774.jpg|width=100%]] || || 흑백사진을 컬러복원한 모습 || ||<-2>[include(틀:지도, 장소=圓山大飯店 , 높이=250px, 너비=100%)]|| [목차] [clearfix] == 개요 == 대만신궁(臺灣神宮)은 [[대만일치시기]]에 있었던 신사이다. 현재의 [[대만]] [[타이베이시]] [[중산구]] [[그랜드 호텔 타이베이|원산대반점]] 자리에 있었다. 옛 이름은 대만신사(臺灣神社)로, 1900년에 관폐대사로 열격(列格)되었고, 1901년에 정식 창건되었다. 제신은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北白川宮能久親王)[* 생몰년 1847-1895. [[세습친왕가]] [[후시미노미야]](伏見宮)의 20대 가주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구니이에]](邦家) 친왕의 9번째 아들. 1895년 [[일본 육군|육군]][[중장]]으로서 대만정벌 근위사단장이 되어 대만으로 파병되었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현지에서 향년 만 48세로 사망했다. [[일본 황실|일본 황족]]으로서 처음으로 외국에서 공무 중 사망했기 때문에 신사에 모시자는 여론이 거세져 대만신사를 창건하는 계기가 되었다.]과 개척3신. 1944년에 [[아마테라스]]를 합사하고 '대만신궁'으로 개칭되었다. == 철거 이후 == 대만신궁 건물은 [[국부천대]] 이후로 헐렸다. 이후 그 터에 [[쑹메이링]]이 영빈관을 지은 뒤 오늘날 [[그랜드 호텔 타이베이|원산대반점]]이 들어섰다. == 기타 == 대만신궁 외에도 대만일치시기 건립된 신사들은 국부천대 후 철거 신세를 면치 못했고, 국민당은 그 자리에 [[중일전쟁]] 전사자 추모 시설인 [[충렬사#s-2.2]]를 건립했다. 대만 각 지에 위치한 충렬사는 거의 대부분 과거 신사가 위치했던 자리다. 현존하는 유일한 신사는 [[타오위안]] 신사인데 일본의 단교 선언 이후 남은 잔재마저 없애려던 것을 80년대 이후 정비하여 보존해 둔 것이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조선신궁, version=480)] [[분류:신궁(신토)]][[분류:없어진 건축물]][[분류:타이베이시]][[분류:대만-일본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