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골품제)] [목차] == 개요 == 大阿飡 [[신라]]의 [[산계#신라|관등]]. 신라 때에 둔 17관등 가운데 다섯째 등급으로 [[파진찬]]의 아래고 [[아찬]]의 위다. 다른 이름으로 한아찬(韓阿飡), 한찬(韓粲), 대아간(大阿干)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대아찬이 제정됐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대아찬 관등은 418년 죽은 박제상에게 추증될 때 처음 나오며 대아찬으로서 활동한 이는 법흥왕 때인 525년의 사벌주 군주 이등이 처음이다. == 상세 == [[보라색|자색]] [[관복]]을 입었으며 신라에서는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골품제]] 참조. [[6두품]] 이하는 아랫등급 [[아찬]]까지만 승진할 수 있었으며, 이런 점 때문에 6두품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중규직|중위제로써 아찬을 중아찬, 3중아찬, 4중아찬 식으로 나누기도 했는데, 어쨌든 6두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대아찬에는 오를 수 없는 제한이 있었기에]] [[나말여초]] 때는 6두품이 [[호족(한국사)|호족]]과 신왕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원인이 된다. [[발해]]가 건국된 후 신라 측에서 [[대조영]]에게 대아찬 관직을 하사했는데, 기록상 신라가 외부 세력에게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대아찬 관등을 준 건 신라 천 년 역사상 [[금관국]] 왕족, [[고구려]] [[보덕국]] 왕족, 발해 왕족 세 사례밖에 없었다.[* 물론 기록 누락이나 다른 이유로 더 있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왕]]은 [[창녕 척경비]]에 기록된 8위 [[사찬]]에 오른 것이 현재 확인되는 마지막 기록이므로, 6두품의 진급 상한선인 5위 대아찬에 도달하기 전에 기록이 끊기기 때문에 그가 6두품을 받았는지 진골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위와 같이 대아찬은 최소 진골만 가능한 등급이므로 타국 왕족은 신라 왕족과 동급이라고 인정해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분류:신라의 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