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w3sdtfyxctgfvsgx.jpg|width=100%]]}}}|| || 사고 12일 전인 [[1997년]] [[7월 25일]], [[오카야마 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모습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orean 801.jpg|width=100%]]}}}|| || 추락 사고 후 사고기의 잔해[* 화재 진화후 기체 앞부분에서 찍은 사진] || || 한국어 ||{{{+2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영어 ||[[대한항공|Korean Air]] Flight 801 crash|| ||<-2> '''{{{#fff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1997년]] [[8월 6일]]|| || '''유형''' ||[[CFIT]], 악천후, 조종사 과실, 공항 시설 낙후|| ||<-2>{{{#!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13.455278 144.732778 &zoom=11, 너비=100%, 높이=240px)]}}} || || '''발생 위치''' ||[[미국]]령 [[괌]], 니미츠 힐|| || '''기종''' ||[[보잉 747-300|Boeing 747-3B5]]|| || '''운영사''' ||[[대한항공]]|| || '''기체 등록번호''' ||HL7468|| || '''출발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김포국제공항]]|| || '''도착예정지''' ||[[미국]]령 [[괌]]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 ||<|2> '''탑승인원''' ||승객: 237명|| ||승무원: 17명|| ||<|2> '''사망자''' ||'''승객: 214명''' || ||'''승무원: 14명'''|| ||<|2> '''생존자'''[* 추후 1인 추가 사망이 확인되었으나 사고 후 65일이 지난 1997년 10월 10일 사망하여 공식 사망자로는 집계되지 않는다.] ||승객: 23명 || ||승무원: 3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 43분경(현지 시각) [[서울]] [[김포국제공항|김포]]발 [[대한항공]] 801편, 테일넘버 HL7468이 [[미국]]령 [[괌]]의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으로의 접근 중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한 항공사고이다. 희생자와 관련해선 아래 내용 참고. 이 사고는 [[대한항공]] 창립 사상 사망 사고 2위를 기록하였으며(1위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007편]]) 더불어 대한민국의 단일 항공기 사고 2위다. 세계 항공 사고 순위로는 공동 22위(다른 한 사고는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AF447]])이며 또한 '''[[보잉 747-300]]의 유일한 [[사망]] 사고이다.'''[* 보잉 747-300의 주요 항공사고는 단 3건인데, 그 중 [[안셋 오스트레일리아 항공 881편 착륙 사고]]와 [[사우디아 항공 3830편 배수로 좌초사고]]에서는 전원이 생존했다. 다만 보잉 747-300 기종이 판매가 매우 부진했던 형식이었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사고는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가 마지막으로 일반인 탑승객 사망사고를 낸 사고[*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가 마지막으로 사망사고를 낸 것은 1999년의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8509편 추락사고]]인데 8509편은 화물기라서 일반인 탑승객이 없었다.]이기도 하다. 세계 항공사고 역사를 통틀어봐도 매우 특이한 유형의 사고이다. 공항으로부터 거의 5km나 떨어진 곳에서 기장을 비롯한 항공승무원 3명이 집단적인 착각을 일으켜 자신들이 공항에 착륙 직전이라고 믿었던, 그리고 훈련받은대로라면 사고 훨씬 이전에 복행(go around)을 했어야 함에도 그러하지 않았던, 최저고도(minimum) 경보가 나왔음에도 무려 6~7초 가량을 더 하강했던, 통념대로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여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 사고로 인해 안전 기준이 미달되어 대한항공은 본래 가입하려 했던 항공 동맹인 [[스타얼라이언스]]로부터 가입을 거절당하고 말았다.[* 연속적인 사고를 냈으나 이 사고가 결정타가 된 셈이다.] 하지만 2000년에 [[델타항공]], [[에어 프랑스]], [[아에로멕시코]]와 함께 [[스카이팀]]을 새로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스타얼라이언스]]는 대한민국의 제2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가입했다.] == 사고의 배경과 진행 과정 == [[1997년]] [[8월 6일]] 새벽 1시 쯤, [[김포국제공항|서울]]을 떠나서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괌]]으로 가던 대한항공 801편[* 원래는 B747-300 대신 [[A300#s-3.4|A300-600R]]이 운항할 예정이었으나 성수기로 탑승객이 많아 B747-300이 투입되었고 운항 승무원도 바뀌었다.]이 괌 아가나 공항에 착륙 직전 공항 바로 앞의 언덕인 니미츠 힐(Nimitz hill)[* [[미합중국 해군]] [[원수(계급)|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태평양 전쟁]] 중 미 해군이 태평양함대사령부를 괌으로 잠시 이전시켰다가 종전 후 해군기지 일부만 남기고 도로 [[하와이]]로 돌아갔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대한민국에선 유난히 한 일에 비해 아는 사람이 적은 니미츠 제독을 소개할 때 이 사고를 언급하며 "그 항공기가 추락한 언덕의 이름이 이 제독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도 해당 언덕의 바위 등은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 잘 보면 나무의 뿌리 뽑힌 흔적 등이 있다.] 밀림 지대에 추락하여 탑승객 254명 가운데 228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살아남은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파일:attachment/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ke801cockpit.jpg]] 박용철 기장, 송경호 부기장, 남석훈 [[항공기관사]] 3명의 운항승무원이 운항을 맡았다. 박용철 기장(1953년생)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조종]][[장교]] 출신으로, 1987년 공군 [[소령]]으로 예편 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1992년 기장으로 승격, 1995년부터 [[보잉 747]]을 조종하기 시작했으며 1997년 5월에는 비행안전 부문에서 대한항공 사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송경호 부기장(1955년생)은 1994년에, 남석훈 항공기관사(1939년생)는 1980년에 각각 공군 [[중령]] 예편 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근무해 왔다. 당시 조종실에서는 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두 가지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괌 공항의 비행기 유도 무선표지소, 즉 [[VOR]][* 고주파 전방위 무선표지소. 공항에서 비행기들의 착륙을 유도하는 것으로, [[바다]]의 [[등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이 다른 공항들의 것은 보통 활주로 끝에 있는 것과 달리 3마일(약 4.8km) 정도 앞에 있다는 사실.[* 조종사들의 브리핑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괌 공항의 니미츠 VOR은 다른 공항과 같이 활주로 평지에 있는 게 아니라 니미츠힐 즉 산꼭대기 가까이에 있다. 바로 이 점이 후술하는 바와 같이 조종사들의 착각과 더불어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때문에 원래 정상 착륙 절차대로라면 아가나 국제공항 6번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은 니미츠 VOR을 기준으로 빙 돌면서 접근을 한다. 두 번째는 괌 공항 [[계기착륙장치]]의 활공각 유도 장치인 [[계기착륙장치#s-2.1|글라이드 슬롭]]이 고장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조종사들이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HL7468에 비치되어 있던 차트는 구식이었기에 1997년 사고 당시보다 착륙 고도가 낮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고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충돌 30여 분 전, 박용철 기장의 착륙 브리핑이 있었다. 이 대화에서 박용철 기장은 괌 공항의 글라이드 슬롭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명확히 언급하였다. 충돌 29분 전, 41,000ft(12,496.8m) 상공에 있던 비행기는 2,600ft(792.5m)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충돌 22분 전 갑자기 비구름이 나타나 10마일(16.1km) 정도 우회하기로 했다. 충돌 11분 전, 비구름에서 벗어난 801편은 괌 공항 6번 활주로로 내려가겠다고 관제탑에 보고했다. 충돌 9분 전, 착륙을 위해 괌 공항 [[계기착륙장치]]와 VOR을 맞췄다. 로컬라이저란 계기착륙장치에서 발사하는 무선으로서, 이것을 수신하면 착륙 비행기의 항로와 활주로의 중앙선을 일직선상에 맞출 수 있다. 당시 괌 공항에서는 착륙 시의 강하고도를 보여주는 글라이드 슬롭은 작동하지 않고 있었으나 로컬라이저는 작동하고 있었다. 사고기는 90도로 좌회전하여 로컬라이저 무선을 포착한 다음 고도 2,600ft(792.5m)를 유지하며 비행하고 있었다. 충돌 3분 전, 괌 관제소는 "대한항공 801편, 활주로 6번 왼쪽으로 계기 착륙 방식의 접근을 허가한다. 글라이드 슬롭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착륙 지시를 내리면서 글라이드 슬롭이 고장나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그런데 이 직후 조종실에서는 "글라이드 슬롭이 돼요?", "글라이드 슬롭 되나 보라고" 등등의 이상한 대화가 오고가기 시작했다. 글라이드 슬롭 전파송신소는 고장이 나있더라도 비행기 계기판에는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된 신호가 나타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라디오 같은 전자 제품에 의한 전파 간섭이나 비행기 외부에서 방출된 전파로 인한 오작동을 일으킬 수가 있다. 나중의 대한민국 건설교통부 조사팀의 보고에 의하면 만약 괌 공항의 글라이드 슬롭 송신 시설이 120헤르츠의 전파를 발사하였더라면 801편의 수신기에 허위 신호가 나타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블랙박스에 남겨진 대화를 보면 해당 기체 계기판에 글라이드 슬롭과 관련한 어떤 신호가 나타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충돌 2분 전, 801편은 고도 1,400ft(426.7m)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괌 공항의 시각 비행 착륙 규칙에 따르면 해당 위치에서는 2,000ft(609.6m) 아래로 내려가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801편은 그 최저고도보다 600ft(182.9m)나 아래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사고기 조종사들이 이러한 심각한 실수를 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이 제시되었는데 조종사 특히 박용철 기장의 피로[* 블랙박스 대화 중에 "어. 정말로 졸려서"라는 대화가 남아 있다.], 구름과 비가 내려서 바깥 상황이 보이지 않는 악천후, 고장나 있는 글라이드 슬롭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착륙 절차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던 점[* 관제소가 글라이드 슬롭 고장을 선언했으면, 그 어떠한 신호가 잡히더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관제소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조종사들은 전술한 것처럼 글라이드 슬롭이 되는지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이 되어서 '''괌 공항 활주로 3마일(4.8km) 앞에 있는 VOR을 다른 공항처럼 활주로 바로 끝에 있다고 착각'''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특히 항공사고 분석으로도 명성을 날린 [[조갑제]] 기자가 과거 월간조선 특집 기사에서 이를 언급하였다.] 즉 하강 기준점인 VOR이 괌 공항 3마일(4.8km)이나 앞에 있는데도 이를 공항 활주로 끝에 있다고 순간 착각하고 VOR을 향하여 사고기를 강하시키고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VOR은 괌 공항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활주로보다 훨씬 높은 고도(니미츠힐)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사고기 조종사들이 니미츠힐 바로 위 몇십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날면서도 괌 공항에 착륙 직전이라고 착각한 것이 충분히 설명된다. NTSB가 발생한 최종 사고 조사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점을 나열하여 사고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oute_jooncar4869.jpg|width=100%]]}}}|| || 대한항공 801편 추락 당시 항적도 || 추락 지점은 VOR 바로 근처임을 알 수 있다. 조종사들이 VOR을 활주로 끝이라고 착각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충돌 1분 40초 전, 관제탑은 801편에게 착륙을 허가했다. 충돌 1분 20초 전, 기장은 착륙 전 최저고도를 560ft(170.7m)로 세트하라고 지시했다. 즉 이 고도까지 내려가도 활주로가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착륙을 포기하고 복행(고어라운드)해야 한다. 이 최저고도 560ft는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를 설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충돌 40초 전, 기장은 또 다시 "글라이드 슬롭 안되나?"라고 말하여 계속 글라이드 슬롭에 신경을 쓰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 사고 직전 상황과 조종실 음성 기록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WY0AxSqIWpw)]}}}|| || [[CVR]][* 이 영상은 조종사들의 음성이 삭제된 CVR 녹음영상을 퍼 온 영상이기 때문에 관제사 음성과 경보음만 확인할 수 있다. 50초 부근에서 1000피트, 1분 8초에 500피트, 1분 23초에 Minimum, Minimum, 1분 33초에 오토파일럿 해제와 50-20피트 경보를 들을 수 있다. 1분 35초에 추락하는 소리가 들리고 CVR은 종료된다.][* 해당 녹음 영상에 관해서는 조작 논란이 있다. 실제 당시 NTSB는 녹음 오디오 원본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고, 녹취록만 공개하였다.] 아래쪽 기록문은 교신외 조종실 내 음성 기록을 적어둔 것이며, 표 오른쪽의 분석 내용은 당시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가 자신의 기사에서 추적 보도한 내용이다. || ||.1541:22[br](충돌 1분 4초 전)||기장: [[플랩|Flaps]] 30([[플랩]]을 30도로 펼치라고 지시)[br]부기장: Flaps 30||조종석 내에서의 체크리스트 복창이나 기기 세팅 시 기본 언어는 [[영어]]이고 이는 교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1541:31||부기장: 착륙 점검[br]기장: 잘 봐요. 560 피트(170.7m) set.[* 글라이드 슬롭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엔 최저 560피트(170.7m)로 하게 되어 있다. 이 고도까지 내려가서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착륙을 포기하고 상승해야 한다. 이 고도를 최저고도로 설정했다는 것은 기장이 활공각 유도 장치가 고장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 || ||.1541:42[br](충돌 44초 전)||[[GPWS]]: One thousand!(1000피트!) ||이때 801편의 위치는 VOR로부터 2마일(3704m), 고도는 1,400피트(426.7m). 이 고도는 이 위치에서 지켜야 하는 최저고도 2,000피트(609.6m)보다도 600피트(182.9m)나 낮다. 그래서 [[GPWS]]가 지면과 비행기 사이의 고도가 1,000피트(304.8m)라고 경보한 것이다. 801편은 활주로에서는 3.3마일(5.3km) 떨어져 있는 VOR 송신소를 지향하여 일직선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 ||.1541:46[br](충돌 40초 전) ||기장: 글라이드 슬롭 안 되나? [[와이퍼|Wiper]] on.[br]기관사: Yes, wiper on.||괌 관제소가 글라이드 슬롭 고장을 선언했음에도 계속 글라이드 슬롭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미 사전 브리핑에서 괌 공항의 글라이드 슬롭 고장이 공지되었기 때문에 설사 글라이드 슬롭으로 추정되는 전파가 잡혔다고 하더라도 조종사들은 거기에 신경을 쓰면 안 되었다.]|| ||.1541:53[br](충돌 33초 전)||부기장: Landing Checklist. (착륙 전 점검 시작)[br]기관사: Ignition Flight Start Flight Start''' (엔진이 갑자기 작동 중지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 가동)|| || ||.1541:59[br](충돌 27초 전)||부기장: 안 보이잖아?[br]GPWS: Five hundred! (500피트!)[* 이때 801편의 고도는 해발 약 1,100피트(335.3m)였으나 지면으로부터는 불과 150m(492피트)밖에 떨어지지 않아 충돌 방지 장치가 다시 경보를 한 것이다.][br]기관사: 어? (놀라는 어투)[br]조종실: Stabilize, stabilize.(기체가 안정된 상태에서 접근하고 있다.)[br]기관사: 자동 브레이크?[* 비행기가 착지한 뒤 자동적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하도록 하는 장치.][br]기장: Minimum.[* 브레이크를 최저 단계에 놓아 활주로에서 길게 미끄러진 뒤 멈추도록 조작 지시. 활주로에 닿기 직전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 || ||.1542:08[br](충돌 18초 전)||기장: [[랜딩 기어|Landing Gear]] Down in green.[br](착륙 바퀴가 내려갔음을 확인했다.) ||이때가 충돌 18초 전인데 기장은 정상적인 착륙 절차라고 생각하고 착륙 점검을 계속하고 있다. || ||.1542:12[br](충돌 14초 전) ||기장: On Course. (정상 비행 중)|| || ||.1542:13[br](충돌 13초 전) ||기관사: Flaps?[br]조종실: 30 green.([[플랩]]이 30으로 내려와 있는 것을 확인) || || ||.1542:14[br](충돌 12초 전) ||'''GPWS: Minimums, minimums!''' (최저 비행 고도)[br]'''?: 착륙 포기합시다.''' || || 미니멈 경보가 나온 것은 불과 '''충돌 12초 전''' 이었다. 이때 사고기의 해발고도는 840피트(256.0m)였으나 니미츠힐 바로 위를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지면과의 차이는 불과 304피트, 약 92.7m였다. 이 경고음이 나왔을 때 조종실에서는 어둠과 악천후로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다. 활주로와는 5km도 넘게 떨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미니멈 경보가 나오고 원칙대로 조종사들이 복행을 시도했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GPWS|GPWS(지상접근경보장치)]]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미니멈 경보는 착륙 결심 최저고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무조건 그 즉시 [[복행|복행(고어라운드)]]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기 기장과 부기장은 미니멈 경보가 나왔음에도 즉각적으로 기체를 상승시키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설사 기장이 복행 조작을 하지 않아도 규정상으로는 부기장이 복행을 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조종사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최저고도를 해발 560피트(격차고도 304피트)로 미리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그런데 계기판이 가리키는 현재의 해발고도는 840피트, 최저고도보다 280피트(85.3m)나 높은 것으로 나오니 안심했을 것이다. "560피트(170.7m)까지는 마음 놓고 내려가도 안전하다"는 일종의 선입견 내지는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560피트(170.7m)라는 최저고도는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3.3마일(6,111.6m) 떨어진 VOR 상공까지 1,400피트(426.7m) 이상의 고도로 접근한 뒤 VOR을 넘어서서 활주로로 강하하는 구간의 최저고도이다. 즉 기장을 비롯한 조종사들은 최종 접근 경로의 한 구간을 통째로 머리속에서 생략해버린 채 "무조건 560피트(170.7m)까지는 내려가도 된다"는 집단적인 착각을 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체는 활주로가 아니라 활주로에서 3마일이나 앞에 있는 VOR을 향해 거의 일직선으로 내려꽂히듯 하강하고 있었고 그 VOR은 평지가 아니라 니미츠힐 꼭대기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니 해발고도와는 다르게 미니멈 경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1542:14.70[br](충돌 11초 전) ||'''기관사: 유압.'''[br] '''조종실: 음, Landing Lights.''' (착륙등) || || ||.1542:17[br](충돌 9초 전) ||'''GPWS: SINK RATE!''' (갑자기 강하 속도가 빨라진 것을 경고)[br]'''부기장: Sink rate, 오케이.''' (급강하 문제 없다.)[br]'''기관사: 200피트(61.0m).''' (기체와 지면 사이의 격차 고도.)||비행기가 실제 지면과 급격히 가까워지니 양력이 떨어지면서 강하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이다. 부기장은 기체를 상승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급강하가 문제 없다고 하고 기관사는 304피트(92.7m)일 때까지 내려가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즉시 착륙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 최저고도 이하로 100피트(30.48m)나 내려왔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 ||.1542:19.47[br](충돌 7.47초 전)||'''부기장: 착륙 포기합시다.''' || || ||.1542:21[br](충돌 5초 전) ||'''기관사: 안 보이잖아'''||기체를 급히 상승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도 밖을 보면서 활주로를 찾고 있다.|| ||.1542:22[br](충돌 4초 전) ||'''부기장: 안 보이죠. 착륙 포기!''' || || 바로 위 표의 조종실 대화 내용은 '미니멈 경보'가 나온 이후의 대화이다. 즉 미니멈 경보가 나왔음에도 무려 6~7초 가량을 더 하강한 것이다.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이때 부기장이 기장을 무시하고 자기 앞에 있는 조종간을 잡아당겼어야 했다는 지적이 있다. 부기장이 두 번이나 "착륙 포기"를 건의했음에도 기장은 바로 응하지 않았다. 민항기 조종사들은 기장이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부기장이 독단으로라도 조종권을 인수하여 위기를 모면하도록 교육받는다. 하지만 801편에서는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대한항공 조종실 내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하단에 후술돼 있다. ||.1542:22.18||'''기관사: Go Around''' (착륙 포기) || || ||.1542:23.07||기장: Go Around[br] ||기장이 마침내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올리기로 결심한 시각은 충돌 2.53초 전이었다. GPWS의 최저고도 경고 후 약 9초, 부기장 "착륙 포기" 첫 번째 건의로부터 3.2초가 지난 시점이었다. || ||.1542:23.77[br](충돌 2.3초 전) ||조종실: 자동조종장치 해제 경보음[br]부기장: Flaps. (플랩을 다시 집어넣음.)||기장이 조종간을 잡아당기기 전에 자동조종장치 해제 단추를 눌렀다는 것을 뜻한다. 기장은 왼손으로 조종간을 당기면서 오른손으로 엔진 스로틀 레버를 밀어 올렸다. 비행 기록 장치의 분석치에 따르면 이 시각에 엔진 추진력과 비행 속도, 그리고 기수의 상승 각도가 증가하고 있었다. || ||.1542:24[br](충돌 2초 전) ||'''GPWS: 100, 50, 40, 30'''(피트) ||기장이 [[복행]]을 시도했으나 중량 210t의 보잉 747기가 시속 290km로 급강하하는 관성을 즉각 멈추게 할 수는 없었고, 지표면과 너무 가까워 양력도 부족했기에 하강을 멈출 수 없었다. || ||.1542:25.78 ||'''GPWS: 20, 충돌음''' || || 801편의 왼쪽 날개 밑에 달린 랜딩 기어가 먼저 언덕의 나무를 살짝 건드린 뒤 도로 곁에 있는 송유관을 치면서 도로를 건너가다가 왼쪽 날개 바깥쪽의 1번 엔진이 언덕 비탈과 충돌했다. 엔진은 떨어져 나갔고 비행기 동체는 언덕의 비탈을 기어 올라가면서 조종실이 있는 기수를 시작으로 부러지기 시작했다. 기수는 언덕의 꼭대기를 넘어 아래로 내려 꽂듯이 처박혔다. 사고기는 충돌 직전에 기장이 기수를 치켜올린 것 때문에 충돌 2초 후에는 기수가 상향 8도로 치켜져 있었다. 결국 하강을 멈추고 막 상승하려는 찰나에 나무와 송유관을 친 것인데 나중의 분석에 따르면 '''3m만 여유가 있었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면하고 상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편, 747기가 치고 지나간 송유관의 커다란 파편이 소방차 및 구급차가 사고 지점으로 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도로를 가로막게 되었고 이는 사고 대응을 더더욱 지연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 구조대원들이 소형 응급대응 킷만을 들고 걸어서 이동했다고 한다. [[파일:destroy_jooncar4869.jpg]] 괌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시점에서 바라본 니미츠힐 추락 현장. 저 멀리 평지에 보이는 하얀 줄 같은 곳이 괌 공항 6번 활주로이고 그 왼쪽의 상방에 네모나게 있는 곳이 아가나공항의 터미널과 주기장이다. 그리고 사진 우상방에 하얀 평지와 그 가운데 기둥 같은 게 서있는 게 보이는데, 그게 바로 괌 공항의 니미츠 VOR이다.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사진이다. ||.1542:29[br](충돌 3초 후)||조종실: 신음 ||떨어져 나간 조종실이 뒤집히면서 구조물이 속으로 밀려들어 왔고, 고통을 이기지 못한 조종사들의 신음소리가 녹음되었다. || ||.1542:32.53[br](충돌 7초 후) || 녹음 끝 || {{{#!folding [ 추락 후 조종실의 모습 펼치기 · 접기 ] [[파일:attachment/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ke801_cockpit_c.jpg|width=50%]]}}} [*주의 사람마다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열람 시 주의 바람] 조종실과 1등석이 있는 기수(機首) 부분은 동체가 분리되어 뒤집어진 채 발견되었다. 기수의 코 부분은 충돌 시의 충격으로 조종실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있었다. 생존자 가운데 8명은 1등석, 10명은 뒷좌석, 13명은 3개의 의자열(列) 가운데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1층의 비즈니스석의 승객들과 어퍼덱에 탑승한 승객들은 '''전원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비행기가 동강날 때 의자와 함께 바깥으로 튕겨 나갔거나 기체 안에서 자력(自力)으로 안전띠를 풀고 화염과 쏟아진 짐 덩어리들 사이를 뚫고 바깥으로 탈출한 이들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충돌 직후의 승객실은 산소 마스크가 내려와 있었고 머리 위에 있는 짐칸에서 물건들이 쏟아져 바닥에 쌓여 있었으며 공사장처럼 어지러웠고 붉은 화염과 열기가 덮쳐 왔다. 한편 164명이 탑승한 [[아시아나항공]]의 OZ262편도(기체는 [[보잉 767]]) 사고기와 비슷하게 5일 오후 9시 김포공항을 떠나 괌으로 향했으나 이 비행기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때문에 801편의 복편에 탑승하려던 승객들과 승무원 그리고 마중을 위해 801편의 탑승객을 아가나 국제공항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아시아나항공 262편이 도착했음에도 대한항공 801편은 소식이 없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래의 ATC 기록과 같이 관제사들은 레이더에서 사라지고 두 관제사가 모두 통신이 안 되는 것을 보아 사고로 단정지었다. 잠시뒤 타워 관제사들은 801편의 뒤를따라 착륙하던 라이온에어 789편이 니미츠힐에서 정체모를 화염이 보인다는 증언을 하고 '''폭풍우를 뚫고''' 관제탑에서도 보일정도의 붉은 화염빛이 비치는것을 보고 경악하며 소방대에 이를 신고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dJbYCMu3CQ)]}}}|| || 위 영상의 초기 부분은 추락 전 801편과의 교신 내용이고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의 관제탑간(아가나타워, 괌 CERAP, RAMP Control[* 그라운드 컨트롤과 비슷한 개념이다])의 교신[* 관제탑 또한 항공기의 CVR과 처럼 VCCS(Voice Communication Control System)의 녹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관제탑의 주파수 통신뿐만 아니라 VCCS기기를 통한 다른 관제탑간의 대화 내용 및 전화내용까지 녹음된다.] 내용이다. 관제탑 녹음 테이프 원본을 당시 NTSB가 조사이후에 공개하였지만, 현재는 찾아볼 수 없고 일부분만 녹음된 영상이다. || 아가나 타워의 녹음테이프 내용의 텍스트이다. ||{{{#!folding [ 펼치기 · 접기 ] ||KAL801: Agana tower korean air eight zero one ah localizer six left 관제탑: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agana tower runway six left wind-zero niner zero at seven cleared to land verify heavy boeing seven four seven tonight KAL801: Affirmative. runway 6L cleared to land Korean Air 801 Heavy 관제탑: Korean eight zero one heavy roger 관제탑: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agana tower RAMP: this is juan 관제탑: Yeah korean air come up to you RAMP: ah no 관제탑: All right thanks to RAMP:All right 관제탑: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agana tower 관제탑: Approach Agana did Korean Air come back to you? 접근 관제소: 801?(Eight zero one?) 관제탑: Affirmative. 접근 관제소: Korean Air 801 Guam... no? 관제탑: He checked in with me I cleared him to land. I don't know where at he's at never did have him in sight. 접근 관제소: You never saw him? 관제탑: Negative. 접근 관제소: He didn't land? 관제탑: Negative. 접근 관제소: Oh my god... 관제탑: Stand by a second RAMP: This is juan 관제탑: Yeah did korean air RAMP: No in fact im listening to cerap i dont even hear eight zero one i can hear you on the radio 관제탑: Yeah I tried to get a hold of him he called me ah i cleared him to land RAMP: Yeah 관제탑: i never had him in sight RAMP: You said cleared to land and i waslooking around and i said wheres he at and thats when 관제탑: Yeah never had him in sight hold on a second 관제탑: Andersen tower Agana tower 접근 관제소: I don't see him on the radar 관제탑: I dont see him either standby a second 앤더슨 공군기지: go ahead 관제탑: You didn't have a boeing seven forty seven land up there did you 앤더슨 공군기지: just now 관제탑: affirmative 앤더슨 공군기지: hu hu ah no i dont have any lights on so i dont i dont see anybody out there 관제탑: well we’re missing a boeing seven forty seven stand by 관제탑: just checked with andersen they dont know where hes at either 접근 관제소: Is it raining out there 관제탑: I got wet runway but ah-–ive got a small ah shower pushing through but i dont have ah but i can see the approach end---standby a second 관제탑: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agana tower 관제탑: Is that him talking to you 접근 관제소: Negative 관제탑: I don't have him. he called me once, I cleared him to land, told him not in sight, and I don't have him. 접근 관제소: Well he must have crashed then.. 관제탑: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agana tower 접근 관제소: I’ll talk to you later 관제탑: to 관제탑: Approach agana 접근 관제소: Center 관제탑: Yeah i just checked with ramp they a ah havent i ya he hasnt called them either(추정내용) 접근 관제소: Well---he must have crashed then west of the airport 관제탑: He was what ah about twelve out when you gave him to me ten or twelve out when you gave him to me(추정내용) 접근 관제소: Yes 관제탑: OK i don't have him hasn't on my frequency 접근 관제소: Well i dont know how you can have-–somebody search west of the airport for the airplane 관제탑: Whos that ah inbound 접근 관제소: I'll ask Ryan 관제탑: Thanks to 접근 관제소: Tower center 관제탑: Agana tower 접근 관제소: six south ryan seven eighty nine visual runway six left km 관제탑: Is he gonna be able to go out and take a look 접근 관제소: Yeah hes looking now 관제탑: Thanks to 관제탑: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agana tower 접근 관제소: Tower center 관제탑: Agana tower 접근 관제소: Ryan said that there is a fire on the hillside 관제탑: Nimitz 접근 관제소: Affirmative 관제탑: All right I'll let the airport authority know 접근 관제소: km RAMP: This is juan 관제탑: Yeah uh ryan just advised center that there is a hillside on the other uh uh correction a fire on the other side of nimitz hill RAMP: a fire on the other side of nimitz hill 관제탑: Affirmative RAMP: OK 관제탑: a possible aircraft crash RAMP: what 관제탑: possible aircraft crash RAMP: OK 관제탑: to RAMP: OK thanks 관제탑: You're going to notify everybody right---hey juan RAMP: This is juan 관제탑: Are you going to notify everybody RAMP: Yeah 관제탑: OK I'm going to call crash ah im going to ring the crash phone now RAMP: OK Thanks 사고출동반: May i help you 관제탑: This is the tower this is the tower--crash are you on 사고출동반: Yes I am 관제탑: Have a possible aircraft crash--north side---correction other side of nimitz hill off station---heavy boeing seven forty seven call sign is korean air eight zero one heavy 사고출동반: standby 관제탑: I don't have any souls or fuel information on it 사고출동반: Roger that 관제탑: All right 사고출동반: OK Thanks 관제탑: to 관제탑: Ryan seven eight nine when slow one eighty approved back taxi runway ah two four right to foxtrot contact ramp one two one point six when off the runway RYN789: one eighty approved and roger the fox contact ramp there and tower ryan seven eight nine 관제탑: Ryan seven eight nine tower RYN789: ah yes sir can you see the glow from the fire on the extended center line from two four right 관제탑: ah not at this point there is still a bit of a cell between me and them RYN789: yeah its ah just almost straight off the runway on the extended center line of two four right and approach end of ah six left 관제탑: Roger is that on the other side of nimitz still RYN789: ah its ah almost exactly abeam of the VOR it looks like it might be right on the VOR 관제탑: Roger that thank you 관제탑: Agana tower this is marty may i help you TEL[* 외부 전화 라인]: I'm on my way now 관제탑: say again RYN789: What type airplane was it TEL: I'm on my way now 관제탑: hold on a second 관제탑: A boeing seven four seven RAMP: This is juan 관제탑: Yeah juan this is marty we do have a report of a crash ah it appears to be right at the VOR site RAMP: at the VOR site 관제탑: Affirmative RAMP: OK RAMP: This is juan 관제탑: Yeah juan this is marty again i dont have anything else to pass to you at this time i am just trying to find out if you have anymore information it appears from crash i just talked to them i guess ah theyre checking with their chief to find out whether or not if they are going to roll any equipment RAMP: <청취불가> 관제탑: Ah Ryan tell me <청취불가> RAMP: Yeah just tell to jennie 관제탑: Just telling jennie..? okay thanks.. ----- KAL801: 아가나타워 대한항공 801 6L 로컬라이저 정렬 완료했습니다. 관제탑: 대한항공 801 6L 활주로 착륙허가 합니다. 현재 바람은 090방향에서 7노트로 불고 있습니다. 보잉 747로 들어오는 것 맞으신가요? KAL801: 맞습니다, 6L 활주로 착륙허가 받았습니다 대한항공 801 관제탑: 대한항공 801 알겠습니다 관제탑: 대한항공 801 아가나 관제탑입니다 RAMP: 후안입니다. 관제탑: 대한항공이 너한테 갔니? RAMP: 아니 관제탑: 알겠어 고마워 to[* 아가나타워 담당 관제사 Marty Irvin Theobald의 운영 이니셜] RAMP: 알겠어 관제탑: 대한항공 801 아가나 관제탑입니다 관제탑: 접근관제소, 대한항공 801편 다시 너랑 교신중이야? 접근 관제소: 801? 관제탑: 응 접근 관제소: 대한항공 801 괌.. 아니? 관제탑: 나랑 교신하고 착륙허가를 줬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안보여 접근 관제소: 아예 확인이 안된 거야? 관제탑: 전혀 안보여 접근 관제소: 착륙도 안했어? 관제탑: 안했어. 접근 관제소: 오 주여.. 관제탑: 잠깐만 기다려 RAMP: 후안입니다. 관제탑: 어 대한항공.. <청취불가> RAMP: 아니 사실 나는 접근 관제소의 교신을 듣고 있어, 라디오에서 너는 들리는데 801편은 들리지 않아. 관제탑: 어 내가 그를 찾고있어 RAMP: 응 관제탑: 그가 아예 보이질 않아 RAMP: 너는 착륙허가를 내줬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고.. <청취불가> 관제탑: (관제소 관제사에게) 어, 그를 한번도 보지를 못했어. 관제탑: (앤더슨 공군기지에게) 앤더슨 공군기지, 아가나 타워입니다. 접근 관제소: 그가 레이더에서도 않보여 관제탑: (관제소 관제사에게) 레이더에서도 않보이고, 내 시야에서도 보이질 않아 앤더슨 공군기지: 말씀하세요. 관제탑: (앤더슨 공군기지에게) 거기에 보잉747기가 착륙했나요? 앤더슨 공군기지: 방금이요? 관제탑: 네 방금이요. 앤더슨 공군기지: 허허 조명이 안켜져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관제탑: (앤더슨 공군기지에게) 음.. 우리는 보잉747를 놓쳤습니다. 잠시만요. (통화종료) 관제탑: 방금 앤더슨 공군기지에도 확인를 해봤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접근 관제소: 거기 비 내리고 있어? 관제탑: 활주로가 젖고 작은 소나기가 밀려오지만 접근하는것은 볼 수 있어. 관제탑: 대한항공 801 아가나 관제탑입니다 관제탑: 너와 교신중이야? 접근 관제소: 아니 관제탑: 그가 로컬라이저 정렬 했다고 해서 착륙허가를 내줬는데 전혀 안보여 접근 관제소: 그렇다면 추락했나 보네... 관제탑: 대한항공 801 아가나 관제탑입니다 접근 관제소: 잠시후에 이야기하자 관제탑: to 관제탑: 아가나 접근관제소 접근 관제소: 아가나 접근관제소입니다. 관제탑: 어, 내가 방금 RAMP와 확인해봤는데.. <청취불가> 접근 관제소: 글쎄.. 아마 공항 서쪽에 추락했을거야.. 관제탑: <청취불가> 접근 관제소: 응 관제탑: 그가 보이지도 않고, 내 주파수에 없어 접근 관제소: 글세...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서쪽의 비행기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비행기를.. <청취불가> 관제탑: 인바운드 비행기 누구야? 접근 관제소: 내가 라이언 항공의 비행기에게 물어볼게 관제탑: 고마워 to 접근 관제소: 아가나타워, 접근관제소입니다. 관제탑: 아가나 타워입니다. 접근 관제소: 6시 남쪽방향에 라이언항공789 6L 활주로로 진입중 km[* 괌 관제소 담당 관제사 Kurt James Mayo의 운영 이니셜] 관제탑: 그가 그쪽을 구경 할 수 있을까? 접근 관제소: 응 그가 지금 보고있어. 관제탑: 고마워 to 관제탑: 대한항공 801 아가나 관제탑입니다 접근 관제소: 아가나타워, 접근관제소입니다. 관제탑: 아가나 타워입니다. 접근 관제소: 라이언789가 언덕쪽에서 불이 보인다고 말했어 관제탑: 니미츠? 접근 관제소: 맞아 관제탑: 알겠어, 공항공사에 통보할게 접근 관제소: km RAMP: 후안입니다. 관제탑: 라이언789가 접근관제소에 언덕.. 니미츠 언덕에서 화염이 보인다고 보고했어 RAMP: 니미츠언덕에 화염? 관제탑: 맞아 RAMP: 알겠어 관제탑: 비행기가 추락했을 수도 있어 RAMP: 뭐? 관제탑: 비행기가 추락했을 수도 있어 RAMP: 알겠어 관제탑: to RAMP: 고마워 관제탑: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거지. 주안? (전화끊김) RAMP: 후안입니다. 관제탑: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거지? RAMP: 어 관제탑: 알겠어, 나는 공항 구조대에게 연락할게 RAMP: 그래, 고마워 사고출동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관제탑: 아가나 타워입니다. 사고출동반 들리시나요? 사고출동반: 네 들립니다. 관제탑: 니미츠힐쪽에 대한항공 801 보잉 747이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고출동반: 대기하세요. 관제탑:탑승자수와 연료 정보는 없습니다. 사고출동반: 알겠습니다. 관제탑: 알겠습니다. 사고출동반: 네 감사합니다. 관제탑: to 관제탑: 라이언 789 천천히 승인되면 유도로로 가세요 24도 우회전입니다. 활주로 벗어나면 RAMP로 연락하십시오 121.6 RYN789: 승인되면 24도 우회전 RAMP로 연락 라이언 789 RYN789: 라이언 789 관제탑: 라이언 789 아가나타워입니다. RYN789: 아 네, 24활주로 근처의 오른쪽에 있는 화염이 보이시나요? 관제탑: 그 지점은 안개가 가리고 있어서 안보입니다. RYN789: 24R/6L 활주로 접근지점 끝부분에 화염이 있는것 같습니다. 관제탑: 알겠습니다. 니미츠힐 반대쪽에 있는건가요? RYN789: 니미츠 언덕 VOR쪽 바로 옆에서 보였습니다. 관제탑: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제탑: 아가나 관제탑의 마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TEL: 지금 가는 중이야. 관제탑: (전화상대에게) 다시 말해주세요. RYN789: 어떤 종류의 비행기였죠? TEL: 지금 가능 중이야. 관제탑: (전화상대에게) 잠깐 기다리세요. 관제탑: (RYN789에게) 보잉747입니다. RAMP: 후안입니다. 관제탑: 어 후안 나 마티인데 VOR오른쪽에 충돌이 보인다는 보고가 있어 RAMP: VOR장소에 관제탑: 맞아 RAMP: 알겠어 RAMP: 후안입니다. 관제탑: 후안 마티인데 아직은 너에게 전달할 정보가 없어 지금 정보를 알아보려고 노력중이야 <청취불가> RAMP: <청취불가> 관제탑: 어 라이언이 <청취불가> RAMP: 어, 제니한테 얘기 해줘 관제탑: 제니한테 이야기 하라고..? 알겠어.}}}|| 이 교신이 이루어진 직후 관제사들의 신고에 공항 소방대와 괌 911 구조대가 추락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801편이 치면서 넘어트린 거대한 송유관이 현장으로 향하는 유일한 도로를 막아 버리는 바람에 사고 현장에 도착하는 데만 무려 1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이들은 기체 밖에 자력으로 빠져나와 있던 일부 생존자들을 제외하고는 얼마 안 돼서 시신들을 수습해야 했다. 추락 직후 점점 불길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지점으로 향하는 길이 막히면서 소방대의 접근이 지연되었고 이 때문에 많은 시신들이 화재로 훼손되어 신원 확인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미국 현지의 과학수사대가 유전자 감식 작업을 벌였지만 상당수의 시신들은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고 일부 탑승객들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 당시 날씨 관련 문제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4182887|당시 기사]]에 따르면 괌 교민들은 이 참사가 악천후를 무시한 채 대한항공 측의 무리한 운항으로 야기된 인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교민들은 "사고가 난 새벽에 괌에는 억수 같은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고 여객기가 부산 상공에서부터 천둥번개가 치는 악천후를 통과하면서 기체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등 정상적인 운항이 힘든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중간에 기내식 서비스를 하다가 기체가 심하게 흔들려 식사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한다. 이 비행기의 전 또는 전전 편 그리고 아시아나항공편을 이용해 [[한국]]으로 돌아온 여행객들의 증언에는 자신들의 비행기도 운항 중 매우 불안정했으며[* 엄청난 높이로 비행기가 급하강, 상승을 반복해서 식판이 날아다니고 서 있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당시 괌 인근 기상이 매우 불안정했다는 것은 명확하다. === FAA의 일부 과실 === NTSB는 조종사 과실 말고도 FAA의 과실 또한 존재한다고 결론냈다. 괌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의 구조는 약간 특이했는데 보통 활주로 바로 앞에 DME와 ILS 유도 장치를 설치한 다른 공항들과 달리 DME가 공항 활주로에서 무려 5km나 떨어져 있는 공항이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아예 다른 곳에 시설을 설치해 놓은 정도다.[* 참고로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은 801편 사고가 발생한 이후 여전히 DME가 니미츠힐 위에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FAA는 이런 특이한 구조의 공항에 ILS가 고장났음에도 '''[[안전불감증|3개월]]'''이나 방치해 뒀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기에 대부분의 [[미국]] 공항들에는 최저안전고도 경보시스템(MSAW)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MSAW는 원래는 항공기가 정상고도 이하로 지상에 접근할 때 추락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사고를 예방해 주는 안전 장치로, 공항 관제소 레이더에 설치해 두고 만약 항공기가 접근하는 도중 과하게 하강하면 관제사와 조종사들에게 경고를 해 주는 시스템이다.[* 관제사의 관제 화면에 경고가 뜨고 그것을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알려주며 지형지물에 대한 경고를 하고 상승이나 복행을 지시한다.] 그런데 FAA는 특이하게 유독 괌에만 MSAW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했다. FAA는 괌의 MSAW가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거나 장비를 교체하는 게 아닌 다른 해결 방법을 썼는데, 공항에 접근할 때는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먼 '''바다 위 80km'''[* 당연히 이 거리에서는 MSAW 서비스를 할 필요가 없다. 이 구간까지는 '''지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 접근 절차 지역 밖이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에서는 보통 전이고도 이상의 중고도 이상으로 비행한다.]에서만 이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러한 별도의 규정은 미 본토와 [[알레스카]] 그리고 [[하와이]], [[사이판]] 등 미국령 지역들을 모두 포함해 오직 괌에만 적용되었다. 당연히 괌에 착륙하는 여객기들은 80km 공역 안쪽으로 지나는 순간부터 경고를 들을 수 없었다. 즉 안전보다 편의를 앞서서 한 조치가 801편에 경고할 기회 중 하나를 없애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후 괌의 MSAW도 다른 공항들과 같은 FAA 규격대로 고쳐졌고 3개월이나 수리를 질질 끌던 ILS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수리되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MSAW와 ILS 고장 방치에 대한 과실만 인정했고 당연히 나머지 책임 소재는 대한항공에 있다고 결론내렸다. MSAW 서비스가 제대로 안되고 ILS가 고장이 나긴 했지만 그 외의 안전 장치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대표적으로 ILS는 작동하지 않았지만 최저고도 경고 마커는 정상 작동 중이었기 때문에 정상 고도보다 한참 낮은 고도로 지나가자 비행기는 계속 경고를 울려댔다.] 801편보다 먼저 착륙한 아시아나항공 OZ262편[* 단, B767이 사고기인 B747-300보다 훨신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고 조종 편의성이 더 좋은 점 등은 감안해야 한다. 물론 당시 HL7468보다 연식이 오래된 여객기들도 아무런 이상 없이 괌에 착륙하긴 했지만...]을 비롯해 다른 여객기들은 전혀 문제 없이 착륙을 했기 때문이다. === 조종실의 서열 관련 문제 === 사건 후 '''조종석에 탑승한 3명의 조종 승무원들 모두 [[대한민국 공군|공군]] 조종장교 출신'''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박용철 기장은 1975년 공군 간부후보생학교에 입교한 조종간부 출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군 조종장교는 모두 [[공군사관학교]] 출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공군 조종장교는 공군 ROTC와 조종장학생을 통해 또 뽑는다.] '''다시 말해 기장이 공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공군사관학교 직속 선후배 사이'''였다. 혹자는 기장과 부기장이 공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여서 마치 기장이 강압적으로 부기장을 짓눌렀다는 견해를 비춘다. 하지만 기장은 간부후보생학교 출신이므로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공군 조종장교는 공사 출신과 비공사 출신끼리 파벌을 나누고 있다. 이 파벌은 항공사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보통 비공사 선배-공사 후배 관계의 경우 군대 짬밥 정도만 존중해 주고 대부분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 박용철 기장은 1987년에 공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송경호 부기장의 경우 공군사관학교 26기 출신으로 1994년 공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그리고 남석훈 항공기관사 역시 공군사관학교 11기 출신으로 1979년 공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서열에 따른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데 [[상명하복]]이 몸에 배인 군인 출신끼리 모인 집단에서 조종석을 구성하고 있다 보니 '''감히''' 선배님이 모는 비행기의 조종대를 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자연스레 굳어졌을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고정익 민항기 조종사의 대다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조종특기를 부여받은 후 '''10여 년 의무복무'''[* [[대한민국 해군]] [[해군 항공대|항공]][[병과]] 장교는 의무복무 10년이며, 2016년 기준으로 공사의 조종장교 의무복무는 15년이다. 조종장학생, ROTC는 13년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8년이었다. 이는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고기의 조종사들은 의무복무 8년 혹은 그 이하로 추정된다.]를 했던 이들이다. 이 정도면 진급이 빠른 조종특기의 경우 대충 [[소령]] 말 ~ [[중령]] 초는 되어야 전역할 수 있다. 참고로 중령이면 비행대대장 보직을 맡는다. 그리고 이렇게 의무복무를 마친 뒤에 민항사에 지원했거나 공군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을 거친 케이스다. 그리고 군 내에서는 사관학교 기수를 대단히 중요하게 따지며 '''이는 전역 후 예비역 관련 행사 등에서도 습관처럼 적용된다.''' 즉, 전역하고도 사관학교 선배에게 같은 민간인으로서 대하지 않고 철저히 후배가 선배의 말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조종 승무원들의 군 출신 서열만 놓고 보자면 '''셋 중 [[항공기관사]]인 남석훈이 가장 선배'''였고, 연령대로나 입사 시기나 비행 시간도 나머지 둘보다 훨씬 많았지만 조종실에서의 직급만 놓고 보자면 항공기관사가 '''세 사람 중 가장 하위 서열'''에 있었던 것이었다. 남석훈 항공기관사 입장에서는 박용철 기장이 군에서나 항공사에서나 짬밥으로는 후배이긴 해도 사관학교 직속 후배가 아니다 보니 실질적으로 선후배간의 강력한 상하관계라고 보기도 어렵고 조종석에서의 직급은 오히려 자신보다 두 단계 가까이 높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사실상 방관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실제 블랙박스에 기록된 기장과 항공기관사 사이의 칵핏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남석훈 쪽에서 혼잣말로 편하게 말을 놓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해도 기장과는 대체로 상호 존칭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항공기관사는 조종석 내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기장에게 존중을 표하는 것이고, 기장은 항공기관사가 자신보다 하위 직급이긴 해도 입사 시기와 비행 경력이 많아서 짬밥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사실 기록된 대화 내용이나 뉘앙스를 분석해 보면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해 본 사람들은 익히 알 만한 [[중대장]]과 [[행정보급관]], 조금 높게 잡으면 [[대대장]]과 [[주임원사]]가 대화하는 미묘한 느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석훈 항공기관사의 이런 애매모호한 위치'''는 사고 당시 박용철 기장이 조종실 내 분위기를 강압적으로 몰고 가거나 나머지 승무원들에게 불평하는 부분이 사실상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김포-괌 간 왕복 비행시간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8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딱 채우는 바람에 초과근무 수당이 나오지 않는 것을 두고 박 기장이 신세한탄 비슷한 것을 하거나 야간 비행으로 피로를 호소하는 발언은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조종실의 분위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고, 801편이 한국 비행기임을 안 관제소가 한국어로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하자 재치있게 "수고하십시오." 라고 응답해 주는 등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여름철의 대표 피서지인 괌에 거의 도착하자 "여기가 괌이야. 괌 좋네." 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송경호 부기장이 박용철 기장의 행동에 적극 개입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계기'''로 분석될 수 있다. 셋 중에 나이도 제일 많고 같은 사관학교 15년 대선배인 항공기관사조차도 기장에게 저렇게 존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셋 중에 나이[* 남석훈 기관사 1940년 생, 박용철 기장 1951년 생, 송경호 부기장 1956년 생.]로나 군 짬밥으로나 가장 막내였고 항공사 경력도 가장 신참이었던 부기장으로서는 기장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더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이들 중 누군가가 조종실의 분위기를 딱히 나쁘게 몰아간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조종실에서 군 출신 구성원들로 성립된 짬밥 및 파벌 서열과 조종실 내에서의 직급 서열이 뒤섞이며 엉망이 되어 이들 간에 명확한 서열 기준이 없어지면서 빠른 의사 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조종 승무원들은 1분 1초가 아쉬운 긴급 상황에서 멘붕과 망설임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가 참사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을 마지막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었다. '''어찌보면 당시에 송경호 부기장이 박용철 기장에게 착륙 포기를 구두로만 수 차례 건의한 것은 그 당시 [[고구마|조종실 분위기]] 속에서 나름 최대한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그가 구두 건의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조종권을 스스로 인수했다면 당시 조종실 분위기를 감안해 볼 때 선배의 권한을 멋대로 가로챈 버릇 없는 후배로 낙인찍힐 것이 기정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부기장이 기장을 무시하고 갑자기 조종간을 잡아당겼다고 가정해 보자. 살았을 수는 있겠지만 조종실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을 것이다. 가뜩이나 서열관계가 꼬여 애매한 분위기였으니,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순간이 되었을 수 있다. 사고를 복기해 보면 쉬운 상황에서 기장이 명백히 잘못하고 있는 것을 부기장이 인식한 것이 아니라 저 공항 자체가 착각하기 좋게끔 짜여져 있었으므로 기장뿐만 아니라 부기장도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부기장도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착륙 포기하자고 건의를 했고 기장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5초'''였다. 충돌 7초 전에야 부기장이 착륙 포기하자고 말했고 충돌 3초 전 기관사도 착륙 포기한다고 말했고 충돌 2초 전 기장도 받아들였으니 딱히 기장이 권위주의적으로 찍어눌러서 부기장의 의견을 묵살했기보다는 셋다 멘붕과 패닉에 빠져 당황하다가 사고가 벌어진 것에 가깝다. 부기장이 마음 먹고 복행을 시도했어도 [[알리탈리아 404편 추락 사고|기장이 제지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결과론적으로 사고를 복기하면서 초단위로 분석하다 보니 저때 부기장이 조종간을 잡아당겼어야 한다고 하나 기장이 딱히 독단적으로 운행하고 있던 상황도 아니었던 만큼 부기장이 조종권을 빼앗기보다는 착륙 포기하자고 건의를 했던 것이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다. 만약 착륙 포기하자고 말을 하자마자 바로 기장도 OK해서 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기장이 받아들이는 데 5초가 걸릴 것이란 것은 당시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란 점, 그리고 또 그 5초가 생과 사를 가르는 시간이 되리란 것은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는 몰랐을 테니 아쉬울 따름이다. ==== 아웃라이어의 인용 ==== 이 사고의 조사 보고서와 대부분의 분석 결과에 따라 이 사고는 '''권위주의적 문화'''에 젖어든 조종 승무원의 사회적 처신을 위한 망설임 하나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인과관계는 결국 조종실 승무원들 간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정상적인 CRM(Crew Resource Management)을 방해하고 항공 안전을 위협하는 악폐습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는 내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상황에 대해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책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언급되어 있다. 맬컴 글래드웰은 이 사고의 근원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277854#home|말에서 찾았다]]. 부기장은 이상 징후를 알았지만 '''권위에 눌린 언어 습관''' 때문에 직설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기장에게 비상 사태를 알리지 못했다는 것. 부기장은 기상 상황이 나쁘다는 말을 "비가 더 오는 것 같죠"라고만 표현했으며 심지어 기관사도 "기상레이더를 보니 얼마든지 문제가 생길 만한 상황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상황을 "'''오늘 weather radar 덕 많이 본다'''"고 '힌트 주기'로 표현했다. 결국 지친 기장은 힌트를 감지하지 못했으며,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는 기관사의 말에 보인 반응은 고작 "예, 좋긴 좋아요"였다.[* 아웃라이어 한국어판에는 한국어 녹취록을 영어로 번역한 글을 한국어로 역번역했는지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 "그치, 정말 쓸모 있지"로 표현했다.] 해당 책은 '문화적 유산이 개인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의 폐해로 제시했다. 이 책에는 [[아비앙카 항공 52편 추락 사고]]가 이 사고와 연관지어 나온다. 다만 아웃라이어는 실제 기록과 다르게 작가의 의도를 섞어 일부 기록을 누락하거나 순서를 바꾸었다. === 피해를 키운 문제들 === 항공기 좌석의 잘못된 설계도 희생자들을 늘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항공기들에 쓰이는 좌석은 좌석 하단부에 길고 굵은 봉이 가로로 지나가는 구조인데, 추락하면서 이 봉에 다리가 부딪히면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뉴질랜드]] 승객인 배리 스몰은 곧 착륙할 것으로 생각해서 그동안 벗어뒀던 신발을 다시 신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가 우연히 [[충격방지자세]]가 만들어져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자세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돌하면서 그대로 다리가 부러졌고 결국 탈출하지 못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 추락했을 때에는 기체 안에서 여러 나라 언어로 들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다가 불길이 점점 커지면서 사그러졌다고 증언했다. 생존자 중 한 사람인 마츠다 리카(11세)는 체구가 작아서 무사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녀는 딸을 보낸 뒤 목숨을 잃었다.[* 참사 당시 한국 방송사들이 그녀에게 인터뷰를 했는데, 21세기에는 어머니를 잃은 아이에게 그 참상을 묻는 [[기레기]] 짓을 했다며 욕을 먹고 있다.] 당시 면세 주류의 적재 방식도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면세품을 기내 오버헤드빈에 보관했는데, 당시 801편의 승무원들은 난기류를 통과한 후 면세품을 오버헤드빈으로 옮겨 주었는데 그 중에는 최소 462리터나 되는 면세주들이 있었다. 배리 스몰은 이 면세주가 산소공급장치에 쓰이는 산소에 반응하여 화재를 크게 키워서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항공사 기내면세품으로 실리는 술은 끽해야 약 40% 함량의 [[발렌타인(위스키)|발렌타인]]이나 [[조니 워커]], [[시바스 리갈]] 등등이었을 것이다. 일단 걸레짝이 되어 구멍이 펑펑 뚫린 채로 당시의 엄청난 폭풍우를 맞고 있던 동체 내의 공기가 40% 도수 양주를 발화점 위로 가열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랬다고 해도 그쯤이면 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온도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사망이다. 운 나쁘게 양주가 기폭제가 되었다고 해도 순수 알코올이 아니라 '''물'''을 포함한 각종 불순물이 절반 이상 섞인 주류는 그 양이 많다고 해도[* 460병의 양주가 전부 다 깨져 그 내용물이 한데 모였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잠깐 타오르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튼 스몰의 주장으로 공론화되면서 뉴질랜드 민간항공국은 기내 면세주류 적재에 대한 위험성을 인정했고 [[델타항공]] 등 몇몇 항공사들이 이 사고 이후 아예 기내면세품 판매를 접었지만 공식적인 규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능성을 부정할수는 없지만 기내에 적재된 주류가 사고 시에 인명피해를 낼 만한 화재를 일으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불감증|현실적으로 생기지도 않을 일을 왜 걱정]]하겠나?'''' 라는 가정 하에 벌어진 대참사들[* 뉴질랜드 민간항공국이 위험성 자체를 인정한것도 사실이거니와 [[반차오댐 붕괴 사고]]: 2000년에 한 번 올 재앙적인 비가 온 경우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RBMK식 원자로는 '이렇게만 운용하지 않으면 절대 안 터진다'는 10여 가지 단계에 달하는 실수와 오판과 설계 결함이 기적적으로 한순간에 겹쳐짐 /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 부기장이 콕핏을 폐쇄하고 고의적으로 비행기를 추락시킴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정비 불량으로 인한 벌크헤드 파손으로 모든 유압계통을 상실하여 추락 등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ke801_photo2.jpg|width=100%]]}}} || || 추락 사고 6일째인 [[1997년]] [[8월 11일]] 아침 괌 현지 유가족들이 퍼시픽 스타 호텔[* 사고 이후에는 코로나로 폐업한 뒤 인도인이 인수했으나 리모델링을 하기에는 너무 낡았고 재건축을 하자니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풀린 것도 아니라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방치되고 있다. 그래도 2023년 기준으로 괌에 해병대 기지가 지어지면 수요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지 건축 인부들이 이동한다고 한다.] 2층 그랜드 볼 룸에서 전날 밤 설치된 영정을 보며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사고 당일 보도된 생존자는 29명이다. 원래 현장에서 구조된 인원은 31명이었으나 2명이 이송 도중 사망했기 때문. 이후 추가로 병원에서 중상자 3명이 사망하여 최종 생존자는 26명이다. 휴가철인 8월, 그것도 대표적 휴양지인 괌으로 가는 항공기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였기 때문에 '''가족 단위로 탑승한 경우가 많아서 일가족 전원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지금만큼 대중화, 보편화되지 않고 주로 상류층들이 이용했기 때문에 희생자 중에 유명인들이 꽤 많았다. 당시 신문기사에 공개된 희생자, 부상자 명단을 보면 강남, 서초와 같은 부촌 거주자거나 학생들의 경우 8학군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 이 비행기를 타지 않은 사위를 제외한 장인과 그 일가족 및 직계 비속 8명이 전원 사망하여 장인의 형제들과 사위가 1천 억 원대 유산의 상속권을 두고 3심까지 가는 소송을 벌인 끝에 사위가 승소한 재판이 있기도 했다. 법대생들이 법 공부하다가 ''''동시사망시 대습상속''''의 유명한 판례로서 접하게 되는데([[상속]] 항목의 대습상속 부분 참조) 상속 관련이지만 소유권 이전 등기 말소 건으로 분류되는 사건번호 97가합91172(1998년 4월 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판결), 98나21825(1999년 2월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판결), 99다13157(2001년 3월 9일 대법원 판결) 이 세 판결이 바로 그 판례에 해당한다. 여기서 장인이라는 사람은 당시 인천제일상호신용금고(현 에이스저축은행) 회장이었던 이성철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고로 회장 본인과 부인, 아들, 며느리, 손녀, 딸, 외손녀, 외손자까지 일가족 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이때 한양대 의대 교수였던 사위만 개인 사정으로 혼자 가족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는데 사고 후 회장이 남긴 1천 억대의 재산을 두고 이 사위와 회장의 형제 7명이 소송전을 벌였다. 소송의 쟁점이 된 논리가 위의 대습상속인데 간단히 말해 재산을 물려줄 사람(피상속인, 회장)과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상속인, 아들+딸)이 한꺼번에 사망했을 경우 해당 재산이 회장의 형제에게 가야 하는지, 아니면 사위에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민법에서는 이런 경우 상속을 개시하기 전에 상속인이 사망한다면 상속인의 배우자에게 가야 한다고 정해 놨으며 이게 대습상속이다. 그래서 당시 회장의 형제들은 상속을 개시하기 전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상속이 개시됨과 동시에 사망했다는 논리를 전개해 회장의 재산이 자신들에게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 대법원은 대습상속은 동시에 사망했을 때에도 적용해야 한다며 사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위는 그렇게 인천제일상호신용금고와 35곳의 건물과 토지 등을 상속받았고 부동산값이 오르면서 추정 재산은 2천 억대까지 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부동산은 처분하고 인천제일상호신용금고의 주식만 소유하고 있다가 2004년에 재산을 노린 괴한들의 습격을 받은 후 2005년에 인천 지역 유지로 알려진 원광인바이로텍의 김학헌 회장[* 몽베르CC와 에이스저축은행 등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지만 에이스저축은행이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검찰 수사를 받자 자살했다. 이후 에이스저축은행은 [[하나저축은행]]에 인수되었고 몽베르CC는 [[대유그룹]]으로 넘어갔다.]에게 주식을 매각했다. 이 사위는 처음 상속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재산을 자선병원 설립, 장학기금 설립 등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으나 매각 대금을 실제로 기부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리고 현재에도 한양대 의대 교수로 있다. * 대한항공 박완순 괌 지점장(1953년생)은 이 사고로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들 박수진 군[* 1985~1997. 이 비행기로 사망하기 전까지 다녔던 서울 서초초등학교 측은 당시 [[여름방학]] 중이었으나 사고 이후 박 군의 동창이었던 당시 6학년 학생들을 학교에 비상소집하여 추모식을 가졌다. 영구차가 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돌고 떠났다.]을 잃고 당시 대치중학교 2학년이었던 딸 박주희 양만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슬픔을 뒤로 한 채 밤새도록 사고 수습에 전념해야 했으며, 애써 침착함을 보이며 유족(박완순 자신도 유족이었음에도)에게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려 많은 사람들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984847_19482.html|안타깝게]]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28486|했다.]][* 여담으로 저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김재철(언론인)|김재철]]이다. 반면 [[KBS]] 취재 당시엔 소현정 기자가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3776556|맡았다]].] 참고로 박완순 지점장은 그 이후에도 대한항공 홍보팀장, 서비스아카데미 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대한항공에서 퇴사하고 인성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또 1983년 옛 [[소련]] 전투기 미사일에 격추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승무원이었던 남편을 잃은 한 [[재미교포]]는 이 사고로 어린 조카와 여동생도 잃어 [[대한항공]]과 원치 않은 악연을 이어가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070032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07&officeId=00032&pageNo=22&printNo=16181&publishType=00010|되었다.]] * [[성우]] [[장세준]] - [[정경애]][* 정경애는 이 날이 바로 자신의 '''생일'''이었으며 1997 한국방송대상 여자성우상 후보로 오른 상태였다.] 부부[* 각각 1982년 [[KBS 성우극회|KBS]] 17기, 1977년 [[DBS 성우극회|DBS]] 8기(이후 [[언론통폐합]]으로 KBS 15기로 편입)로 데뷔했다.]가 두 아들인 장성민(장남), 장재민(차남)과 함께 전원 사망했다. 특히 두 사람은 애니메이션과 외화를 가리지 않고 여러 명작에 출연했던 터라 [[성우 덕후|성우 팬]]을 비롯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데다 아내인 [[정경애]]가 [[마법기사 레이어스]]의 주역인 [[호우오우지 후|윈디]] [[http://animate.kr/info/77271|담당으로 내정된 와중에 방송위원회의 방송 불가 판정으로 인해]] 녹음 스케쥴이 없던 상황에서 여행을 떠났다가 일가족이 사망했기에 큰 이슈가 되었다. 심지어 SBS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법기사 레이어스의 방영 시작일이 1997년 8월 6일, '''사고 발생 당일이었다.''' 만약 방송심의를 통과해서 예정대로 방영되었다면 당연히 사고 당일 전후로 녹음 스케쥴이 있었을 테고 이에 따라 정경애가 최소한 사고 당일에 가족 여행을 안 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http://animate.kr/talk/103192|당시의 성우 팬 및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은 방송위원회에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물론 방송심의와 항공기 추락 사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링크에서 보다시피 당시의 방송 심의 자체가 밑도 끝도 없는 트집에 가까웠고 그렇게 방영 일정이 지연된 결과가 [[장세준]] - [[정경애]] 부부의 사망이었던 터라 대중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 이러한 추모 분위기 속에 [[정경애]]는 사후 한국방송대상 여자성우상을 추서받았으며, 이후 방송심의를 통과한 마법기사 레이어스는 윈디 역의 성우를 [[함수정]]으로 교체하여 당초의 예정 날짜로부터 3개월 가까이 지난 10월 27일부터 방영되었다. 또한 이 사연은 2년 뒤인 1999년 [[MBC]]에서 방영한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설령 장세준 - 정경애 부부가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도 그 자리에 다른 승객이 타서 사망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으나 이 항공편은 매진이 아니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385석이 정원이었으며, [[보잉 747-300|747-3B5]]의 크기를 생각해봐도 사고 당시 탑승객 수인 237명은 만석과는 거리가 멀다. 사고기인 HL7468의 자매기인 HL7469의 경우 455석[* 2003년 6월 기준, '2004년 건설교통부 교통통계 및 문헌조사' 자료 참조.]이다. 이 기종은 당시 성수기를 맞아 290여석 정원의 [[A300]]으로는 부족해 전월부터 대체투입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 [[서울대학교병원]] [[레지던트]] 2명도 희생자 목록에 있었는데 이들은 바쁜 와중에 겨우 짬을 내 휴가를 가던 중 이 사고로 사망하였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었고 이들은 평소에도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하며 치료방사선과(현재는 [[방사선종양학과]]로 이름이 바뀜), [[흉부외과]]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4186090#|수련 중이었다고 한다.]]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이 사고 이후로 [[서울대학교병원]] 소속 직원(의사, 레지던트, 간호사 등)이 해외여행을 가려고 하면 주변 직원이 이를 말리는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사고로 유능한 레지던트들을 잃은 동료 직원들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언론계도 유능한 인재를 하나 잃었는데 1973년 [[KBS]] 공채 1기 기자로 입사한 24년차 베테랑인 홍성현 KBS 보도국장[* [[1946년]]생으로, 1994년경에 <뉴스초점> 진행을 맡았다.]이 일가족 5명과 휴가를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홍 국장의 아내와 차녀를 제외한 일가족 3명(본인 포함)이 변을 당했다.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한국방송기자클럽은 1998년부터 '홍성현 언론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광주)|동구]]를 지역 기반으로 하던 국회의원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신기하]] 의원(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도 이 사고로 별세했다. 신기하 의원도 위의 성우 장세준, 정경애 부부처럼 부인 김정숙 여사 및 그의 지역구였던 광주 동구의 국민회의 지구당 소속 사람들과 함께 괌 여행을 떠났던 터였다. "만약 신 의원이 이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이 [[노무현]]이 아니라 신기하였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최측근이었다.[* 한편 해당 지역구는 [[제16대 대통령 선거|그 해 대선]]과 같이 열린 [[1997년 재보궐선거|재보궐선거]]에서 [[이영일(정치인)|이영일]] 전 의원이 [[무투표 당선]]되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고 당시 93세였던 그의 어머니 이묘현씨가 다른 식구들이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았음에도 방 안에 있던 TV로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고 식음을 전폐하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2600209139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26&officeId=00020&pageNo=39&printNo=23661&publishType=00010|결국 사고 49일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 여담이지만 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사고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특히 [[괌]] 현지에서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현지 장례 풍습에 따라 시신을 [[엠버밍|방부 처리]]하고 온전한 형태로 메이크업까지 마치는 조건 하에서의 사망 인정 및 시신 인도 절차를 고수하는 괌 주정부 측 정책 탓에 시신 인도가 상당히 늦어졌다. 이에 대해 유족들이 항의하여 방부 처리 및 염습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추가로 투입되었으나 사고 당시 화재 등으로 인해 시신들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기에 시신 처리 과정이 간단치 않아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과중한 업무로 인해 방부 처리 자원봉사를 하던 현지인이 과로사하는 일도 있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한국에서도 대형사고 때마다 현장에 출동해 구조 작업을 벌였던 '점박이' 탤런트 [[정동남]](당시 47세)이 있었다. 그는 친한 선배의 아들을 잃었다며 있던 스케줄을 마다하고 사고 발생 다음날 새벽 현지에 도착해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등 자원봉사 활동을 벌여 오다가 NTSB(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 측의 발굴 작업 지연에 따른 유가족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유가족들이 직접 시신을 찾겠다고 나서자 자진해서 11일부터 현장에서 시신 발굴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발굴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을 들은 삼성그룹 3119 구조대원 2명도 13일 오후 유압 절단기 등을 갖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는데, 3119 구조대 자문위원이기도 한 정동남의 요청으로 오게 된 한경우(당시 30세)와 최진국(당시 30세)등 2명은 유족들에게 "시신발굴 작업이 늦어져 유족들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며 "여건만 허락되면 더 많은 동료들을 불러오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정동남은 "한경우 등이 가져온 유압 절단기와 전개기(스프레더) 등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사용됐던 것으로 시신 발굴에 꼭 필요한 장비"라며 "[[미군]]들이 발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더라도 강행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187476|한다.]] 다행히 정동남은 구조경력을 어필해 미국 정부로부터 발굴 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30대 여성이 새 삶을 살고 싶은 생각에 남의 신상을 도용했다가 구속되는 영화 [[화차(영화)|화차]]와 같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2&sid2=249&oid=032&aid=0002560200|사건도 있었다.]] 유가족 대표 위원장이었던 사람은 대한항공으로부터 돈을 받고 구속되었는데 훗날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 이후 [[http://media.daum.net/society/all/newsview?newsid=20150729095008315&RIGHT_COMM=R2|조현아 부사장의 편의를 봐주다가 또 구속되었다.]] 전술한 언론 보도에서 생존자는 29명으로 집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 자료를 뒤져보면 생존자 집계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어 32명→30명→29명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상자 중에서 화상 등으로 상태가 위중했던 5명은 미국 본토 [[텍사스]] [[샌안토니오]] 브룩 [[미 육군]][[군병원|병원]](Brooke Army Medical Center)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이 중 2명이 9월을 넘기지 못하고 치료를 받던 도중 사망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생존자는 26명이 되었다. 그 뒤 같은 병원에서 한 달을 넘게 버티던 여성 생존자 한 명이 10월 10일에 사망하여 실질적인 생존자는 '''25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다만 사고 발생 이후 30일이 지나서 사망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사망자로 기록되지 않는다. == 사고 이후 == 사건은 [[한국]] 시간으로 밤 시간대에 발생하였다. 한국 시각 새벽에 최초로 [[미국]] [[ABC(미국)|ABC]][* [[AFN]]에서 뉴스를 공급한다.], [[CNN]] 등지에서 다루어졌고 이 방송을 본 [[PC통신]] 유저들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 소식을 전파했다. 당시는 [[YTN]], [[MBN]] 빼고 TV가 24시간 방송하지 않았고 인터넷도 전화비 때문에 야간정액제[* 동년 4월 1일 시행.]와 코넷 없이는 조심하면서 써야 하던 시대였다. PC통신 유저들에 의해 한국에 최초로 알려져서 아침 방송이 시작할 때는 어느 정도 사건이 전파되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언론 등에서도 PC통신의 위력에 대해 많이 다루어졌다. 사고 원인에 대해 [[괌]] 주정부는 조종사 과실로 단정지으며 자신들의 시설 미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대한항공]]은 사고 며칠 후 서울 - 괌 노선의 운항을 전면 중단하였다. 관광산업에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던 괌 측에서는 주지사가 직접 한국에 찾아와 대한항공과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으나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종사 과실이라는 기존의 의견을 고수했다. 이로 인해 [[중앙일보]] 시사만화에선 코쟁이 미국인들이 이 사고는 죄다 [[대한민국]] 탓이라고 실실거리는 걸로 깐 바 있으며 당시 한국 방송사들도 괌 측 잘못이 크다며 자칫하면 다른 여객기도 위험하다고 보도했는데 [[싱가포르]] 및 다른 여객기들도 괌 공항에 착륙할 때 아슬아슬한 현장이라고 보도하였다. 이를 두고 괌 공항 측은 불쾌한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별다른 반론을 하지 못했다. 이 당시 보도에서 유가족의 오열을 그대로 방송에 보여준 한국 언론사들과 달리 미국 쪽 언론사들은 유가족들의 반응과 관련한 영상은 거의 내보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국에서는 "미국측이 사고를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미국 언론업계는 원래 이런 대형 사고에서 '지나친 감정 표현이 담긴 자극적인 보도'는 제한하는 편이다. 시청자나 구독자들이 유가족의 감정에 휩쓸려 사건의 진상을 냉정하게 따지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통곡하며 슬퍼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며 피해자들이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을 '감정을 가진 인간'이 아닌 '기삿거리'나 '찍기 좋은 그림' 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실례다.'''[* 한국의 ''''일부라는 이름의 대다수 몰지각한 [[기레기|언론인들]]''''은 이런 행태를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까지 고치지 못했다. 실제로 해당 참사 유가족이 '그들에게 저희는 '''피를 흘리는 원숭이'''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피를 철철 흘리며 아파하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원숭이. 그들이 저희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그냥 구경거리 같았다.''' 상처투성이로 아무 준비가 안 된 채, 벌거벗겨진 채, 기자들에게 이용 당했다.'고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097853#cb|표현]]한 적도 있다. [[기레기|이런 추악한 행태]]는 한국 대중들의 '''언론인 혐오 정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비록 끔찍한 사고였지만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사고의 큰 충격이 안전 문제를 곱씹어볼 기회가 된 것인지 이 사고 이후로 2019년 10월 기준으로 대한항공에서 여객기 관련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화물기 사고까지 고려한다 해도 1999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6316편 추락 사고|6316편]]([[MD-11|MD-11F]])과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8509편]]([[보잉 747-200|747-2B5F]]) 화물기 추락사고를 마지막으로 2000년대부터는 [[대한항공]]에서는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후 대한항공은 비행기 안전을 관리하는 부서에 외국인 임원을 적극 채용한다고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32201032124182002|한다.]] [[아시아나항공]]도 2013년 샌프란시스코 추락사고 이후 안전부서에 [[전일본공수]] 출신의 [[일본인]] 임원을 채용했다. 원래 두 회사의 교류가 잦기는 했지만. [[파일:attachment/199708120003.jpg]] 사고 4일 후인 8월 10일, [[이해구]], [[조진형]], [[박세환(군인)|박세환]] 의원을 비롯한 당시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괌 현지에 도착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1100289104005&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7-08-11&officeId=00028&pageNo=4&printNo=2954&publishType=00010|사고기 잔해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 짓]]'''을 저지른 것이 [[한겨레]] 기자를 통해 알려지면서 엄청나게 욕을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19970813.00000001.000110&newsType=old|먹었다.]][* 더군다나 당시 '''제1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신기하]] 의원이 이 사고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명백한 [[고인드립]]이다.] 참다못한 [[조선일보]]마저 이건 도저히 옹호해 줄 수 없었는지 함께 비판할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1200239101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7-08-12&officeId=00023&pageNo=1&printNo=23794&publishType=00010|정도였다.]] 사고기인 HL7468은 [[보잉]]에서 제작한 [[보잉 747-300|747-3B5]] 기종으로 [[대한항공]]에 1984년 12월 12일에 인도된 사고 당시 기령 13년의 나이를 먹기 시작한 기체였으며 대한항공의 현행 하늘색 도색을 처음으로 적용 받은 747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대한항공이 현행 도색을 사용하게 된 계기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공교롭게도 007편 역시 747이었으며 동시에 801편 사고와 함께 대한항공이 일으킨 사고 중 사망자가 200명대인 유이한 사고이다.] 당시 대한항공에서 최신형 슈퍼점보 보잉 747-300(SUD) 도입 이런 식으로 사고기를 마케팅에 자주 썼으며 당시 광고들을 통해 사고기의 생전 비행 모습을 볼 수 있다.[* 훗날 도입된 직계 후속 기종인 [[보잉 747-400]]도 똑같이 슈퍼점보라는 이름으로 마케팅에 사용되었으며 이렇게 최신 항공기를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전통은 2017년 [[보잉 787]]의 도입까지 이어졌다.] 사고 원인이 불명확했기에 조종사 과실 외에도 기체 결함, 정비 불량 등의 원인 추정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사고기가 기령이 오래된 구형 기종임을 암묵적으로 디스하는[* 사실 상술했듯이 13년이라는 기령은 슬슬 나이를 먹기 시작한 정도로 아직 장거리에 주력으로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사고기 역시 후계 기종인 747-400가 도입되었음에도 함께 LA와 같은 대한항공의 주력 장거리 노선에 꾸준히 투입되었다.[[https://media.gettyimages.com/photos/boeing-747-de-la-compagnie-korean-airline-sur-le-tarmac-de-laroport-picture-id1199690821?s=2048x2048|사고 2년 전인 1995년, 후계 기종인 747-4B5의 1호기인 HL7477과 함께 LA에 주기된 사고기의 사진. 꼬리날개에 HL7468이라는 번호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시아나는 새 비행기로 모십니다''''라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광고는 이미 1997년 상반기부터 했는데 동년 5월 [[프랑크푸르트]] 취항을 알리는 자막이 나온 버전도 있다.][* 모델은 [[박주미]]와 [[최지나]]가 맡았다.] 실제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신생 항공사였기에 당시에는 최신형 이었던 [[보잉 737 클래식|B737 클래식]], [[B767|B767-300ER]], [[B747-400]]으로 기단을 꾸려나간 반면 대한항공은 구형 [[보잉 747-200]], [[A300]] 등의 오래된 기종들의 비중이 꽤 되었기 때문에 평균 기령에 있어서 대한항공보다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기에 아시아나의 한국 항공시장 점유율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비행기 마케팅'에 굴욕적인 패배감을 맛본 대한항공은 2000년대부터 최신예 기종들을 적극 도입[* 심지어 기령 6년차의 MD82나 포커100들 조차 풀 글래스콕핏이 장착된 B737NG가 들어오며 죄다 퇴역시켰다.]하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보다 평균기령이 낮은 실정이며 2000년대부턴 아시아나항공에서 새 비행기 마케팅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HL7468의 기종인 [[보잉 747-300|B747-3B5]]는 사고기 포함 총 3대(HL7468, HL7469, HL7470)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중 후기 도입분이자 콤비기였던 HL7470(1988년 도입)은 2001년에 화물기로 개조되고 형제기인 HL7469는 화물기 개조 없이 2005년까지 운항하다가 [[오리엔트 타이 항공]]으로 매각되어 넘버가 HS-UTL로 바뀌고 '''2016년 9월'''에서야 퇴역했다. 무려 '''31년'''을 굴린 것.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9/Decommissioned_Orient_Thai_Boeing_747_in_Phitsanulok.jpg|해당 항공기 사진]]. [[대한항공]]에서는 사고 이후 [[괌]] 노선을 운항하지 않다가 2001년에 복항했다. 그러나 801편은 [[영구결번]]되어 복항 후에는 한동안 805편[* 여담으로 1997년 당시 KE805편은 대한항공 김포-괌 오전 출발 항공편이었다.]으로 운항하다가 2008년에 대양주 편명을 100번대로 갈아엎으면서[* 이렇게 된 데는 이 사고보다는 [[중국]] 노선의 확장(중국 노선이 2000년대부터 800번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이 가장 큰 이유였다.] 2022년 하반기까지 111편으로 운항하였고 현재는 423편으로 운항하고 있다.[* KE111편으로 바뀌면서 출발 시간도 바뀌었다. KE805편 당시에는 인천에서 20시 10분에 출발했으나 KE111편 이후 현재는 19시 30분에 출발한다.] 헌데 2015년 하계까지 운항 기종은 사고 기종의 후속 모델인 '''[[보잉 747-400|B747-4B5]]'''이었다.[* 2007년에는 보잉 777-200ER이였다.] 2015년 동계부터는 [[보잉 747-400|B747-4B5]]의 노후화로 인해 [[A330|A330-323]]을 2회 운항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저가 항공사들이 오전에 출발하는 데 반해 대한항공은 이때와 같은 저녁 출발편만 있어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증편된 항공편은 오전에 출발한다.] 대한항공의 자회사 [[진에어]] 또한 괌 노선을 운영 중이다. 이 사고가 있은지 한 달도 안 되어 [[베트남 항공 815편 추락 사고]]가 또 발생해서 21명의 한국인 승객들이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 [[항공 사고 수사대]] 방영 ===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하는 [[항공 사고 수사대]]의 시즌 4에서도 다루어졌다. 재연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비상 착륙 공로패에 적힌 기장의 이름이 '''박영철'''로 잘못 표기되는 등의 오류가 있었고 그래픽 재현에 사용된 항공기 모델도 [[보잉 747-400]] 기종을 사용하여 윙렛이 보이는 등 고증이 좋지 않았다. 기종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747-400 기종부터 아날로그 패널에서 디지털 패널(Glass Cockpit)을 적용해 [[항공기관사]]가 탑승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기는 [[보잉 747-300]] 기종으로 실제 사고 당시 [[항공기관사]]가 탑승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배우 캐스팅의 문제였는지 몰라도 실제 기장이었던 박용철과 외모가 전혀 딴판인 배우를 섭외하여 말이 많았다. 해당 배우가 [[중국]]계 배우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서 주연인 아빠 김사장 역할로 널리 알려진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폴 선형 리]](한국명: 이선형)였다. 그런데 박용철 기장의 사진을 보면 일반적인 긴 머리의 헤어스타일에 수염을 기르지 않았는데 폴 선형 리는 체구도 박 기장보다 크고 대머리에 콧수염까지 있어 완전 다른 캐릭터로 묘사됐다. 물론 NGC도 대충 아시아계 배우들로 넣지 않고 나름 신경 써서 한국계 배우를 캐스팅한 것인데 박용철 기장의 외모 조사를 못 했거나 이를 그냥 지나친 것일 뿐이다. 이 점을 지적받았는지 추후 시즌에 다뤄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에서의 기장 재연 배우[* Denis Van Akiyama. 1952년 캐나다 [[토론토]] 태생의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여러 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비디오 게임의 성우도 다수 담당했다. 2018년 희귀암으로 별세.]는 실제 기장이었던 천병인 기장과 이질적이지 않았다. 참고로 이 재연 배우는 항공사고 수사대의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편과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에서도 각각 교관 조종사와 기장으로 출연했다. 반면 부조종사인 송경호와 항공기관사 남석훈을 맡은 배우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이들의 경우 실제 인물과 외모상 크게 차이점이 없었고, 특히 부조종사를 맡은 Silver Kim이라는 배우는 ''''수고하십시오''''라는 짧은 대사 속에서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네이티브 수준의 한국어 발음을 보여준 덕분에 한국 시청자들에게 한국계 배우임을 강제로 인증당하기도 했다. 기장의 소지품 중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있었는데 기장이 이 약물을 복용한 탓에 상황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의혹도 다루어졌다. 실제로 벤조디아제핀은 음주와 함께 운전 등 기계 조작시 사고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부검 결과 기장은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 관련 문서 == === 유사 사고 === * [[이스턴 항공 401편 추락사고]]: 1972년 사고로, 조종사들이 추락 직전까지 특정 기기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비행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이 사고와 비슷하다는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한 의원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99920#home|의견]]이 나왔다.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목포공항에 무리하게 착륙하려다가 부지개산에 추락했다. *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1989년 733편 사고와 비슷하다. *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 1999년(화물기) 기장의 ADI가 고장났음에도 불구하고 부기장과 항공기관사의 조언을 묵살해 발생했다. * [[에어 인디아 855편 추락 사고]]: 1978년. 8509편 사고와 동일하다. * [[테네리페 참사]]: 1977년에 일어난 항공사상 최악의 인명피해(583명 사망)이며, 상부의 징계와 불이익에 민감해진 기장이 권위주의로 부기장과 관제탑을 묵살하고 이륙을 강행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 [[버겐에어 301편 추락 사고]]: 1996년 비행기가 실속하고 있음에도 부기장과 교대조종사가 기장이 조종간을 잡기만을 기다려 일어났다. * [[대한항공 2115편 활주로 이탈 사고]]: 같은 괌에서 터졌으며 이쪽은 대참사는 면했다. * [[터키항공 6491편 추락 사고]]: 똑같이 잘못된 글라이드 슬로프 신호를 포착하고 최저고도를 어기며 하강하다가 민가에 추락했다. *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 비슷하게 이 사고도 억지로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대한항공의 3년 연속 747 폐기처분 사고)] [include(틀:대한민국의 대형 참사)] [[분류:대한항공/사건 사고]][[분류:1997년 항공사고]][[분류:클린턴 행정부/항공사고]][[분류:재외한국인 사건사고]][[분류:악천후로 인한 항공사고]][[분류:조종사 과실로 인한 항공사고]][[분류:보잉 747/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