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덕수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 ||<-3> {{{#683235 {{{+1 '''덕수궁 건극문'''}}}[br]{{{-1 德壽宮 建極門}}}}}}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덕수궁, 너비=100%, 높이=100%)]}}} || ||<-2> {{{#683235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세종대로]] 99 ([[중구(서울특별시)/행정#s-4|정동]] 5-1) || ||<-2> {{{#683235 '''건축시기'''}}} || 창건시기 미상 / [[1954년]] 이전 {{{-1 (철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건극문.png|width=100%]]}}} || || {{{#683235 '''건극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건극문2.png|width=100%]]}}} || || {{{#683235 '''건극문과 중화문, 중화전. 맨 아래 담장에 보이는 문이 건극문이다.[*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View.do?type=D&arcvGroupNo=2828&arcvMetaSeq=28074&arcvNo=78556|사진 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 || [목차] [clearfix] == 개요 == [[덕수궁]]의 궁문으로 남쪽 담장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 역사 == 건극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관련 내용이 아예 없다. 원래 덕수궁 남쪽 담장에는 정문 [[덕수궁 인화문|인화문]]이 있었는데 1901년([[광무]] 5년) ~ 1902년(광무 6년)에 [[궁]] 영역을 남쪽으로 넓히면서 인화문과 기존 담장을 헐고 새로 정비했다. 확실하진 않으나 아마 그 이후에 지은 듯하다. '인화문의 이름을 건극문으로 바꿨다', 또는 '인화문을 없애고 그 자리에 건극문을 세웠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덕수궁 인화문]] 문서 참조. [[일제강점기]]까지는 남아 있었는데 어느 샌가 헐렸다. 철거 시기도 알려진 게 없다. 다만, 1954년에 동국문화사에서 발행한 이철원이 지은 책 《왕궁사》에 실린 〈덕수궁지도〉에는 안보이는 것을 보아 그 이전에 없앤 듯 하다. == 구조 == * 정면 1칸, 측면 1칸이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용마루에 [[용두]]를 올렸다. [[처마]]는 홑처마, [[공포(동음이의어)|공포]]는 초익공이었으며 [[기둥]]은 원형이었고, [[주춧돌]]은 사각이었다. 중앙 열에 문짝을 달았으며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 여담 == * 1926년 3월에 한 행인이 건극문 밖에서 [[시체#s-4|변사체]]를 발견하고 서대문경찰서[* 당시 [[덕수궁]]이 있는 [[중구(서울특별시)/행정#s-4|정동]]은 [[서대문]] 쪽 관할이었다. 구제 실시 후에도 [[서대문구]] 소속이었다가 1975년에 [[중구(서울)|중구]]로 편입했다.]에 신고했다. 처음에는 자살로 추정했으나[[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6032400239202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6-03-24&officeId=00023&pageNo=2&printNo=1981&publishType=00020|#]], 조사한 결과 살해당한 것이었다. 피해자는 [[중국인]] [[호떡]] 장수 부보경이었고 범인은 [[땅콩]][* 당시에는 '낙화생(落花生)'이라 했다.] 행상을 하던 중국인 류보산이란 사람이었다. 류보산은 자신의 딸을 시켜 일방적으로 매음하던 중, 마침 부보경이 여성 한 명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자기 집으로 부보경을 데려갔는데, 돈이 많아 보여 술에다 [[아세트산|초산]](醋酸)을 섞어 먹인 후 부보경의 몸을 뒤져 돈을 갈취했다. 그리고 부보경이 빨리 죽지 않자 [[곤봉]]으로 때려 죽였고 그 시신을 건극문 앞에 내다 버린 것. 이후 류보산은 중국인 노동자로 변장한 후 [[전라남도]] [[영광군|영광]]에 숨어있다가 근 한 달 만에 잡혔고 서대문경찰서에서 인수해 갔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604170023910202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6-04-17&officeId=00023&pageNo=2&printNo=2006&publishType=00010|#]]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덕수궁 포덕문, version=6)] [[분류:덕수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