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F0B10 0%, #FFFFFF 20%, #FFFFFF 80%, #DF0B10)" {{{#002664 '''델 커리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include(틀:NBA 역대 식스맨상)] ---- [include(틀:샬럿 호네츠 기록 보유자)]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heavyeditorial.files.wordpress.com/dellcurry.jpg|width=100%]]}}} || ||<-2> {{{+1 '''워델 스테픈 "델" 커리 시니어''' }}} [br] '''(Wardell Stephen "Dell" Curry Sr.)''' || ||<|2> '''출생''' ||[[1964년]] [[6월 25일]] ([age(1964-06-25)]세)|| ||[[버지니아주|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출신학교'''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버지니아 공과대학교]]|| || '''가족''' ||장남 [[스테판 커리]], 차남 [[세스 커리]][br]사돈 [[닥 리버스]]|| || '''신장''' ||193cm (6' 4")|| || '''체중''' ||86kg (190 lbs)|| || '''포지션''' ||[[슈팅 가드]]|| || '''드래프트''' ||'''1986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5순위[br][[유타 재즈]] 지명'''|| || '''소속팀''' ||[[유타 재즈]] (1986~1987)[br][[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987~1988)[br]'''[[샬럿 호네츠]] (1988~1998)'''[br][[밀워키 벅스]] (1999)[br][[토론토 랩터스]] (1999~2002)|| || '''등번호''' ||30번 - 유타 / 클리블랜드 / 샬럿 / 밀워키 / 토론토|| || '''관련 링크'''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dc__for3, 크기=25)] | [[https://www.instagram.com/wardell5/|[[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5]]]]||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농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슈팅 가드]]였으며 [[스테판 커리]], [[세스 커리]] 형제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현재는 [[Bally Sports|밸리 스포츠]] 지역 스포츠 방송국에서 [[샬럿 호네츠]]의 중계를 맡고 있다. == NBA 시절 == 1982년에 버지니아 공과대학교로 진학하여 찰스 모이어(1930~2019) 감독[* 그는 커리 외에 페리 영, 빔보 콜스도 발굴/육성한 바 있다.]의 지도 하에 1983-84 시즌엔 NIT에 진출하여 농구부를 3위까지 가게 했고, 1984-85 및 1985-86 시즌에 두 차례 NCAA 전국대회 진출에 기여했다. 통산 2,389득점, 295스틸을 기록했으며 올-메트로 컨퍼런스 퍼스트 팀 3회(1984~1986), 올-아메리칸 세컨드 팀 및 메트로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상(1986) 등을 각각 받았다. 야구부에선 척 하트만 감독[* 프랭클린 스텁스, [[조지 카날리]] 등의 스승이기도 하다.]의 지도 하에 투수로서도 6승 1패, 방어률 3.81의 성적을 남겼다. 1985년에는 MLB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14라운드 359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당시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을 보면 [[배리 라킨]](1라운드 4순위), [[배리 본즈]](1라운드 6순위), [[라파엘 팔메이로]](1라운드 22순위), [[랜디 존슨]](2라운드 36순위), [[데이비드 저스티스]](4라운드 94순위), [[채드 크루터]](5라운드 109순위), [[디온 샌더스]](6라운드 149순위), [[알 마틴]](9라운드 198순위), [[브래디 앤더슨]](10라운드 257순위), [[보 잭슨]](20라운드 511순위), [[존 스몰츠]](22라운드 574순위), [[짐 애보트]](36라운드 826순위) 등이 있다.] 농구의 길을 선택했다. 1986 드래프트 1라운드 15순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되어 1시즌간 뛰었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도 1시즌간 뛴 그는, 1988-89 시즌부터 [[샬럿 호네츠]]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다. 동기 입단선수에는 [[먹시 보그스]], 리키 그린 등이 있었다. 샬럿에서만 10시즌을 뛰었고 그 후 [[밀워키 벅스]], [[토론토 랩터스]]에서 뛴 뒤 은퇴했다. [[샬럿 호네츠]]의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한명으로 오랫동안 샬럿의 통산 득점(9,839점)과 3점 슛(929개)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록들은 모두 이후 샬럿의 프랜차이즈 스타 [[켐바 워커]]가 경신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16시즌 동안 커리어 통산 11.7득점(45.7%), 2.4리바운드, 1.8어시스트, 0.9스틸을 기록했고, 통산 3점 슛 성공률은 40.2%(게임당 1.1개 성공)이다. 커리어 하이인 1993-94 시즌에는 16.3득점(45.5%), 3.2리바운드, 2.7어시스트, 1.3스틸, 3점 슛 성공률 45.5%(게임당 1.9개)를 기록했다.[* 아들 [[스테판 커리]]가 평균 10개 가까이 던지고 [[클레이 탐슨]], [[데미안 릴라드]], [[제임스 하든]], [[켐바 워커]], [[카일 라우리]]도 최소 7개 이상의 3점 슛을 던지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평균 4개만 시도해도 상당한 시도였다. 역대 3점 슛 성공 2위이자 1987 드래프트 지명선수인 그 유명한 [[레지 밀러]]의 커리어 평균 3점 슛 시도가 5개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마저도 200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3점 슛의 가치가 증가하던 시기에 많이 늘어난 점을 볼 때 실질적 전성기 시절 밀러도 평균 경기당 4개밖에 시도하지 않았다. 따라서 출전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커리의 1.1개 3점 슛 성공은 절대 과소평가할 성공 개수가 아니다.] 1993-94 시즌에 NBA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 시절에는 3점 슛 스페셜 리스트로 유명했던 선수였다. 준수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좋았던 선수는 아니라 주전보다는 [[식스 맨]]으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당시 주전 스몰 포워드였던 쟈니 뉴먼보다 출장시간이 더 길었던, 식스 맨이었지만 사실상 주전이나 마찬가지였던 선수였다.[* 주전이라고 해도 5명 전부 경기당 30분 이상 소화하는 팀은 없다. [[시카고 불스]] 전성기 시절에는 오직 조던, 피펜만이 37분 이상 뛰었고 로드맨은 30분대 초반 출전시간을 기록했으며 페이스가 더 빨라진 현대 흐름에서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제외한 대다수의 팀 주전은 3명 정도만이 핵심 선수로서 경기당 35분을 소화한다.] 후보로 나선 경기에서 통산 11,147점을 기록해 오랫동안 역대 NBA 벤치 출장 경기 통산 득점 1위에 올라 있었고, 이 기록은 2019년 [[루 윌리엄스]]에 의해 경신된다. 1990년대 초중반 [[샬럿 호네츠]]는 [[알론조 모닝]], [[래리 존슨]], [[먹시 보그스]] 등 당시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아 NBA를 대표하는 인기팀 중 하나였고 따라서 인기팀의 주력 선수였던 델 커리도 1990년대 당시 한국 NBA 팬들에게도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졌던 선수였다. 샬럿에서 전성기를 마치고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한 이후 3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이 때의 인연 때문인지 2018-19 시즌 토론토의 최초의 파이널 경기에서 초청받아 팬들에게 인사했다.[* 모자는 [[스테판 커리|아들]]의 팀 골든스테이트 모자를 쓰고 나왔다.] == 은퇴 이후 == ||[[파일:external/uproxx.files.wordpress.com/steph-curry-dell-curry.jpg|width=100%]]|| * 2009년부터 현재까지 [[샬럿 호네츠]]의 중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들들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아내 소냐 커리와 함께 직관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극성스러운 아버지 [[라바 볼]]과 비교되면서 칭송받고 있다. 2019년 플레이오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스테판의 골든스테이트와 세스가 속한 포틀랜드가 만나면서 형제간의 대결까지 성사되는 등 두 아들을 훌륭한 NBA 선수로 잘 키운 델 커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2019년 9월 차남인 [[세스 커리]]가 [[닥 리버스]] 감독의 딸인 캘리 리버스와 결혼해 닥 리버스와 사돈이 되었다. * 2020년에는 아내 소냐와 함께 팟캐스트 [[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raising-fame-sports-edition/id1496175941|]]을 진행했으나, 2021년 6월 14일 아내가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혼 소송의 원인은 델 커리의 불륜이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델 커리는 반박하며 오히려 소냐 커리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두 사람은 이미 2020년 3월부터 서로 합의에 의해 별거 중이었다고. * 2022년 6월 10일 [[스테판 커리]]가 출전한 파이널 4차전에 새 애인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전 부인 소냐 커리도 해당 경기에 왔는데 그도 새 애인을 동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애인이 전 부부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스와핑]] 의혹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경기 커리는 3점 슛 성공률 0/9를 기록했다.~~ * 2022년 6월 16일 파이널 6차전도 관람했으며 이번에는 혼자 온 듯 하다. 아들의 우승이 거의 확정되자 눈물짓는 아들을 격려해줬으며 시상식이 끝나고 아들을 축하해줬다. 또한 전 부인 소냐 커리, 아들 스테판 커리와 같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파일:2022 NBA 파이널 커리 가족 사진.jpg|width=100%]]|| == 수상 내역 == || '''수상 내역''' || ||[[파일:NBA 로고.svg|width=auto&height=20]] '''NBA 올해의 식스맨 상 (1994)'''|| [각주] [[분류:미국의 농구 선수]][[분류:해리슨버그 출신 인물]][[분류: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출신]][[분류:1964년 출생]][[분류:1986년 데뷔]][[분류:2002년 은퇴]][[분류:슈팅 가드]][[분류:아프리카계 미국인]][[분류:유타 재즈/은퇴, 이적]][[분류: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은퇴, 이적]][[분류:샬럿 호네츠/은퇴, 이적]][[분류:밀워키 벅스/은퇴, 이적]][[분류:토론토 랩터스/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