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보물)] [[파일:도기 녹유 탁잔.jpg]] [목차] == 개요 == 陶器 綠釉 托盞. 7세기 경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도기 잔 1셋트.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약탈되었다가 돌아온 대표적인 환수문화재 중 하나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453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파일:Resized_20201017_161852.jpg]] 전체높이 11.5cm, 뚜껑지름 10cm, 받침지름 20cm, 높이 4cm, 입지름 3.8cm, 바닥지름 13.9cm. 서기 600년 경에 [[신라]]인들이 녹색 유약을 시유하여 만든 [[신라토기|통일신라시대의 도기]] 탁잔이다. 고화도 소성의 회백색 바탕흙으로 잔과 잔받침을 만든 후 녹유를 입혔으며, 받침에는 짧은 굽을 만들어 받침 내면에 잔을 꽂을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다. 특이한 점으로 잔이 반구형 모양인데 비해 뚜껑은 경사면에서 지붕처럼 가라앉은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와 같은 곡선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잔에서도 비슷한 양식이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잔의 모양을 당시 [[삼국]]이 모두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기에 만들어진 다른 청동기에도 이러한 양식이 자주 보이고 있어서 상당히 흔하게 사용되던 양산형 식의 도기임을 알 수 있다. 이 도기 잔과 잔받침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의 초대 주임(관장·1926∼1930)을 역임했던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약탈했던 것으로, 당시 이 사람은 겉으로는 한국 문화재를 보호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도굴]]꾼 집단을 배후에서 지원하며 [[금관총]]을 비롯한 수많은 경주 시내의 고분들에서 나온 수천여건의 신라시대 유물을 빼돌리다 1933년 대구에서 파견된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된 인물이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20&aid=0002471232|동아일보: ‘고적보존회’ 만든 뒤 신라유물 도굴… 희대의 문화재 악당]] 이 도기 녹유 탁잔 또한 모로가 히데오가 경주에서 발굴해 일본으로 유출했던 도난문화재로,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돌려받은 것이다. 이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모로가 히데오가 빼돌린 수천여점의 유물 중 [[녹유골호]], [[경주 노서동 금팔찌]],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등을 가까스로 돌려받았으나, 아직도 그가 빼돌린 장물 대부분은 일본에 여전히 유출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7세기 경의 다기 셋트로, 당시 한국의 도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본으로부터 환수된 후 1967년 6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3801&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도기 녹유 탁잔]] *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1969|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녹유 잔과 잔받침]]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7494&cid=40942&categoryId=33375|두산백과: 도기 녹유 탁잔]] * [[https://ko.wikipedia.org/wiki/도기_녹유_탁잔|한국어 위키백과: 도기 녹유 탁잔]]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4345&cid=51293&categoryId=51293|e뮤지엄: 도기 녹유 탁잔]] == 보물 제453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4530000,11&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도기 녹유 탁잔 (陶器 綠釉 托盞)]] >도기 녹유 탁잔(陶器 綠釉 托盞)은 황녹색 유약을 입혀서 만든 잔으로 잔을 받치기 위한 접시모양의 받침과 뚜껑을 모두 갖추고 있다. > >곡선이 매우 완만한 접시모양 잔 받침의 안쪽 중앙에는 잔을 고정시키기 위한 원통형 잔받이가 높게 솟아 있으며, 잔 바닥에는 길다란 다리가 붙어 있어 접시의 잔받이에 들어가 얹히도록 하였다. 잔 뚜껑 꼭대기에는 보주(寶珠) 모양의 꼭지가 달려있다. 잔이 반구형 모양인데 비해 뚜껑은 경사면에서 지붕처럼 가라앉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와같은 뚜껑의 곡선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제탁잔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탁잔 뚜껑에서부터 나타나는 장식적 요소의 한 특징이라 하겠다. > >황녹색의 유약이 비교적 두껍게 발라져 고른 유약 처리를 하였으나, 연질이어서 많은 부분이 벗겨져 암회색의 바탕흙이 노출되었다. 접시와 잔의 몸통 부분과 뚜껑에는 평행선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 >출토지와 제작장소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의 탁잔 양식,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제탁잔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기의 청동기에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신라의 도자기]][[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