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방군, rd1=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include(틀:역대 독일의 군사조직)] [include(틀:나치즘)] ||<-2> {{{#FFF '''{{{+1 Wehrmacht[br]국방군}}}'''}}}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나치 독일 군기(1938–1945).svg|width=100%]]}}} || ||<-2> {{{#FFF '''군기'''}}}[* 3군 공용으로 쓰인 [[군기]]인 '[[국가전쟁기]](Reichskriegsflagge, National War Flag)'다.]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발켄크로이츠.svg|width=60%]]}}} || ||<-2> {{{#FFF '''[[라운델|{{{#fff 국적 표지}}}]]'''}}}[* 각종 전투차량, 항공기에 사용한 국적 표지인 막대 십자, '[[발켄크로이츠]](Balkenkreuz)'다. 그나마 [[하켄크로이츠|나치 십자가]] 형태가 아니기에 대다수의 게임에서는 해당 이미지로 독일 국방군을 표현한다. 또한 영상 제작자들 중 전범 상징으로 인한 노란딱지 등을 걱정하는 경우 대부분이 갈고리십자를 발켄크로이츠나 휘어진 제국군/연방군식 [[철십자]]로 대체한다. 대표적으로 많은 역사 [[컨트리볼]] 영상에서도 친위대는 하켄크로이츠를, 국방군은 막대 십자가로 그려 구분하거나 아예 철십자로만 그린다.] || || '''존속 기간''' ||[[1935년]]~[[1945년]] || || '''편성''' ||[[독일 육군(나치 독일)|육군(Heer)]][br][[독일 해군(나치 독일)|해군(Kriegsmarine)]][br][[독일 공군(나치 독일)|공군(Luftwaffe)]] || || '''병력규모''' ||{{{-1 육군 누적 '''13,600,000'''명[br]해군 누적 1,500,000명[br]공군 누적 3,400,000명}}}[br]누적 '''18,000,000'''명 || || '''장비전력''' ||'''육상장비''' 전차 누적 49,777대 '''해상장비'''[br]전함 4척,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3척,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6척, 구축함 21척 '''항공장비''' 항공기 누적 119,871기 || || '''주요 지휘관''' ||{{{-2 [[퓌러]] ([[통수권|통수권자]])}}} '''[[아돌프 히틀러]]''' {{{-2 국방군최고사령부 총장}}} [[빌헬름 카이텔]] {{{-2 육군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 {{{-2 공군총사령관}}} [[헤르만 괴링]] {{{-2 해군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 || '''주요 참모''' ||{{{-2 최고사령부 장군참모}}} [[알프레트 요들]] {{{-2 육군최고사령부 장군참모}}} [[프란츠 할더]] {{{-2 공군최고사령부 장군참모}}} [[알베르트 케셀링]] || [목차] [clearfix] == 개요 == >"Ich schwöre bei Gott diesen heiligen Eid, daß ich dem Führer des Deutschen Reiches und Volkes Adolf Hitler, dem Oberbefehlshaber der Wehrmacht, unbedingten Gehorsam leisten und als tapferer Soldat bereit sein will, jederzeit für diesen Eid mein Leben einzusetzen." >------ >'나는 하느님께 엄숙히 맹세하오니, 독일과 국민의 지도자이며 독일 국방군의 최고통수권자이신 아돌프 히틀러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치며, 언제든지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 나의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군인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 >― 독일 국방군의 [[복무신조]][* 이 [[복무신조]]는 영화 [[작전명 발키리]] 도입부에서도 나온다.] '''독일 국방군'''은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하였던 [[나치 독일]]의 정규군이다. == 명칭 == [[국방군]]이라는 명칭은 [[독일어]] 원어인 Wehrmacht([[베어마흐트]])를 번역한 것이다.[* 이를 [[영어]]로 번역한 디펜스 포스(defense force)를 직역하여 국방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알파벳 문화권에서는 독일 원어인 Wehrmacht가 고유명사화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에서도 German defense force라고 영어식으로 번역해서 표기하는 경우는 드물고 (German) Wehrmacht라고 독일어 원어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독일 국방군(Wehrmacht)은 육해공군을 아우른 독일 [[정규군]] 전체를 총칭한다. 일각에서는 독일 육군만 지칭하는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정보이다. [[국방군]]은 [[국군]]이라는 단어와 동일어로써 [[독일 육군(나치 독일)|육군]](Heer)뿐만 아니라 [[크릭스마리네|해군]](Kriegsmarine), [[독일 공군(나치 독일)|공군]](Luftwaffe)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 명칭의 번역 문제 === >"⋯또한 그들은 일종의 도상학적 효과를 지니도록 자기 책의 본문에 –부대의, 전투 장면의, 여러 개인의– 사진을 많이 끼워넣는다. 용어, 즉 독일군 계급, 차량 명칭, 훈장도 마찬가지여서, '''늘 독일어 원어로 표기되며 [[토테미즘|토템적 가치]]도 지닌다.''' >---- >― 로널드 스멜서, 에드워드 데이비스 2세,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中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빠, 문단=2.1.2.4)] == 수뇌부 == [[1939년]] [[폴란드 침공]] 발발 기준이다. || [[파일:아돌프 히틀러 사진1.jpg|width=90%]] ---- '''[[퓌러|{{{-1 퓌러}}}]]'''{{{-1 (통수권자)}}}[br][[아돌프 히틀러]][br][br] || [[파일:발터 폰 브라우히치.jpg|width=82%]] ---- {{{#!wiki style="margin: 0px -10px" [[독일 육군(나치 독일)|육군 최고사령관]]}}}[[발터 폰 브라우히치]][br][br] || [[파일:페도어 폰 보크 (컬러).jpg|width=85%]] ---- {{{#!wiki style="letter-spacing: -1.1px; margin: 0px -10px" 육군 북부집단군사령관}}}[[페도어 폰 보크]][br][br] || [[파일:게르트 폰 룬트슈테트.jpg|width=82%]] ---- {{{#!wiki style="letter-spacing: -1.1px; margin: 0px -10px" 육군 남부집단군사령관}}}[[게르트 폰 룬트슈테트]][br][br] || [[파일:Wilhelm_Keitel.jpg|width=82%]] ---- {{{#!wiki style="letter-spacing: -1.1px; margin: 0px -10px" {{{-1 [[국방군최고사령부]] 총장}}}}}}[[빌헬름 카이텔]][br][br] || || [[파일:Alfred_Josef_Ferdinand_Jodl.jpg|width=82%]] ---- {{{#!wiki style="letter-spacing: -1.1px; margin: 0px -10px" [[국방군최고사령부]] 작전부장}}}[[알프레드 요들]][br][br] || [[파일:reichsmarschall.jpg|width=95%]] ---- {{{#!wiki style="letter-spacing: -2px; margin: 0px -10px" [[루프트바페|{{{-1 공군 최고사령관}}}]]}}}[[헤르만 괴링]][br][br]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46-1980-128-63%2C_Erich_Raeder.jpg|width=95%]] ---- {{{#!wiki style="letter-spacing: -1.1px; margin: 0px -10px" [[크릭스마리네|{{{-1 해군 최고사령관}}}]]}}}[[에리히 레더]][br][br] || == 구성 == [include(틀:독일 국방군)] 우선 독일 국방군에서 가장 높은 기관은 바로 [[국방군최고사령부]](OKW)이다. 그 아래 각 군별로 [[육군최고사령부]](OKH), [[공군최고사령부]](OKL)와 [[해군최고사령부]](OKM)로 구성되어 있다. [[무장친위대]] 또한 [[OKW]]의 관할을 받았다. 자세한 편제는 [[독일 국방군/부대일람]] 문서 참조. === 육군 === [[파일:external/1.bp.blogspot.com/A+column+of+German+forces+in+Paris.jpg|width=50%]]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육군(나치 독일))] === 공군 === [[파일:나치 독일 공군 - 슈투카 편대.jpg|width=50%]]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공군(나치 독일))] === 해군 === [[파일:크릭스마리네.jpg|width=50%]]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해군(나치 독일))] == 행정 및 생활 == === 계급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국방군/계급)] === 입대 방식 === 국방군 육군은 18세 이상의 남자부터 자원입대가 가능했으며 총 4주 간의 [[신병교육대]] 기간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여느 군대가 그렇듯이 국방군도 신교대에서 군종불문 [[사격]], [[수류탄]] 던지기, [[각개전투]] 등 여러가지 기초적인 [[보병]] 훈련을 받았는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많은 적들을 상대해야 되다 보니, 날이 갈수록 훈련의 강도가 빡세졌고,독일의 심장부가 일선이 된 전쟁 후반기에는 신교대고 뭐고 그냥 바로 자대 배치 받고 일선에서 싸웠다고 한다. 신병 때는 훈련소의 병기들을 지급받았다 수료시 반납 후 자신의 부대에서 자기가 쓸 병기를 새로 지급받는 타국과 달리, 훈련병 때 받은 소총을 전출시에도 계속 지참해 전역시까지 함께하는 방식으로 병기를 지급했다. [[방탄모]]와 [[탄띠]], [[수통]] 등 개인장구류도 부대피복이 아닌 개인피복으로 지급됐으며, 당연히 훈련병 때 지급받은 것을 전역시까지 계속 썼고, 철모 등 일부를 제외하면 전역하면서 반납하지 않고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육군 병의 의무 복무 기간은 2년이었으나, 개전 이후 만기전역 개념이 사실상 없어졌다. 징집병들은 극초반에는 [[폴란드 침공]]에 가담했고, 중반에는 대부분 [[서부전선]]에 배치되어 [[프랑스 침공]]과 [[영국 본토 항공전]]을 거행했으며, [[1941년]] [[6월]]부터는 국방군 병력의 90% 이상이 죄다 [[동부전선]]으로 배치되었다. 애초에 친위대여서 다른 소속이긴 하지만, [[헤르베르트 브루네거|한 친위대원]]은 16살에 입대해서 [[뮌헨 협정]]부터 [[베를린 전투]]까지 제3SS기갑사단에 있으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 같은 국방군이여도 육군은 아무나 [[입영통지서]]가 날아오면 입대 확정이였으나 해군이나 공군으로의 입대는 지원을 해야 했고 여러가지 시험에서 통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여느 군대가 그렇듯이 육군에선 [[Kar98k]]와 [[게베어 43]]를 사용하는 일반 소총수가 아닌, 기관단총수([[MP40]] 사용), 기관총사수([[MG34]], [[MG42]] 사용), 저격수(초기: [[Kar98k]] 사용, 후기: [[게베어 43]] 사용) 돌격소총수([[StG44|MKb 42, MP43, StG44]] 사용) 등은 자대 배치 이전에 따로 훈련을 몇 주간 더 받아야 했었다. 해공군 역시 양성과정 외 특기교육이 신병 수료 후 바로 실시됐다. 장교의 경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임관과 동시에 [[소대장]] 경험 없이 바로 [[중대장]]으로 배치되었다.[* 독일 국방군은 병장이 분대장, 부사관이 소대장, 위관급 장교가 중대장, 소령과 중령이 대대장, 대령이 연대장인 편제구조를 지녔다.] 이로 인해 소위들이 실전지휘경험 부족으로 난항을 겪기도 했다. 이래서 전방에는 [[대위]]가 중대장, [[상사(계급)|상사]]가 소대장인 부대를, 후방에는 소위가 중대장, [[하사]]가 소대장인 부대를 배치했으나 전방이 궤멸되어가는 전쟁 후반에 이르러서는 소위 중대장도 전방에 마구 배치되었다. 어자피 전쟁 말기엔 인력 부족이 심해 [[소령]] [[여단장]]이 보직되기도 하는 등 엉망이었다. === 총 복무 인원 수 === 1935년부터 1945년까지 국방군이 존재했던 시절 동안 국방군에 복무했었던 군인의 총 숫자는 '''1,820만'''여 명 정도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 숫자는 사학자 뤼디거 오베르만스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국방군에 복무'했었던'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친 것이지 어느 한 시점의 국방군의 병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방군 복무인원들 중 중 230만명이 전사, 55만명이 비전투 관련 원인으로 사망하였으며 200만명이 작전 중 실종되고 전후 행방불명 처리되었다. 그리고 약 46만명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하였는데, 이 중 77,000명이 미국, 영국, 프랑스 측에 의해 수감되어 있었다. 수감 중 사망한 인원은 1945년 6월 이후의 전후 기간에 사망한 266,000명도 포함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소련에 수감되어 있었다. 대략 1,100만명 정도가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 군구 === 독일 국방군은 군의 보급과 편성 과정을 수월하게 하게 위해 [[군구]](軍區, Wehrkreise)를 도입해서 전쟁 내내 이용했다.[* 사실 이 군구 제도는 [[독일 제국]]의 군구 제도를 [[바이마르 공화국]],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치 독일]]이 계승해서 사용한 것이다. 참고로 수는 4개로 줄어들었지만 현 [[독일연방공화국]] 역시 군구를 운용한다.] 국방군 육군의 모든 사단은 각자 저마다 배정된 군구가 있었고, 해당 사단의 신병 모집(징집 등)과 보급은 모두 해당 군구가 담당하는 식으로. 다만 국방군 내에서 유일하게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만큼은 최정예 사단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독일 내 15개 군구 전체에서 신병을 모집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어느 나라나 그렇듯 독일 국방군 주에서도 군구는 주로 육군이 많이 활용했다. 해공군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징집으로 뽑지 않은데다가 둘 다 활동 지역이 비행장과 항구 주변으로 제한되었으므로 굳이 독일 본토 전역에 군구를 설치해서 운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전술했듯이 독일 국방군은 총 15개의 군구가 있었다. 원래는 13개였는데, [[안슐루스]]를 거치며 [[오스트리아]]가 추가되어 두 지역이 늘어나 15개가 되었다. 이후 폴란드와의 병합 지역 등을 추가하면서 4개가 더 늘어나 대전 말 국방군의 군구는 19개까지 늘어났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77px-Wehrkreise_Deutsches_Reich.jpg]]|| ||[[1937년]] 기준 독일의 군구 지도.[* 폴란드 침공 이전 군구 지도라 XX, XXI, 총독부 군구와 보헤미아-모라비아 군구가 나타나있지 않다.]|| ||[[파일:독일군구지도(1944년1월).jpg|width=680]]|| ||[[1944]]년 1월 기준 독일의 군구 지도.[* 위 지도와는 다르게 아래에 나열한 모든 군구들이 표기되어 있다.]|| * I 군구 [[동프로이센]] 관할. 군구 사령부는 [[쾨니히스베르크]]에 위치했다. * II 군구 [[메클렌부르크]]과 [[포메른]] 관할. 군구 사령부는 [[슈테틴]]에 위치했다. * III 군구 [[브란덴부르크]]와 노이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주의 동쪽 부분으로, 현재는 폴란드령이다.] 관할. 군구 사령부는 [[베를린]]에 위치했다. * IV 군구 [[작센]], [[튀링겐]], [[보헤미아]] 북부 관할. 군구 사령부는 [[드레스덴]]에 위치했다. * V 군구 [[뷔르템베르크]], [[바덴]] 일부, [[알자스]] 관할. 군구 사령부는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했다. * VI 군구 [[베스트팔렌]], [[라인란트]] 담당. 추가로 현재는 벨기에령인 [[오이펜]], [[말메디]]도 관할했다. 군구 사령부는 [[뮌스터]]에 위치했다. * VII 군구 남부 [[바이에른]] 관할. 군구 사령부는 [[뮌헨]]에 위치했다. * VIII 군구 [[실레지아]], [[수데텐란트]], 폴란드 남서쪽 일부 관할. 군구 사령부는 [[브레슬라우]]에 위치했다. * IX 군구 [[튀링겐]]과 [[헤센]] 관할. 군구 사령부는 [[카셀]]에 위치했다. * X 군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슐레스비히]], [[하노버]] 일부 관할. 군구 사령부는 [[함부르크]]에 위치했다. * XI 군구 [[브라운슈바이크]], [[안할트]], [[마그데부르크]] 관할. 군구 사령부는 [[하노버]]에 위치했다. * XII 군구 [[코블렌츠]], [[만하임]], [[메스]], [[라인란트팔츠|팔츠]]. [[자르]], [[로리앙]], [[낭시]], [[룩셈부르크]] 관할. 군구 사령부는 [[비스바덴]]에 위치했다. * XIII 군구 북부 [[바이에른]], 서부 [[보헤미아]], [[레겐스부르크]], [[헤프|에거]] 관할. 군구 사령부는 [[뉘른베르크]]에 위치했다. 아래 두 군구는 [[안슐루스]] 이후 새롭게 추가된 군구들이다. * XVII 군구[*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전이 XIII(13) 군구였으니 다음 군구는 XIV(14) 군구가 돼야 하나 이상하게 14와 XV(15), XVI(16)을 건너뛰고 XVII(17)군구로 명명되었다. 상당히 특이한 부분.] [[오스트리아]], 남부 [[보헤미아]], 남부 [[모라비아]] 관할. 군구 사령부는 [[빈(오스트리아)|빈]]에 위치했다. * XVIII 군구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티롤]], 그리고 남부 [[슬로베니아]] 담당. 군구 사령부는 [[잘츠부르크]]에 위치했다. 아래 네 군구는 [[폴란드 침공]] 이후 새롭게 추가된 군구들이다. * XX 군구[* 위와 같은 경우로, 숫자가 XIX(19)를 스킵하고 바로 XX(20)으로 넘어간다.] [[단치히]] 자유시[* 현 폴란드 [[그단스크]].] 등 단치히 회랑과 [[서프로이센]] 일대 관할. 군구 사령부는 [[단치히]]에 위치했다. * XXI 군구 [[포젠]] 일대 관할. 군구 사령부는 [[포젠]]에 위치했다. * 폴란드 총독부 군구 XX 군구와 XXI 군구에서 일대를 제외한, [[폴란드 총독부]] 휘하의 나머지 폴란드 영토를 관할. 군구 사령부는 [[크라쿠프]]에 위치했다. * 보헤미아-모라비아 군구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관할. 군구 사령부는 [[프라하]]에 위치했다. === 내무 생활 === 나치 독일이 벌인 잔학한 전쟁범죄의 원인을 병영부조리가 판치는 병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다소 놀랍게도 병영 자체는 동시기 [[일본군]]이나, [[소련군]], 전쟁 이후의 [[중국 인민해방군]]과는 다르게 굉장히 병영부조리가 적었고 상당히 분위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국방군 뿐만 아니라 친위대도 [[장교]]는 사관학교 졸업했다고 바로 임관되는 게 아니라 후보생 계급으로 병들과 한동안 생활한 후에야 정식으로 임관할 수 있었다. [[부사관]]은 당연히 전원 병 출신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민간에서 바로 부사관을 뽑는 제도가 드물다. 한국은 병 출신들이 대부분 징병으로 온 사람들이다보니 평상시엔 직업으로서 병이 되어 군에 남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뽑지도 않고 있다. 한국은 과거 [[한국전쟁]] 때 부랴부랴 부사관을 뽑아냈던 일 때문에 민간 부사관제도를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정석은 독일 국방군처럼 징집 혹은 직업으로서 병사로 입대하여 다년 간 복무한 뒤, 부사관 선발시험을 치루거나 영국군처럼 한 계급에 3~5년씩 지내면서 자동 진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로 군 내 신분 간의 심리적 격차와 군 경험 격차를 줄였다. 다만 얼차려가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장비 검사에 탈락하거나 경비 소홀의 경우 일주일 동안 감자 껍질을 까는 벌 같은 것들도 있었다. 운전병들의 경우 느리게 운전하는 차의 뒤를 따라 1시간가량 달리는 벌이 주어졌다. 당연히, 이러한 것들은 법률 및 규칙에 따라 규정된 절차에 의해 선고, 집행된 것들로 [[일본군|말단 병들끼리 똥군기 잡는다고 시행]]된 것은 아니다. 영내 거주자들의 일과표 또한 합리적이었는데, 육군 기준으로 일과가 끝난 뒤에도 약간의 [[개인정비]]시간 외엔 청소 등 [[점호]]를 준비해야 해서 사실상 24시간 내내 일과 중인 타국군에 비해, 이들은 퇴근하자마자 바로 생활관 청소와 병기 등 개인장비 정비를 마치고 점호를 받았다. 즉 점호를 퇴근 직후 바로 실시하여 좀 더 편히 쉴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다만 당시의 인식과 문화로 비추어 보건대 국방군이 병영 문화의 선진성에서 딱히 특출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대나 현대나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선진적인 병영을 갖추었었기 때문이다. [[미군]] 및 [[영국군]]의 경우 독일군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병영문화를 갖추고 있었으며, [[소련군]] 정도만이 상대적으로 좀 더 심각했다. 그리고 병영부조리가 아예 없는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2차대전 당시의 국방군을 다룬 미디어 매체인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와 '[[잊혀진 병사]]',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도 국방군 내 병영부조리가 묘사된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는 주인공의 동생이 야간에 소련군과 신경전 중에 담배 불을 끄라는 명령을 어기다가 담배 때문에 위치가 발각 당해 소대전체에 폭격이 날아왔고, 계속 전쟁수행 동안 패배주의적 말을 해서 소대의 전체의 사기를 계속 하락시키는 등 맞을 짓을 해서 맞았다는 인식도 많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그를 계속 변호해주던 장교(이자 그의 친형)의 행동인데, 계속된 사기 하락성 발언과 폭격 원인 제공으로 인해 병사들의 폭력을 묵인한다.] 또한 이러한 선진적인 시스템을 지녔음에도 [[병영부조리]]의 정점이었던 일본군 못지 않게 점령지에서 학살과 약탈을 일삼고 다녔던 것을 보면 병영 수준과 전쟁 범죄 비율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군 내부에서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 것도 아니고 평범한 정신으로 저지른 것이니 더 악질이라고 볼 수 있다. == 장구류 == === 군복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군복/독일군)] === 제식 병기 === * '''[[독일 육군(나치 독일)|육군]] 장비''' [include(틀:2차 세계대전/독일 보병장비)] [include(틀:2차 세계대전/독일 기갑차량)] [include(틀:2차 세계대전/독일 화포)] * '''[[독일 공군(나치 독일)|공군]] 항공기''' [include(틀:2차 세계대전/독일군 항공기)] * '''[[전쟁해군|해군]] 함선''' [include(틀:2차 세계대전/독일 함선)] * '''무전기''' * ()안의 숫자는 후기형(Later), Receiver는 수신기, Transmitter는 송신기다. || '''{{{#fab93d 이름}}}''' || '''{{{#fab93d 장비 설명}}}''' || '''{{{#fab93d 부속물}}}''' || '''{{{#fab93d 주파수 대역(KHz)}}}''' || '''{{{#fab93d 안테나 길이}}}''' || '''{{{#fab93d 유효거리}}}''' || || FuG1 || Pack receiver b || 없음 || 100-6970 || 1.4m || 미상 || || FuG2 & FuG4 || USW receiver c1 || EUa2 || 27200-33300 || 2m || 40m || || FuG5 || 10와트 transmitter c [br] USW receiver c1 || SE 10u || 27200-33300 || 2m || 40m || || FuG6 || 20와트 transmitter c [br] USW receiver c1, later e || SE 20u || 27200-33300 || 2m || 80m || || FuG7 || 20와트 transmitter d [br] USW receiver d1 || SE 20u || 42100-47800 || 2m || 500m || || FuG8 || 30와트 transmitter a [br] MW receiver b, later c || SE 30 || 1130-300[br]580(835)-3000 || 8m || 400m[br]500m || || FuG10 || 30와트 transmitter [br] Pack receiver b, later 30와트 transmitter a || SE 30 || 950-1670[br]100-6970(1120-3000) || 미상 || 400m || || FuG11 || 100와트 transmitter [br] Pack receiver b || SE 100 || 200-1200[br]100-6970 || 9m || 500m || || FuG12 || 80와트 transmitter c [br] MW receiver c || SE 80 || 1120-3000[br]835-3000 || 2m || 2km || || FuG13 || 20와트 transmitter c [br] USW receiver e || SE 20u || 27200-33300 || 2m || 80m || || FuG15 || USW receiver h || 미상 || 23000-24950 || 2m || 40m || || FuG16 || 10와트 transmitter 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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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 구데리안]] 역시 회고록에서 [[에리히 폰 만슈타인|만슈타인]]은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만 보인다고 돌려까기식으로 비판하고 비난했다.] ==== 빈약한 보급체계 ==== 또한 연합군에 비하면 보급 체계도 후진적이었는데, 보급의 대부분을 차량이 아닌 [[말]]과 [[철도]]에 의존했다. 게다가 그나마 쓴 트럭들마저도 종류를 전혀 통일하지 않았는데, 일단 독일 회사들이 생산한 트럭만 해도 벤츠제, 헨셸제, 오펠제, MAN제, 크루프제, KHD제, 아들러제, 뷔싱-NAG제, 마기루스제 등 10종류가 넘었다. 심지어 이후 독일은 차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프랑스 등에서 노획한 미국제[* 독일군이 사용한 미국제 트럭은 절대다수가 프랑스가 면허생산한 트럭들이었고, 이후 동부전선에서도 무기대여법으로 공여된 미국제 트럭 소수를 노획하여 사용했다.]/프랑스제 트럭들을 닥치는 대로 전선에 배치했는데, 이는 일시적으로는 독일군의 차량난을 해소했지만 결국 트럭의 종류만 더 쓸데없이 다양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트럭이 일선 부대에서 한꺼번에 쓰이니 독일군은 표준화나 규모의 경제는 고사하고 일선 부대에서 심각한 정비난과 부품수급 문제를 겪어야 했다. ||[[파일:독일트럭.jpg|width=100%]]|| || 동부전선에서 이동하는 한 독일군 부대. '''사진속 트럭들의 종류가 전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자.[* 사진에 등장한 트럭들은 앞에서부터 스튜드베이커 US6 6륜구동 2.5톤 트럭, 푸조 DMA 2.5톤 트럭, 포드 V3000S 3톤 트럭, 그리고 우니폼-디젤 6륜구동 경형 트럭이다.] || 변호를 해보자면, 이는 독일군이 그런 대규모 차량 전력을 운용할 연료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석유]] 부족은 당시 독일의 가장 큰 전략적 약점 중 하나였는데, 이는 독일 군부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 전 독일은 필요 석유량의 대부분을 [[미국]]과 [[소련]]에서 수입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시작되자 [[크릭스마리네]]보다 훨씬 강력한 영국 해군에 의해 해상이 봉쇄되어 미국과의 무역로가 막혀버렸고[* 미국은 당시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독일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소련이 보내주는 전략 물자로 그러나 이마저도 [[독소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물주였던 바로 그 국가들과 적대하게 되면서 수입선도 끊겼고, 같은 추축국이면서 산유국인 루마니아에서 수입한 석유와 석탄을 통해 만든 합성 석유를 통해서 겨우겨우 버티는 신세가 된다.[* 합성 석유가 가장 큰 석유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연합국이 합성 석유 공장을 폭격해 초토화시켜버리면서 상황은 매우 나빠지게 된다] 물론 제 3국과 거래해서 자원을 수입하는 방법도 있었고, 실제로 독일이 이 방법으로 중립국 스웨덴에서 막대한 양의 철광석을 수입하거나 포르투갈에서 텅스텐을 수입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미 저러한 자원을 실어나를 바다는 영국 해군이 장악한 지 오래였으니 결국 이것도 가까운 유럽 내 국가 상대로만 가능했다는 게 문제. === 전후의 역사 왜곡: [[국방군 무오설]] ===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군을 좋아하는 [[밀덕|밀리터리 매니아]]들 중에서 [[독빠|독일을 과하게 옹호하는 입장이 강한 사람]]들은 [[제3제국]] 휘하 군대가 벌인 막장 [[전쟁범죄]]는 '사악한 나치당의 사병'인 [[슈츠슈타펠]]의 책임으로 전부 몰아가고, 국방군은 그저 나라를 위한 전쟁을 수행했을 뿐인 '군대'였음을 강조하며 국방군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다.[* 비슷한 것으로 [[일본의 전쟁범죄|일본제국의 전쟁범죄]]와 침략행위는 모두 육군이 저질렀고, 해군은 무관하다는 [[해군선옥론]]이 있다. 이 또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슈츠슈타펠 만큼은 아니지만 '''국방군도 상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사실 군대자체가 위에서 통제를 하더라도 가끔가다가 장병 하나가 막나가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예 야전장교가 병사들을 이용해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적잖은데 통제는 커녕 암묵적 승인을 한 나치 독일에서 국방군이 깨끗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국방군 무오설)] == 출신 인물 == * 장성급[* 대부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이나 오헝 제국군에 복무한 이들이라는게 인상적이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인류 최대의 전장에서 보낸 것.] [include(틀:독일 국방군/원수)] [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 기타[* 하급 장교나 병.] * [[쿠르트 발트하임]] 정보 장교[* [[전범]]이자, '''제4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나름 과거를 숨겼지만, 뒤늦게 밝혀지는 바람에 외교관으로써의 인생이 끝장났다.] * [[빌리 파울 헤롤트]] 공군 일병[* 영화 [[더 캡틴]]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막판에 보여주었던 범죄행각으로도 유명한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 --[[오토 스코르체니]]--[* 무솔리니 구출 작전 때 공군 소속 [[공수부대]]원으로 위장했다. 실제 소속은 [[무장친위대]]였다.] == 대중매체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국방군/대중문화)] [[분류:독일 국방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