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오스트리아의 역사)] [Include(틀:오스트리아 관련 문서)] [include(틀:독일-오스트리아 관계 관련 문서)] ||<-3>
{{{+3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br]Republik Deutsch-Österreich'''[br]'''Republic of German-Austria'''}}} || ||<-2>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width=15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76px-AustriaCoA-1918.svg.png|width=120]] || ||<-2> '''국기''' || '''국장''' || ||<-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rmanAustriaMap.png|width=300]] || ||<-3> '''1918년 ~ 1919년''' || || '''위치''' ||<-2>[[오스트리아]]|| || '''면적''' ||<-2>118,311km²|| || '''인구''' ||<-2>10,400,000명|| || '''[[수도(행정구역)|수도]]''' ||<-2>[[빈(오스트리아)|빈]]|| || '''정치 체제''' ||<-2>[[공화제]]|| || '''국가 원수''' ||<-2>대통령|| || '''[[공용어]]''' ||<-2>[[독일어]]|| || '''[[민족]]''' ||<-2>[[오스트리아인]][* 오스트리아인이라고 해봐야 대다수는 그냥 현대 오스트리아의 주류민족인 독일계 주민들이었다. 다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헝가리계와 여러 슬라브 제민족도 사는 다민족국가였던 만큼 독일계에 동화된 헝가리계, 슬라브계 주민들도 의외로 적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인]]|| || '''[[종교]]''' ||<-2>[[가톨릭]]|| || '''역사''' ||<-2>1918년 성립[br]1919년 해체|| || '''통화''' ||<-2>크로네, 실링|| || '''성립 이전''' ||<-2>[[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해체 이후''' ||<-2>[[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목차] [clearfix] == 개요 ==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1919년 10월 21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으로 체제가 변경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국가다. == 역사 == 본래 독일계 오스트리아(Deutsch-Österreich)라는 명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 존재했던 [[독일인]] 거주 지역인, [[시스라이타니아]](Cisleithanien, 라이타 강 연안)를 비공식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위시한 동맹국의 패배로 끝나면서, 연합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해체시켰다. 제국의 해체 이후 제국의 구성 지역들은 분리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카를 1세]]가 퇴위하여 오스트리아의 군주제가 종결된 다음날인 1918년 11월 12일, 오스트리아 국민 의회의 의장 카를 자이츠(Karl Seitz)는 공화정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제국 내 [[독일어권]] 지역을 전부 독일계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선포하였으나, 이미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제국 내 독일계 지역을 일부 흡수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 왜 독일계 오스트리아인가 == 결론부터 말하면 독일-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국가가 아닌, 민족 자결권에 의거해 독일과 통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른바 과도기 단계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패배하면서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긴 했지만, 독일 왕국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연임했으며, 독일 문화를 선도하고,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고도 불리는 30년 전쟁에도 깊게 관여한, 독일을 논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살아있는 독일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 독일이 탄생한 이후에도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대독일'에 대한 열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는데, 우선 오스트리아(혹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인구 대부분이 다민족 국가라는 것이었다. 1910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독일인 비율은 23퍼센트에 불과했고, 헝가리인을 포함해도 40퍼센트를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체코인과 폴란드인, 세르보-크로아티아인이 각각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고, 이외에도 루테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이탈리아인등 수많은 민족들이 혼재해 있었다. '독일 민족의 순수성'과 같은 명분은 둘째치더라도, 현실적으로 인구의 75퍼센트가 문화, 종교, 언어마저도 다른 외국인들을 포함해 '독일인들의 국가'를 성립한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다민족을 관리하는데 익숙한 오스트리아 제국이 독일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변화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통일의 걸림돌이었던 비독일계 영토들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것. 때문에 황제 퇴위 직후 주도권을 장악한 국민 의회는 독일로의 편입을 원했고, 신속하게 시스라이타니아내의 독일인 거주지역을 영토로 선포함과 동시에, 법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일부이다'라고 못 박아 놓기까지 했다. 주데텐란트와 같이 관리가 불가능한 월경지도 독일과 이어지게 된다면 영토가 이어지게 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는것. 그러나 독일을 약화시키고 싶어했던 국가들, 특히 대전쟁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탓에 독일을 통일 이전으로 찢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극심한 증오를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같은 국가가 이를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리 없었고, 물밑에서나 위에서나 주데텐란트나 남티롤, 이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와 같은 일부 영토는 이미 합의를 통해 어느 정도 분배가 끝나있는 상황이었다. 협상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 오스트리아와 협상국간 맺어진 생제르맹 조약에서는 독일의 일부라는 조항을 삭제하고, 독일-오스트리아 공화국이라는 국명도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 변경시켰다. 또한 독일 제국과 맺은 베르사유 조약에서는 두 국가의 통일을 금지시킴으로서 통일은 무산되고,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으로 이어진다. == 관련 문서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제1차 세계 대전]] [[분류:오스트리아의 역사]][[분류:유럽의 공화국]][[분류:1919년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