董榮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화양국지]]에는 동책(童策)으로 기록되었다. 익주자사로 [[이밀(삼국지)|이밀]]을 수재로 천거했지만 조모를 공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되었으며, 초주의 상을 주학(州學)에 그려놓고 종사 이통을 시켜 송을 짓게 했다. 268년에 [[왕부#s-3]]가 [[제갈첨]]을 자칭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이고(서진)|이고]]가 왕부를 격파하고 붙잡아 주부로 보내자 동영은 왕부를 처형했고, 이고를 발탁해 중용했다. 익주자사 재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밀의 [[진정표]] 이전에 천거한 것으로 보아 268년 이전에 취임했고, 265년에 익주자사를 지내다가 성을 축조한 일로 인해 중앙에 소환된 [[원소(조위)|원소]]의 후임으로 보이며, 원소의 중앙 소환 직후에 역임했다면 원소의 후임 자사인 것으로 보인다. 왕부의 반란 진압 이후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익주자사 호비의 부름에 거절했다가 [[왕장문]]이 함녕 연간에 익주에서 태수를 지냈다는 기록과 익주자사 황보안이 272년에 살해당한 직후 왕준이 오 정벌까지 익주자사를 지낸 것을 고려하면 그의 후임 자사는 호비인 것으로 보인다. [[분류:서진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