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摯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자는 덕로(德魯). 가부(笳賦)를 바쳐 사도군모제주에 임명되었고 후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 교서랑, 낭중령을 지냈으며, 승진하지 못하고 비서성에서 관직을 지낼 때 사망했다. [[소림]], [[위탄#s-2]], [[하후혜]], [[손해(조위)|손해]] 등과 함께 문장, [[부#s-1.7]]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위서21 왕위이유부전.] [[관구검]]과 친했고 그의 글로는 증모구검(贈母丘儉)이 있는데, [[완우]]의 은사와 함께 하나의 시로써 하나의 사실을 노래한 형식은 타파했지만 작법이 너무 기계적이고 딱딱하다는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좌사]]가 영사를 지으면서도 시의 체제는 근본으로 하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을 뒤섞어 고금을 융합하고 연이어 비유를 끌어들여 영사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했다고 한다. [[분류:조위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