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서로마 제국]][[분류:5세기]][[분류:이탈리아의 사건 사고]] ||<-3><#C0C0FF><:> {{{+1 '''라벤나 함락'''}}} |||| ||<#C0C0FF> '''시기''' ||<-2>서기 [[476년]] 9월 2일 ~ 4일 |||| ||<#C0C0FF> '''장소''' ||<-2>[[서로마 제국]] [[라벤나]] |||| ||<#C0C0FF> '''원인''' ||<-2>파비아 전투 이후, 오도아케르와 서로마 정부의 관계 악화 || ||<#C0C0FF> '''교전세력''' ||{{{+1 [[서로마 제국]]}}} ||{{{+1 [[오도아케르]] }}} || ||<#C0C0FF> '''지휘관''' ||파울루스[[전사|†]][br][[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1>[[오도아케르]]|| ||<#C0C0FF><:> '''병력''' ||불명 ||약 3천 || ||<#C0C0FF><:> '''피해''' ||전멸 ||피해 규모 불명 || ||<#C0C0FF> '''결과''' ||<-2>로마군 궤멸, 라벤나 함락. || ||<#C0C0FF> '''영향''' ||<-2>'''[[서로마 제국]]의 멸망''',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통치 시작 || [목차] [clearfix] == 개요 == 라벤나 함락은 [[서로마 제국]]의 수도 [[라벤나]]가 [[오도아케르]]의 반란군의 손에 함락된 사건으로,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오도아케르에게 제위를 양위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상징한다.''' == 경과 == [[오도아케르]]는 스키리 족의 왕이었으나 그의 군대가 동고트 족에게 몰살당한 후 서로마 제국의 군대에 들어가 제국의 방위를 책임졌다.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통치 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였고 갈리아, 히스파니아 등지에서 각 부족들이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상황에 오레스테스는 로마제국의 장군으로 [[오도아케르]]를 임명하여 역량이 떨어진 제국군의 방위를 책임졌다. 오도아케르는 그 대가로 서로마 정부에 대해 상당한 양의 땅을 할양하라 요구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는 이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오도아케르는 반발했다. 사실 아무 이유 없이 땅을 내놓으라고 한 건 아니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아우구스툴루스]]의 아버지인 [[오레스테스]]가 [[서로마 제국]]을 어떻게든 존속 시킬려고 노력하던 전대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도아케르 등 [[서로마 제국]]에 복무중인 이민족 군대에게 이탈리아의 땅을 약속했다가 로마인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커서 실행을 머뭇거린 쪽에 가깝다. [[오레스테스]]는 몸을 피해 [[파비아]]로 도망쳤지만 뒤따라온 오도아케르의 군대에 잡혀 [[참형|목이 잘리게 되었다.]] 476년 9월, [[오레스테스]]가 죽고 [[오도아케르]]는 수도인 라벤나로 진격했고, [[오레스테스]]의 형이자 어린 황제의 백부였던 파울루스가 남은 군대를 데리고 맞서 싸우러 갔지만, 파울루스의 군대가 라벤나 근교에서 패배한 후 라벤나에서 농성전을 펼쳤지만 이틀 뒤 성문이 돌파당하면서 그는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 당시 16살이던 황제는 [[오도아케르]]에게 제위를 양위하도록 강요받았고, 이리하여 기원전 753년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서방 통치는 끝난다. == 미디어 창작물 == [[토탈 워: 아틸라]]에서 역사적인 전투로 등장한다. 특이하게도 플레이어가 방어군 입장으로서 오도아케르의 반란군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데, 서로마의 종말을 상징하는 전투답게 우울하고 어두운 전장 분위기가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