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노르만인 더럼 주교이자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2세]]의 영향력 있는 대신이였다. 그는 [[노르망디]]에 위치한 바이외의 한 사제에게서 태어났으며 별명인 플램버드는 자극적인, 집어삼키는 불꽃 혹은 횃불을 드는 자라는 뜻인데 라눌프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라눌프는 정복자 [[윌리엄 1세]] 때부터 경력이 시작되었는데 1086년에 [[둠스데이 북]] 집필과 왕의 인장을 관리하는 일도 해왔을거라고 한다. [[윌리엄 1세]]의 승하 후에 왕위를 계승한 [[윌리엄 2세]]도 섬겼으며 왕의 인장 관리도 계속하였고 또한 왕국의 재정 관리도 맡았으며 공석이 된 16개의 주교구와 수도원을 관리하였다. 이처럼 그가 지닌 많은 의무들로 인해 사실상 최초의 영국 총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윌리엄 2세]]의 통치 시기에 라눌프는 런던 최초의 석조 다리 건설과 [[웨스트민스터 궁전]] 건설을 감독했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더럼 주교직을 포상으로 받았다. [[윌리엄 2세]]의 승하 후에 왕위를 계승한 [[헨리 1세]]에 의해 [[런던 탑]]에 수감되었으나 나중에 탈옥에 성공하면서 최초로 [[런던 탑]]에서 탈옥에 성공한 자가 되었다. 그렇게 윌리엄 1세의 장남이자 [[윌리엄 2세]]와 [[헨리 1세]]의 큰형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와 함께 노르망디 공작령으로 망명하였다. 그렇게 라눌프는 로베르의 수석 고문이 되었고 로베르의 잉글랜드 침공을 보좌해 헨리 1세를 왕좌로부터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결국 두 형제는 화해하고 전쟁을 중단한다. 나중에 라눌프는 복직하고 [[노르망디]]에서 계속 몇 년을 보낸 이후 정치계에서 은퇴를 하였으며 가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나고는 했다. 그는 교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평의회에 참가해 자신의 직권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 [[분류:크루세이더 킹즈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