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러시아-프랑스 관계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ronstadt_Paris_Louvre_DSC01386.jpg|width=100%]]}}}|| ||Alliance franco-russe ([[프랑스어]]) Франко-русский союз ([[러시아어]]) Franco-Russian Alliance ([[영어]])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와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에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1892년]] 맺은 동맹. 후일 체결되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간의 [[삼국 협상]]의 모태가 된 동맹이기도 하다.[* 이 조약을 주춧돌로 [[영불협상]], [[영러협상]]이 추가되면서 삼국 협상이 성립된다.] 20년이 넘은 [[1917년]]까지 지속되다가 [[11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되면서 파기된다. 불러동맹, 프러동맹이라고도 한다. == 내용 == 1880년대 유럽의 외교는 독일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좌우하고 있었다. 소위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불리는 이 외교체제에서 프랑스는 철저히 고립되었으며 러시아는 독일과 [[삼제동맹]] 및 재보장 조약[* 독일, 러시아 중 하나가 제3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중립을 지킨다는 조약이다.]을 맺어서 다소간의 우호관계를 맺고는 있었지만, [[베를린 회의]]에서도 드러났듯이 독일은 같은 [[게르만족]]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물론 오헝제국은 엄청난 다민족 국가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독일통일|독일 통일]] 이전에는 독일 연방의 일원이기도 했고 지배층은 독일계가 다수였다. 거기에 [[헝가리]]인들이 추가된 정도. 비록 비스마르크는 [[보오전쟁]]으로 오스트리아를 꺾어놨지만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가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나 프랑스를 견제해 주는 동맹 역할로 남아주기를 원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필요 이상의 모욕을 가하는 일을 삼갔다. 대표적인 예시로 보불전쟁에서와는 달리 보오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로부터 어떠한 영토할양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비스마르크가 국내 여론을 잠재우지 않았으면 오스트리아는 최소 [[주데텐란트]]는 떼일 각오를 해야 했다.]을 더욱 선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재보장 조약을 갱신하자 않기로 결정하자 러시아는 프랑스와의 접촉을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노후한 러시아의 군대와 산업을 개혁하기 위해 프랑스가 거액의 저금리 차관을 제공한 데 이어서[* 물론 프랑스가 천사여서 그런건 아니고, 이 차관으로 철도를 깔게 했다. 전쟁이 터지면 철도로 독일 국경까지 군대를 빨리 실어나르라고(...) 실제로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 러시아군은 프랑스의 차관으로 확충된 철도를 이용해 독일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병력을 동원해 동부전선에 군사적 압력을 가했고 이것이 [[슐리펜 계획]]이 실패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이다.] 1891년에는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 영토 내에서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연주되기도 하면서 양국 사이의 관계가 급진전되기 시작한다. 1891년부터 시작된 양국간의 동맹조건을 둘러싼 협상은 1894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군사동맹의 성격이 짙었던 이 동맹은 프랑스나 러시아 중 하나의 국가가 [[삼국 동맹]] 중 한 국가와 전쟁을 벌일 시 자동적으로 참전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한편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하고 젊고 유약한 [[니콜라이 2세]]가 황위에 오르자 빌헬름 2세는 니콜라이의 유약한 성격을 이용해 러불동맹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펼친다. 니콜라이 2세는 이 시도에 꽤나 혹하기도 했었지만[* 니콜라이 2세가 워낙 [[절대왕정]]의 신봉주의자이기도 해서 '무엄하게도' [[나폴레옹 3세]]를 아랫것들이 쫓아내고 세운 공화정 체제인 프랑스 제3공화국을 탐탁지 않아 했다고 전해진다.] 총리 [[세르게이 비테]]와 대신들이 격렬하게 반발해 빌헬름 2세의 러불동맹 파기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그레이트 게임]]이 종료되고 영국이 여기에 가담하면서 러불동맹은 [[삼국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분류:1892년 협정]][[분류:프랑스 제3공화국]][[분류:러시아 제국의 역사]][[분류:프랑스의 외교]][[분류:러시아의 외교]][[분류:러시아-프랑스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