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한국의 배우, rd1=양진영(배우))] [include(틀:역대 홍콩 행정장관)]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e1c25)" '''[[홍콩 행정장관|{{{#FFFFFF 홍콩 특별행정구 제3대 행정장관}}}]][br]{{{#ffffff {{{+1 렁춘잉}}}[br]梁振英 | Hon. Leung Chun-ying}}}'''}}} || ||<-2> {{{#fff '''GBM GBS JP'''}}}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렁춘잉 행정장관.jpg|width=100%]]}}} || ||<|2> '''{{{#fff 출생}}}''' ||[[1954년]] [[8월 12일]] ([age(1954-08-12)]세) || ||[[영국령 홍콩]] 완차이[br](現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완차이) || ||<|2> '''{{{#fff 재임기간}}}''' ||제3대 행정장관 || ||[[2012년]] [[7월 1일]] ~ [[2017년]] [[7월 1일]] || || '''{{{#white SNS}}}''' ||[[https://www.facebook.com/leung.cy.108/|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0]]]]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hite 배우자}}}''' ||레지나 렁 ^^(1981-)^^ || || '''{{{#white 자녀}}}''' ||슬하 1남 2녀 || || '''{{{#fff 학력}}}''' ||Hong Kong King's College {{{-1 ([[졸업]])}}}[br] [[홍콩이공대학]] {{{-1 (측정학 / H.D.[* 홍콩의 준학사.])}}}[br] 웨스트 잉글랜드 브리스톨 대학교 {{{-1 (상업관리학 / [[박사|Ph.D.]][* 1977년 학위를 받을당시에는 박사학위가 아니었지만 후에 박사학위로 올려주었다.])}}}[br] 홍콩이공대학 {{{-1 (경영학 / [[박사|D.B.A]])}}}[* 명예학위로 수여받았다.] || || '''{{{#fff 정당}}}''' ||[include(틀:무소속)] || || '''{{{#fff 약력}}}''' ||[[홍콩]] 제2대 행정회의 의장 [br]홍콩 특별행정구 제4대 행정장관 [br]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 || [목차] [clearfix] == 개요 == Leung Chun-ying, 1954년 8월 12일 ~ [* 그의 이름 렁춘잉은 표준 중국어로는 '량전잉(Liáng Zhènyīng)', 한국 한자음으로는 '양진영'이다.] [[홍콩]]의 정치인으로, 홍콩의 제3대 [[홍콩 행정장관|행정장관]]이다. 이니셜인 'CY', 혹은 '689'라는 별칭이 있다. 행정장관 선출 당시 689표를 얻었기 때문에 689라고 불린다. [[1954년]] [[영국령 홍콩]] [[홍콩 섬]] 서부의 [[퀸 메리 병원]]에서 [[산둥성]] 출신 [[중국인]] 이민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영국령 웨이하이웨이]]의 경찰관이었는데 [[1930년]]에 이곳이 [[중화민국|중국]]에 반환되면서 철수하는 [[영국인]]들을 따라 [[영국령 홍콩]]으로 이주했다. [[영국]]에서 [[킹스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경영학과 출신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살았으나 [[1980년대]] 전후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2012년]] 간선 형태의 행정장관 선거에서 당선되어 홍콩의 행정장관으로 취임했다. == 행정장관 임기시절 == 행정장관이 되기 훨씬 이전인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베이징]] 시민들을 학살한 중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으나,[[http://hk.apple.nextmedia.com/realtime/news/20160531/55167283|기사]] 2010년 [[노벨 평화상]]을 [[류샤오보]]에 수여하자 한다는 소리가, "왜 [[덩샤오핑]]에게 주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 라고 했다.[[http://news.discuss.com.hk/viewthread.php?tid=20831792|기사]] 2012년 행정장관 후보자 토론회 당시 경쟁 상대였던 헨리 탕(唐英年)이 렁춘잉에게 "2003년 정부 고위급 회의에서 홍콩은 언젠가 한 번 깡패들을 보내고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막겠다고 한 적이 있는가?"라고 했을 때,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답변하자. "사기꾼, 거짓말하지 말라!(你呃人,唔好講大話!)"라는 소리를 들었다. [[http://hk.apple.nextmedia.com/news/art/20120317/16164660|기사]] 결국 [[홍콩 우산 시위]]에서 최루탄과 후춧가루 스프레이로 [[조슈아 웡]]을 비롯한 시위대를 진압함으로써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 사실 그도 홍콩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행정장관 직선제를 추진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홍콩 정부는 직선제를 하는 대신에 후보들이 출마하는 대 중국 전인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가 되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간접선거 때 강하게 들어가던 중국의 입김을 선거 이전의 후보자 출마 자격 심사 과정으로 옮겨버린 건데, 당연히 [[꼼수]]다. 이러면 사실상 설립파(친중파)에게만 피선거권을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 이번에는 되려 홍콩 시민들이 '가짜' 직선제를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행정장관 직선제는 끝내 무산되었다. 홍콩의 민주파 정치인들과 시민들에게는 '''최악의 행정장관'''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나 반대급부로 [[중난하이]]의 신임을 가장 높게 받은 행정장관이기도 하다. 어차피 중국 지도부야 홍콩인의 여론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판데믹을 거치며 이젠 그 최악이라는 칭호는 [[캐리 람]]이라는 '''홍콩 최악의 무능/무색무취 행정장관'''이 가져갔다. 그래도 이 시기만 해도 외국인에게 오픈된 곳을 표방하던 홍콩이라 각종 비자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 때만 해도 비자런에도 비교적 관대했으며 적어도 비자 발급이 안 되어 사람 충원이 안 되는 사태는 없었다. 캐리 람으로 접어들며 홍콩의 비자정책은 시위와 판데믹으로 최악으로 나빠졌고 인재유출을 불렀다. 위의 경우 정확히는 시진핑이 2기 집권을 노골화하면서 대외정책이 배타적으로 변하며 어려워진 측면이 있었다.[* 이 때 [[홍콩대학]]/[[홍콩과기대학]]/[[홍콩중문대학]] 등 대학 기숙사들도 로컬사람 우선원칙에 따라 외국인이 대거 쫓겨났다. 비싼 집세를 내가며 열악한 환경에서 자취에 내몰린 유학생이 많다. 싱가포르의 경우 로컬사람 우선원칙이 없다.] 내국인 우선원칙이 없는 싱가포르가 결국 모든 반사이익을 챙겨가기 시작했으며 2020년대 직후 외국인들이 '''편도 티켓'''을 끊고 싱가포르에 대거 이주해 인재 유출이 현실화되었다. 법령에 따라 행정장관 선거에 재출마하여 연임할 수 있었으나,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후임 행정장관은 전 정무부서장[* 주권국가의 부총리 격이다. 형식상 홍콩의 국가원수는 중국 국가주석이니까 행정장관이 [[총리]]급 인사가 된다.] [[캐리 람]]이다. 퇴임 두 달전에 민주파에서 탄핵안을 제출했다. 다수당인 친중파의 반대로 실제 탄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지만 비리와 권한 남용 혐의 등에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285280|#]] 그 후, 홍콩 국가보안법 지지를 선언하여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체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00만 홍콩달러(약 1억5천만원)의 현상금을 주겠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714525?sid=104|#]] 그러나 아직까지 그 현상금을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이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책임을 물어 재선을 불허했지만 아예 활동 자체를 제약당한 [[캐리 람]]과 달리 현재도 꾸준히 보수 원로정치인으로서 얼굴을 내밀며 이런저런 발언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뜻밖에도 홍콩의 해외 출입국 전면개방 요구도 있었다. 사실 홍콩을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는 중국의 관문으로 삼고 외국인을 홍콩에 묶어서 중국 일을 처리하게 하는게[* 대신 중국본토는 시진핑 집권 이후 외국인을 안 받기 시작했다. 영어 사용도 홍콩에만 허가했다.] 중국 국익에 맞는 일이다. == 행정장관 재출마 == 2018년 9월 25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22년 행정장관 선거에 다시 출마한다고 보도됐다. 사실 공식적으로 본인이 한 말은 아니지만 다시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https://www.scmp.com/comment/insight-opinion/hong-kong/article/2165863/whisper-it-softly-cy-leung-may-be-back-2022|#]] 그렇게 되면 재선을 노리고 있는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빨간불이 켜진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전직 장관과 현직 장관에 기싸움이 이어져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https://chinaworker.info/en/2019/01/01/19495/|#]]만약 출마한다고 공식화하면 전직장관 과 현직장관 대권 싸움 때문에 잘하면 2017년에 무산됐던 직선제가 다시 부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차기 행정장관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중국 중앙정부의 입맛에 맞춘 발언을 일삼고 있다.[[https://www.yna.co.kr/view/AKR20210304079951074|#]] 2021년 6월, [[중국 공산당]]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홍콩 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지한 [[빈과일보]]를 폐간하도록 강력하게 압박했으며 여기 동조해 빈과일보 폐간을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https://www.yna.co.kr/view/AKR20210618047600074|#]] 그러나 렁춘잉에게도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책임이 있어서 출마는 못했고 시진핑 측근으로 분류되는 [[존 리(1957)|존 리]]가 대신 행정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존 리는 두 행정장관이 싸지른 것들을 수습하느냐 뼈 빠지게 뛰어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는 중국에서 홍콩이 해외 출입국을 개방하고 인재 유치를 위해 비자 규정들도 재검토해 로컬사람 우선 원칙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이 그것들이다. 2023년 2월 1일에 [[대영박물관]]의 직원들이 파업을 개시하자, "대영박물관은 약탈품을 반환하고 영구 폐쇄하라"고 발언하였다.[[https://naver.me/xXDo10F9|#]] == 관련문서 == * [[홍콩]] * [[친중파(홍콩)]] * [[일국양제]] * [[홍콩 우산 시위]] [[분류:홍콩 행정장관]][[분류:홍콩 특별행정구 출신 인물]][[분류:1954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