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아우구스타)] ||<-2> [[파일:레온티아.jpg|width=100%]] || || '''이름''' ||레온티아[br](영어:Leontia, 그리스어: Λεοντία)|| || '''출생''' ||미상|| || '''사망''' ||[[610년]] [[10월 5일]] [[동로마 제국]] [[트라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 '''남편''' ||[[포카스]]|| || '''자녀''' ||도멘치아||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포카스]]의 황후. == 생애 == 레온티아는 [[포카스]]의 아내로, 602년 11월 23일 [[마우리키우스]] 황제와 [[콘스탄티나]] 황후가 반란군을 피해 달아난 뒤 남편과 함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했다. 포카스는 [[개선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고 전차 경주를 실시하고 병사들에게 막대한 기부금을 하사한 뒤, 레온티아에게 [[아우구스타]] 칭호를 내렸다. 그런데 마지막 행사에서 청색당과 녹색당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청색당원 몇 명은 이렇게 외쳤다. >"마우리키우스는 죽지 않았다는 걸 명심해라!" 물론 포카스는 그걸 잊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병사들을 보내 도망치고 있던 마우리키우스 일행을 체포했다. 마우리키우스와 어린 자식들은 모조리 참살당했고 시신들은 갈기갈기 찢겨진 뒤 바다에 버려졌다. 또한 수급들은 따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송되어 헵도몬에 내걸렸다. 포카스와 레온티아 사이에는 딸 도멘치아가 있었는데, 605년 프리스코스라는 인물과 결혼했다. 결혼식은 마리나 궁전에서 화려하게 거행되었으며, 포카스-레온티아 부부와 신혼 부부의 동상이 히포드룸에 세워졌다. 그러나 포카스는 나중에 딸과 사위의 동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이전의 황후인 [[아일리아 아나스타시아]]와 [[콘스탄티나]]가 새겨진 주화가 별로 없는데 비해, 레온티아는 602년부터 610년까지 8년간 주조된 주화에서 줄곧 등장한다. 그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하프폴레이스에서 주조된 구리 동전에 많이 등장했다. 이로 볼 때, 그녀의 신분은 하급 병사 출신이었던 남편보다 높았던 것 같다. 610년 10월 5일 포카스가 [[이라클리오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사로잡혀 처형되었을 때, 그녀도 함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동로마 황후]] [[분류:아우구스타(동로마)]] [[분류:61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