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747년 출생]][[분류:1813년 사망]][[분류: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분류:솜 출신 인물]] ||<-2>
{{{#000000 {{{+1 '''로즈 베르탱'''}}}[br]'''Rose Bertin'''}}}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ose-bertin-portrait1.jpg|width=100%]]}}} || || '''본명''' ||'''마리 잔 로즈 베르탱[br]{{{-1 Marie-Jeanne Rose Bertin }}}'''|| ||<|2> '''출생''' ||[[1747년]] [[7월 2일]] || ||[[프랑스 왕국]] 아브빌|| ||<|2> '''사망''' ||[[1813년]] [[9월 22일]] (향년 66세) ||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 제국]] 에피네 쉬르 센느||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 || '''직업''' ||[[패션 디자이너]]|| [목차] [clearfix] == 개요 ==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디자이너]]이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전담 디자이너다. == 생애 == 1747년 7월 2일에 태어난 로즈 베르탱은 하류층으로서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지내다가, [[프랑스 파리|파리]]에 갔다. 파리에서 그녀는 Mademoiselle Pagelle이라는 [[모자]] 제작사의 도제로 지내다가, 뛰어난 실력으로 그녀의 파트너가 되었다. 1770년에 셍토노레(Saint-Honoré)[*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거리로, 지금도 파리의 의상 전문점들이 모여있는 세계 패션 모드의 중심지 중 하나.] 거리에 ‘르 그랑 모골(Le Grand Mogol)’이라는 첫 [[부티크]]를 차렸다. === 마르샹드 드 모드 === 베르탱은 18세기 중엽에 등장한 ‘마르샹드 드 모드(La Marchande de modes)’[* 남성은 마르샹 드 모드], 모자나 리본, [[드레스]], 패션 소품 등 여성복을 취급하는 여성 상인이었다. 소비시장이 커지면서 [[유행]]을 선도하는 귀부인들 사이에서 마르샹드 드 모드가 운영하는 [[부티크]](Boutique) 들이 [[패션]]계에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 왕비의 디자이너 === 1772년, 로즈 베르탱은 샤르트르 공작부인(Duchesse de Chartres)의 중개로 그 해 여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복식 상담사가 될 수 있었다. 왕비의 신임과 지원 아래 그녀는 매주 2번씩 [[궁]]에서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었다. 이 시기의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푸프[* 18세기에 유행한 높이 말아 올린 머리]와 화려한 드레스가 유행이었는데, 베르탱은 왕비를 위해 자신이 직접 제작한 3피트에 육박하는 푸프를 선보이기도 했다. 왕비가 [[베르사유 궁전|트리아농 궁]]에서 입던 모슬린 드레스 또한 그녀의 작품이라고 한다. 왕비는 1년에 대략 300벌 정도의 드레스를 구입했고, 1780년대 궁정 재무 기록에 따르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상비의 절반 이상이 베르탱에게 지불되었다. 이에 따라, 그녀는 다른 궁정 귀부인들의 복식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의류대신(Minister of Modes)’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15년 간, 그녀는 생토노레가의 점포에 30명이나 되는 재봉사를 고용하며 파리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파리 패션계의 선도자 답게 왕비의 [[초상화]]에 그려진 대부분의 옷은 그녀가 맡았다. 특이하게도, 베르탱은 최신 유행의 [[인형]] 옷도 맞추었는데, 그 이유는 왕비가 그녀의 자매들과 [[마리아 테레지아|어머니]]에게 선물로 보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 왁스 인형들은 Pandores라 불리었는데 큰 인형은 사람만큼 컸다고 한다. == 비판 == 엄청난 유명세로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프랑스 시민들의 비난의 표적이었다. 첫번째로, 왕비에게 조달하는 의상이 지나치게 호화롭고 비쌌기 때문에, 왕실의 [[사치]]와 낭비를 부추겼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의복은 다른 [[디자이너]]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었는데, [[바가지|그녀는 자신의 실력과 안목에 대해 통상적인 보수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둘째로, 미천한 출신의 여성이 높은 신분의 귀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신분제]]가 엄격한 프랑스 사회에서는 심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화려한 의상실에 [[인맥|유럽 각국의 귀족과 왕족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귀족들을 소파에서 앉은 채로 맞이하며 오만방자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 프랑스 혁명 == [[프랑스 혁명]]이 시작될 때 즈음에, 그녀는 귀족과 혁명세력 모두에게 지탄받았다. 시민들에게는 사치를 일삼는 귀족들 중 하나로, 귀족들에게는 근본 없는 오만한 자로 비판을 받았다. 혁명 팸플릿에서는 그녀를 ‘사치품을 만들어 [[부패]]를 초래한 자이자 부패 그 자체(a corrupt and corrupting merchant of luxury)’로 묘사했다. == 최후 == 결국 1792년에 로즈 베르탱은 [[마리 앙투아네트|왕비]]가 처형되기 며칠 전에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다. 이후 1795년 2월에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혁명으로 인해 베르탱의 스타일은 더이상 유행이 아니었고 결국 그녀는 1813년 9월 22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 매체에서의 등장 == * [[경국의 재봉사 로즈 베르탱]]: 로즈 베르탱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능력이 뛰어나나 아름답지 않다는 설정이지만 [[미인 그려놓고 평범하다고 우기기|정작 작화에서는 지적인 미인으로 그려진다.]] * [[이노센트(만화)|이노센트]]: 젊은 시절에 [[뒤바리 부인]]의 직장 동료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일은 잘하지만 뚱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뒤바리 부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쳐 심기가 불편해진 뒤바리 부인에게 못생긴 바느질꾼은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할거라는 조롱을 받지만, [[미인 그려놓고 평범하다고 우기기|정작 작화에서는 뒤바리 부인과 유사하게 생긴 미형]]으로 그려진다. * [[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베르사이유의 장미]]: 초반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패션 디자이너로 등장하며 한참 사치에 몰입하던 앙투아네트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캐릭터로 쓰였다. * [[마리 앙투아네트(뮤지컬)]] * 니시야마 아키노스케의 라노벨 '파워 앙투아네트'에서는 어린 미소녀가 되었다. 하지만 [[월터 쿰 도르네즈|와이어를 무기로 군인들을 도륙해버리는 등]], 본작에 등장하는 마리 앙투아네트[* 이 쪽은 근육을 사랑하는 근육 덕후에 웬만한 잡졸들은 순식간에 때려잡는 인간흉기로 나온다(...).] 못지않게 흉악하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