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Rudolf Trenkel.jpg]] '''루돌프 트렝켈(Rudolf Trenkel : 1918. 1. 17~2001. 4. 26)''' [목차] == 초기 ==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공군]] 소속으로 500회 이상 출격하면서 격추수 138대를 기록한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파일럿 루돌프 트렝켈은 그 혁혁한 무공으로 [[철십자 훈장|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독일 제국]]이 마지막 숨을 넘기고 있던 [[1918년]] 1월 17일에 [[작센]]주의 뇌도르프(Neudorf)에서 태어난 그는 [[1936년]]에 [[육군]]에 징집되었다. 육군에서 [[부사관]] 교육을 받은 그는 [[1939년]]에 [[공군]]으로 전속 신청을 냈고, 소정의 시험에서 합격된 그는 비행교육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습득이 아주 빨랐다고 한다. 첫 자대로 [[JG 52]]에 배치된 그는 [[영국 본토 항공전|해협 전투]]에 참가하는 동안 3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했으나, 목격자나 증인이 없어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전우들은 트렝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루돌프 트렝켈 [[하사]]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항공단 부사관 중에서는 드물게 간부 직책까지 맡겨졌었다. == 동부전선 파견 == [[1942년]] 2월 22일, 이제는 [[상사(계급)|상사]]가 된 루돌프 트렝켈은 [[동부전선]]에 전개한 남부집단군을 지원하기 위한 제77전투항공단( [[JG 77]])의 제3비행단에 잠시 파견을 나갔다. 이 부대에서 제7비행중대원들과 함께 날게 된 그는 얼마간 윙맨 역할을 맡다가 3월 26일의 오후 출격에서 I-153 전투기 1기를 격추시키면서 공인 격추 1호를 기록했다. 6월 15일에 그는 원대였던 JG 52로 복귀했는데, 이때까지 4대를 떨궈놓고 있었다. 11월 2일까지 트렝켈 상사는 20기 격추를 거뒀고, 그 공로로 공군 명예컵이 주어졌다. 12월 17일에 동부 보충 전투비행단(Ergänzung-Jagdgruppe Ost)으로 가면서 잠시 최전선에서 물러난 그는 여기서 이듬해인 [[1943년]] 6월까지 머무르게 되었다. 예비부대라곤 하지만 그가 속했던 중대는 실전 출격을 계속하고 있었던 덕에 그는 1943년 8월 19일에 78기 격추 무공에 대한 보상으로 기사철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 전성기 == 긴 휴가를 마친 트렝켈 상사는 10월에야 JG 52로 돌아왔다. 보통 일선에서 떠나 오래 휴가를 보낸 조종사는 전투감각이 무뎌져 격추 페이스가 둔해지게 마련이었지만 트렝켈은 휴가 동안 충전을 하고 온 것처럼 10월에만 18대나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런 승승장구에 제동을 건 것은 11월 2일 출격에서 만난 한 대의 [[Yak-9]]이었다. 대단한 솜씨를 지닌 그 [[러시아]] 조종사는 근 15분 가까이 트렝켈과 근접전을 벌였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결국 그가 탄 [[Bf 109]]G-6(W.Nr. 140167) "슈바르츠 드라이"가 격추되었고, 어깨에 총상을 입은 루돌프 트렝켈은 겨우 동체 착륙에 성공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4개월이 넘도록 후방에서 치료를 받은 그는 장교 진급을 위한 소정의 보충 교육을 받은 뒤 해가 바뀐 [[1944년]] 7월에야 전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7월 14일, 드디어 100기 격추를 달성한 트렝켈 [[소위]]는 이제 당당히 엑스페아텐 에이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8월 15일에는 그에게 제2비행중대장이라는 직책이 맡겨졌다. == 5번의 죽을 고비 == 1944년 10월은 이미 작년에 죽을 고비를 넘긴 그에게 또다시 큰 시련이 닥쳤다. 그것도 무려 5번이나 말이다. 이즈음 [[중위]]가 된 루돌프 트렝켈은 10월 동안 11번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 대부분은 고도 1,000미터 미만의 저공 전투에서 거둔 것이었다. 당연히 이렇게 낮게 날아다닌 그에게는 적기의 사격에 더해 지상의 대공포화까지 더해졌고, 10일 동안 무려 5번이나 기체를 버리고 긴급 탈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부상없이 살아남았고 10월 15일에는 그 날에만 6대의 적기를 떨군 것이다. == 행운의 부상 == [[1945년]] 3월 15일, 또다시 그가 몰던 Bf 109G-14(W.Nr. 465260)가 [[대공포]]에 맞고 추락했다. 파편에 의한 부상을 입고 불시착한 그에게 [[미군]]이 몰려와 체포했고, 지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를 점잖게 대접하는가 했더니 [[소련군]]에게 넘겨버렸다. 그런데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몇 주간 [[소련]]의 열악한 포로 시설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수감 생활을 하다가 추락 당시 입었던 부상이 악화되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 무렵 소련에 전쟁 포로 신분으로 넘겨진 [[전투조종사|전투기 조종사]]들이 짧아도 5, 6년, [[에리히 하르트만]]이나 [[하요 헤르만]] 대령처럼 10년이 넘는 형기를 채우고 중년이 다 되어 고국에 돌아온 것에 비하면 이 부상이야말로 그에게는 행운의 여신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 아니었을까? == 서훈 == [[파일:attachment/BmEKII.jpg|width=40]]2급 [[철십자 훈장]] (1940년 9월 12일) [[파일:attachment/BmEKI.jpg|width=40]]1급 철십자 훈장 (1940년 10월 18일) 공군 명예컵 (1942년 12월 11일) [[파일:Das Deutsche Kreuz in Gold mit Brillanten.jpg|width=40]][[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3년 1월 15일) [[파일:attachment/BmRKEL.jpg|height=50]]기사 철십자 훈장 (1943년 8월 19일) [[전상장]]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31~50위)]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1918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