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홀란트 국왕)]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e0000, #d23636 20%, #d23636 80%, #ae0000)" '''홀란트 왕국 제1대 국왕[br]{{{+1 로데베이크 1세}}}[br] Lodewijk I'''}}} || ||<-3>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257px-LouisBonaparte_Holland.jpg|width=100%]]}}}|| ||<|2> '''이름''' || 프랑스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br](Louis Napoléon Bonaparte) || || 이탈리아어 ||루이지 부오나파르테[br](Luigi Buonaparte) || || '''출생''' ||<-2>[[1778년]] [[9월 2일]][br][[파일:프랑스 왕국 국기.svg|width=25]] [[프랑스 왕국]] [[코르시카]] [[아작시오]] || || '''사망''' ||<-2>[[1846년]] [[7월 25일]] (향년 67세)[br][[파일:토스카나 대공국 국기(합스부르크).svg|width=25]] [[토스카나 대공국]] [[리보르노]] || ||<|2> '''재위''' ||<-2><#E7E7E7,#2d2f34>[[홀란트 왕국]]의 왕 || ||<-2>[[1806년]] [[6월 5일]] ~ [[1810년]] [[7월 1일]] || || '''배우자''' ||<-2>[[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1802년 결혼 / 1810년 이혼),, || || '''자녀''' ||<-2>나폴레옹 샤를[* 유아 시절 사망했다.], 나폴레옹루이[* 차남이지만 장남이 요절하여 사실상 장남으로 자랐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홀란트 왕국의 왕 로데베이크 2세가 되었지만 겨우 10일 뒤 홀란트가 프랑스에 병합당했다.], [[나폴레옹 3세]] || || '''아버지''' ||<-2>[[샤를 보나파르트|카를로 부오나파르테]] || || '''어머니''' ||<-2>레티치아 라몰리노 || || '''형제''' ||<-2>[[호세 1세|조제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 뤼시앵, 엘리자, 폴린, 카롤린, [[제롬 보나파르트|제롬]] || || '''종교''' ||<-2>[[가톨릭]] || || '''서명''' ||<-2>[[파일:루이 보나파르트 서명.svg|width=100]]|| [목차] [clearfix] == 개요 == >나도 많은 망명귀족들을 곁에 두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에게 높은 지위를 허락해본 적은 없다. 왕들이 추구하는 사랑이란 남성적인 사랑이어야 하고, 경외심과 좋은 평판이 함께 따라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왕을 보고 마음 착한 사람이라고 평한다면 그 통치는 실패한 통치란다. 나의 동생아... 너희 나라에서 바보짓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은 아무리 사랑스러운 나의 동생이라 할지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너의 젊은 아내이자 나의 딸]]을 병사 다루듯 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사교계]] 활동과 무도회에서 춤추고 싶을 때 춤추도록 좀 내버려둬라! 원하는 대로 하게 해라! 네 아내이자 나의 딸은 이제 겨우 스물인데 유모처럼 집에 처박혀 [[나폴레옹 3세|아이]]젖이나 물리고, 목욕이나 시키길 바라는 거냐? 그녀는 내가 다스리는 왕국의 입지를 위해서라도 [[사교계]]에 한창 돌아 다녀야 할 그럴 나이가 아니냐? 그게 아니면 너의 아내와 아들을 외딴 섬으로 유폐시킬 생각인 거냐? 도대체 왜 이렇게 얼빠진 짓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조제핀 드 보아르네|나의 아내]]는 마흔이 넘었지만 그녀에게 크든 작든 무도회에 빠짐없이 매일 나가라고 나는 전장에서도 편지를 쓴다. 부디 널 믿고 네덜란드의 군주로 위임시킨 나의 결정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 나폴레옹이 동생 루이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이자 [[나폴레옹 3세]]의 [[아버지]]. [[나폴레옹 2세]]에게는 [[삼촌|숙부]]가 된다. == 생애 == 나폴레옹이 가장 아낀 동생으로, 형이 프랑스의 실권자가 된 후 [[홀란트 왕국]]의 왕을 지냈다. 나폴레옹이 낙하산으로 앉힌 친인척들이 대개 능력없고 부패했는데 그나마 그는 맏형 [[호세 1세|조제프]]와 함께 멀쩡한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인임에도 네덜란드에 애착을 보여[*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1807년 레이던에서 화약 운반선 폭발 사고와 1808년과 1809년 대홍수 당시 네덜란드 현지인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애도하였다.]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홀란트 왕국을 프랑스 제국의 속국 취급하던 형에 맞서 '홀란트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은 프랑스나 잘 관리하시죠?' 하는 깡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군의 상륙을 막지 못해 [[대육군|프랑스군]]을 끌어들이며 자치권은 사라지고 그냥 속국이 되어버렸다. [[나폴레옹 2세]] 탄생 전에는 나폴레옹이 루이의 아들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 만큼 총애했지만, 본인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데다 부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오르탕스]]와의 사이도 좋지 못해 개인적으로 계속 불행한 삶을 살았다. 군사적 재능도 썩 훌륭하지 못했고 군주로서도 별 존재감이 없었다. 형이 몰락한 뒤에는 이름을 숨기고 [[네덜란드 연합왕국|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살아갔다. 그래도 1840년에 프랑스로 귀국하여 형의 [[장례식]]을 보고 늘그막은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다가 갔다. 막내 아들이 바로 나중에 또다시 프랑스 황제에 오르는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이다. 살아있던 동안은 물론 최근까지도 [[나폴레옹 3세]]가 친자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어왔다. 당대에는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오르탕스]]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정적들로부터 [[나폴레옹 3세]]가 아내의 외도로 낳은 혼외자라는 소문에 계속 시달렸다. 이후 역사학계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설은 거의 근거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왔으나, 다시 2010년대 들어와서 [[나폴레옹 1세]]와 친족들 및 [[나폴레옹 3세]]의 아들 및 혼외자 후손들의 Y염색체 DNA 분석을 통해 형 [[나폴레옹 1세]]와 아들 [[나폴레옹 3세]]가 부계 쪽의 혈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석에 이용된 DNA 시료가 불완전하고 다른 근거로 교차 입증할 수도 없어 과학계 및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폴레옹 3세#s-6|해당 항목]]을 참고.] == [[보나파르트 가문|가족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보나파르트 가문)] [[분류:유럽의 왕작]][[분류:보나파르트 가문]][[분류:아작시오 출신 인물]][[분류:나폴레옹 전쟁/군인]][[분류:홀란트 국왕]][[분류:1778년 출생]][[분류:1846년 사망]][[분류:프랑스 황족]][[분류:프랑스 왕위 요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