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로마 공화국 집정관]][[분류:기원전 3세기 집정관]][[분류:기병장관]][[분류:로마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기원전 3세기)] [include(틀:역대 로마 독재관 및 기병장관)] ||||<#800080> {{{#ffffff {{{+3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br]{{{-1 [[라틴어]]: Lucius Veturius Philo }}} }}} || ||<#800080> {{{#ffffff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800080> {{{#ffffff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800080> {{{#ffffff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800080> {{{#ffffff '''지위''' }}} ||[[파트리키]] || ||<#800080> {{{#ffffff '''국가''' }}} ||[[로마 공화국]] || ||<#800080> {{{#ffffff '''가족''' }}}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기원전 220년 집정관)|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아버지) || ||<#800080> {{{#ffffff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800080> {{{#ffffff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800080> {{{#ffffff '''임기''' }}} || 기원전 206년 || ||<#800080> {{{#ffffff '''전임''' }}}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br][[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 ||<#800080> {{{#ffffff '''동기''' }}} ||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기원전 206년 집정관)|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 ||<#800080> {{{#ffffff '''후임''' }}}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br][[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기원전 205년 집정관)|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공화국]] [[집정관]], [[기병장관]]. == 생애 ==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베투리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아버지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기원전 220년 집정관)|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는 기원전 220년 집정관, 기원전 217년 [[독재관]], 기원전 210년 [[감찰관]]을 역임했다. 기원전 212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기원전 212년 집정관)|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휘하 [[트리부누스 밀리툼]]으로서 [[카푸아 공방전]]에 참전했으며, 기원전 210년 수석 [[조영관]]이 되었고, 기원전 209년 [[법무관]]에 발탁되어 갈리아 키살피나를 맡아 기원전 208년까지 통치했다. 기원전 207년 [[레가투스(로마)|레가투스]]로서 집정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의 로마군에 배속되어 [[한니발 바르카]]와 합류하기 위해 진군하던 [[하스드루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메타우루스 전투]]를 벌였다. 그는 이 전투에서 탁월한 용맹을 선보여 승리에 일조했고, 살리나토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로마로 보내 승리를 알리게 했다. 기원전 206년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기원전 206년 집정관)|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브루티움에 틀어박힌 한니발을 상대했지만, 한니발이 별다른 군사적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대치하기만 했다. 임기가 만료될 무렵 두 사람 중 누가 브루티움에 있을 지를 놓고 제비뽑기를 한 결과, 메텔루스가 브루티움에 계속 남고 필로는 로마로 돌아가서 차기 집정관 선거를 주관하기로 했다. 기원전 205년 말, 당해 집정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아프리카 원정에 착수했고 또다른 집정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기원전 205년 집정관)|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는 한니발과 대치하고 있던 터라서 선거를 주관하기 어려웠다. 이에 크라수스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를 독재관에 지명해 선거를 대신 주관하게 했고, 그는 [[기병장관]]에 지명되었다. 선거를 마무리한 뒤, 그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원정에 레가투스로서 참여했지만 별다른 활약상은 전해지지 않는다.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 이후, 그는 카르타고 사절단을 인솔해 로마로 돌아와서 원로원에 스키피오가 승리했으며 카르타고 측이 평화 협약을 논의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음을 알렸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